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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Feb 28. 2020

입으로는 평화를, 속으로는 전쟁을 외치는 이들

전쟁을 반기는 안보팔이 정치인


전쟁으로 돈을 버는 전쟁수혜자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전쟁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또 다른 집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군수산업체들이 평화를 외치는 것은 아니니 비교적 솔직한(?) 나쁜 놈들이라면, 이들은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전쟁을 바라거나 전쟁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거짓말쟁이 나쁜 놈들입니다. 뭐 누가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  


바로 정치인들입니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다 전쟁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인 가운데서도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고, 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정치인도 있습니다.(물론 오바마처럼 뭔가를 하기 전에 잘하라는 의미(?)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하고, 헨리 키신저처럼 자기가 싼 똥 치웠을 뿐인데 그걸 잘했다고 상을 주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저는 전쟁을 바라고,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것을 고대하는 류의 정치인을 가리켜 안보팔이 정치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전쟁으로 표를 모으는 안보팔이 정치인들


어느 집단이든 공동의 적이 생기면 단결하기 마련입니다. 평소에는 서로 으르렁대던 정치인들이 공동의 적을 상대할 때는 겉으로나마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어도 각자의 판단 속에서 충분히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겠죠. 이건 뭐 시대를 떠나, 지역을 떠나, 이념이나 계파를 떠나 정치의 속성일 것입니다. 이 자체를 비판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겠죠.


그런 면에서 전쟁은 어쩌면 정치인들, 정당들에겐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에게는 전쟁이라는 블랙홀이 자신의 치부나 잘못을 가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의 증가와 안보 불안이 표를 얻는 데 유리할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잘 안 먹히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보수정당들은 선거 때만 되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거나 과장해서 톡톡히 재미를 봤습니다. 1996년에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 직전에 판문점에서 북한군의 무력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지금의 통합미래당의 전신)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였는데 국회 의석수의 1/3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이 많았었죠. 그런데 신한국당은 때마침 일어난 북한군의 무력시위를 지렛대 삼아 안보 불안을 대대적으로 부추겼고, 그 결과 당시 제1 야당인 국민회의(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보다 60석이나 많은 139석을 휩쓸게 됩니다. 참 씁쓸한 역사죠. 그런데 이분들은 어쩌면 순진한 분들이었을지도 몰라요. 운 좋게 발생한 무력 도발을 활용했을 뿐이니까요.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무력 충돌을 기획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른바 '총풍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공작」 포스터입니다.

더 나아가서 상황을 만들어가는 아주 창조적인(?)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신한국당(이번에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베이징에서 북한을 접촉합니다. 무력시위를 부탁하려고요.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북한군의 무력시위 덕을 톡톡히 봤으니, 아예 대놓고 활용할 속셈이었겠죠. 결국 이 일이 들통나 재판까지 받게 됩니다. 1심에서는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2심 재판부는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실을 확인할 증거가 부족하고 사전 모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고 북한을 접촉한 것만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 위반만 적용해 유죄를 선고합니다. 황정민, 이성민 등이 나오는 윤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의 모티브가 된 이른바 '총풍 사건'입니다.



안보를 팔아서 돈을 버는 안보팔이 정치인들


안보팔이 정치인들의 활약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활용하거나 무력 충돌을 조작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군수산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전쟁을 이용한 돈벌이에 나섭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부통령인 딕 체니입니다. 딕 체니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1989년~1993년 재임) 시절 국방부 장관이었는데 이후에 석유회사인 핼리버튼Halliburton에 경영자로 취직(?)해서 부통령이 되기 전까지 일합니다. 행정부와 기업 사이를 종횡무진하죠. 핼리버튼에서 5년 동안 무려 4400만 달러를 벌었고, 부통령을 그만둔 뒤에는 핼리버튼으로부터 해마다 15만 달러씩 받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800만 달러어치 핼리버튼 스톡옵션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건 뭐 놀랄 일도 아니죠.


핼리버튼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딕 체니가 아무리 자기들 전직 CEO라고 돈을 공짜로 주진 않겠죠. 핼리버튼은 이라크 전쟁 직후인 2004년 이라크 재건사업으로 110억 달러어치의 계약을 따냅니다. 2위가 28억 달러어치를 계약한 벡텔입니다. 딕 체니는 당시 핼리버튼과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고 말했지만, 부통령 그만둔 뒤에도 해마다 15만 달러씩 받기로 한 거면 끊었다고 할 수 없죠. 이라크 전쟁은 결국 핼리버튼과 딕 체니 모두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다준 셈이죠. (딕 체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기사(신동아에서 번역)를 보시면 됩니다. 국내에선 신동아가 기사를 번역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바이스 프레지던트) 딕 체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바이스>. 군수산업체와 안보팔이 정치인들의 관계 및 활약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위 정치인이나 국방 관료들이 퇴임 후 군수산업체에 들어가는 일을 '회전문 인사'라고 부릅니다. 회전문 인사는 꼭 안보팔이 정치인들과 군수산업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나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이 대법관 등 고위직 판검사를 데랴가는 일도 회전문 인사입니다. 이런 회전문 인사들은 자신이 정부의 요직에서 일하며 얻은 정보와 인맥을 일반 사기업의 돈벌이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안보 영역에서는 주로 고위 군인들이 군수산업체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후임들과 거래를 하며 군수산업체에 돈을 벌어다 줍니다. (2011년 연합뉴스 기사 "5년간 직업군인 출신 413명 방산업체 취업") 이들 중 일부는 다시 안보팔이 정치인으로 돌아오려는 시도를 합니다. 마치 딕 체니가 핼리버튼의 최고 경영자였다가 부통령이 된 것처럼요.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이름을 올린 김병관입니다. 4성 장군이었다가 군수산업체의 고문으로 일했던 그는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됩니다. 다행히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합니다만, 이런 회전문 인사가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군수산업체에 이어 안보팔이 정치인까지. 썩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계속하려니 글을 쓰는 저도 화가 나네요. 그렇지만 화가 나도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죠. 누가 전쟁을 원하고, 부추기는지. 왜 그러는지, 어떤 이익이 그들을 움직이는지 알아야죠.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또 군수산업체와 안보팔이 정치인들에게 전쟁의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의 책임은 막대하죠. 하지만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만큼의 힘과 결정권을 그들에게 양도하는 것처럼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데 과연 우리-보통의 시민들의 책임은 없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목에 쓴 사진은  2017년 11월 트럼프 방한 반대 시위 때 전쟁없는세상이 만들어간 현수막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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