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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pr 03. 2020

우리는 전쟁의 피해자이기만 한 걸까?

세계의 전쟁과 대한민국의 책임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귀에 인이 박히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반도에 위치해 있는데다, 강대국에 둘러 쌓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늘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문인지 우리 한국인들은 전쟁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위치를 피해자 혹은 침략당하는 자로 생각하고는 합니다. 


과연 우리는 전쟁의 피해자인 걸까요?



식민지 남성성이 만들어낸 허구적 이미지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전쟁 피해자라는 생각은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전쟁이 실제로 우리나라가 침략당한 전쟁입니다. 만주 벌판 달린 광개토대왕 정도를 제외하면 전쟁 영웅들도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모두 외세의 침략을 막은 이들이죠. 


스스로를 약자, 피해자의 위치에 두다 보니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는 지킬 수 있는 강한 힘에 대한 동경이 사회문화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역사의 대중적 판본들이 최대 영토의 고구려, 화랑도의 신라, 혹은 무신 정권의 고려 등을 스펙터클 하게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서울 중심을 종횡으로 분할하는 충무로와 을지로, 그리고 세종대왕이 세워지기 전 서울의 심장 광화문을 오랫동안 홀로 차지했던 우뚝 선 이순신 동상 등은 무장 영웅의 호명을 토한 탈/식민적 남성성의 사후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남자는 없다』에 실린 글 <'무기 없는 민족'의 여성이라는 거울>에서 류진희 선생님은 일본의 식민사관이 강요해온 '문약文弱'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군인을 영웅시하는 상무정신이 호출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호전적인 군인을 동경하고 숭상하면서도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는 이러한 모습을 평화학자 정희진은 '식민지 남성성'이라고 부릅니다. 제국주의 침략 국가의 남성성은 마초적이고, 군사주의적이어서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식민지 남성성은 제국의 남성성과 견주어 스스로를 '여성'으로 간주하거나 자처하면서도 자국의 여성 앞에서는 호전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큰소리를 떵떵 칩니다. 


일본군의 '위안부'에 대해서는 자신(국가)들이 지키지 못했다고 분노하면서, 미군 부대 앞 이른바 '양공주'는 국가가 관리하는 가상한 노력까지 보인 이중성도 식민지 남성성이라는 키워드로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민지 남성성의 토대는 "남성은 보편적 주체로서 자신을 국가나 민족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결코 국가나 민족은 남성만으로 동일시할 수 없고, 심지어 남성들조차도 동질 하지 않습니다. 이 매거진의 글  서로 다른 전쟁의 얼굴 평화의 얼굴에서 인용한 브레히트의 시처럼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고 "승전국에서도 하층 서민은 굶주"리지만, 부자들은 승전국에서도 패전국에서도 샴페인을 터뜨립니다. 남자들 안에서도 계급에 따라, 인종에 따라, 성정체성에 따라 전쟁에서 다른 입장에 서고 서로 다른 이익과 피해를 경험합니다. 


결국 동일한 피해를 경험한 '피해자'라는 인식은 식민지 남성성에 깃댄 허구적인 이미지일 뿐입니다. 



침략당하는 나라에서, 침략하는 나라로


동일한 피해자 이미지가 허구적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한국인들이 20세가 초중반 전쟁 피해를 입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2020년의 한국은 이미 침략당하는 나라보다는 침략하는 나라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침략하는 편에 서서 침략 전쟁에 동참한 적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병의 역사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전 세계적인 반전운동을 불러일으켰고, 미국에서도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R.R. 마틴(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쓴 작가) 등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을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했을 정도로 부도덕한 전쟁이었습니다. 한국군은 그 전쟁에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전투병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습니다. 1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군의 군사작전으로 베트남인 4만여 명이 희생되었고, 한국군도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4만여 명의 베트남 희생자 가운데는 민간인도 있었습니다. 1968년 2월 12일 퐁니, 퐁넛 마을에서 해병대제 2 여단 1중대가 마을 주민을 몰살한 사건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사건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은 철저하게 침략자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죠.  


이라크 전쟁 10주년, 평화활동가들의 평화행동. 2003년 많은 시민들이 파병에 반대했지만 정부는 파병을 강행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파병 또한 지울 수 없는 흔적입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통치하고 있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며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할 수 없었고, 이라크 전쟁으로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 딕 체니 같은 전쟁수혜자들의 재산만 늘었습니다. (이 내용은 매거진의 다른 글 '입으로는 평화를, 속으로는 전쟁을 외치는 이들'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21세기 가장 부도덕한 전쟁의 상징이죠. 한국은 이 전쟁에도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전투병을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부도덕한 전쟁에 침략군의 일원으로 동참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조폭은 못 돼도 깡패는 되는 한국의 군사력


사실 한국군 파병을 안 하더라도, 한국은 침략당할 가능성보다는 침략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할 거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의 군사력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감히 한국을 침략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보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아주 소수라는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4월에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전 세계 각국의 군사비를 발표합니다. 한국은 2018년 431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해 전 세계 10위에 위치했습니다. 2013년부터 7년 연속으로 10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난 7년간 한국보다 군사비를 많이 쓴 나라는 양손으로 꼽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 일본도 군사비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에 속합니다. 러시아와 미국이 쓰는 군사비까지 생각하면 동북아시아는 가장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지역입니다. ⓒ SIPRI


돈만 많이 쓴 게 아닙니다. 병력과 무기 수를 중심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경제력과 비상시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글로벌파이어파워(GFP) 세계 군사력 랭킹'에서 한국은 무려 6위를 차지합니다. 물론 이 집계 방식은 핵무기와 같은 비대칭 전력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이 전세게에서 손에 꼽히는 군사 강국이라는 것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누비는 부끄러운 Made in Korea


파병만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한국은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여러 전쟁과 분쟁에 다양한 방식으로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무기 수출 규모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실제 한국산 무기가 세계의 분쟁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부터 2019년 사이에 10번째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한 국가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의 무기 거래량 가운데 2.1%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무기 수출의 절대량에서도 세계 10위라는 엄청난 순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더 무서운 건 무기 거래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0년에서 2014년 동안의 점유율과 비교했을 때  2015년부터 2019 사이의 점유율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한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세계 10위의 무기 수출 국가인데, 수출 점유율이 증가하는 속도가 아주 가파른 것이죠. 


이러다 보니 실제로 한국산 무기가 분쟁 지역에서 쓰이거나 독재 정권 치하에서 쓰이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2010년 튀지니에서 시작되어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퍼져나갔던 아랍의 봄은 바레인에도 거센 민주화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바레인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민주화운동세력을 탄압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은 수백만 발의 최루탄을 무차별 발포해 최소 39명이 죽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바레인 정부에 가장 많은 최루탄을 수출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바레인의 평화활동가들은 한국의 평화활동가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한국 정부가 바레인으로 최루탄을 수출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레인 경찰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며 시민들의 주거 지역애 최루탄을 쏘아대는 영상입니다. 


아랍 국가들과 1세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채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이 끊이질 않고 있는 예멘 내전에서도 한국산 무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예멘 내전으로 10만 명이 죽고 365만여 명이 살던 곳을 떠나야 했고, 그중 37만 명이 예멘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전쟁 난민이 되어 흩어졌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인 예멘 내전에서 한국산 무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반군 쪽이 공개한 영상에서 "새얼 수류탄"이라고 한글이 새겨진 수류탄에 입을 맞추는 반군 병사들이 나옵니다. 한편 정부군이 반군을 공격하는 또 다른 영상에서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전체 개발하고 LIG 넥스원이 생산한 대전차유도미사일 현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 21의 취재에 따르면 한화가 직접 예멘에 수류탄을 판매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UAE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한국이 무기를 수출하는 중동 국가들이 예멘 내전에 개입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무기가 반군의 손에 넘어간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한국은 무기 수출뿐만 아니라 아크 부대를 보내 UAE의 특전사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참전만 안 했다 뿐이지 무기를 팔아서, 군대를 훈련시켜주면서 예멘 내전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먼 반군이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습득한 것으로 보이는 수류탄, 한국어로 새얼수류탄이라는 글씨가 정확하게 찍혀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의 글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에 따르면, 2018년 200여 명의 사망자를 낳은 터키 아프린 주 공습에 한국산 전차가 사용되었고, 2017년에는 시리아와 이라크가 한국산 제조 탄약을 소유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1983년부터 2006년까지 3만 3천 개 이상의 한국 소총을 구입했고, 나이지리아 내 비무장 그룹이 대우의 K2 자체 탑재 소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왜 고향 땅을 떠나 머나먼 동북아시아의 작은 섬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그들을 난민으로 내몬 것은 내전이었고, 그 전쟁에서 한국산 무기가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군사비 지출의 규모, 무기 거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실제 분쟁 지역에서 사용되는 무기들을 봤을 때 한국은 이미 전 세계 전쟁터의 주요 행위자입니다. 그중에서도 침략자, 가해자에 가깝죠. 


그렇다고 우리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책임이 크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변화를 가장 크게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쓸 글들에서 이런 지점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열심히 데모를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지, 막으려면 우리 시민들은 무엇을 어떻게 헤애하는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참고한 책과 글


1968년 2월 12일, 고경태, 한겨레 출판 2015

그런 남자는 없다,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편, 손희정 허윤 기획, 오월의봄, 2017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권김현영 엮음, 교양인, 2017


전쟁 만드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겠습니까, 쭈야, 2019

세상을 바꾸는 비폭력의 힘-평화운동이 궁금한 시민들을 위한 안내서, 이용석,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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