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의 허구성과 안보 개념의 확장
한미 동맹은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함에 따라 기존에 계획했던 한미연합사령부의 전반기 연합지휘소 훈련을 별도의 공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코로나19 확산 차단 노력과 한미 장병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박한기 한국 합참의장이 먼저 훈련을 연기할 것을 제안했으며,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이 코로나19 관련 현 상황에 대한 엄중함에 공감하고 연기하기로 합의하여 결정했다
지난 2월 27일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코로나19로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했습니다. 2월 27일 중단된 한미연합훈련은 한 달이 지난 3월 27일까지 아직 재개되지 못했습니다.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한미연합훈련만 중단한 게 아닙니다. 국방부는 이미 2월 24일 전군에 지침을 내려 야외훈련을 전면 중지하고, 영내 및 주둔지 훈련으로 대체하도록 했습니다. 한편 병무청은 2월 24일부터 전국 지방 병무청에서 진행하던 병역판점검사(일명 신체검사)를 중단했습니다. 4월 13일에 재개할 예정이라는데 그때가 되어봐야 재개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장병들의 안전이 먼저죠. 박수 쳐야 하는 결정입니다, 아니 당연한 결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평소에 '안보공백' 운운하면서 한미군사훈련 안 하면 북한이 당장에라도 쳐들어 올 것처럼 그러더니, 병역기피자들 이름과 사는 곳 공개하면서까지 군입대에 차질이 생기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그러더니, 왜 군사훈련이 중단되고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가 중단됐는데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건 아니죠. 코로나19라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사훈련이나 군입대 같은 건, F-35 전투기나 사드 같은 건, 다시 말해 강한 군대 같은 건 코로나19라는 위기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미국의 코로나19 환자가 어느덧 중국과 비슷한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증가 추세를 보면 조만간 중국을 앞지를 거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 역시 코로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 군민은 전염병 앞에서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전염병은 보건 의료 영역이니까 군대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전통적인 군사 안보 영역에서는 군대가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과연 그럴까요? 미국과 전쟁을 해서 미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는 없을 겁니다. 미국이 얽혀있는 대부분의 전쟁은 미국이 침략하는 전쟁이지 침략당하는 전쟁이 아닌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미국이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침략하는 국가는 없지만, 미국 국민들은 과연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2800~3500여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일도 충격이지만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서, 그것도 가장 상징적인 건물인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는 이미지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고 미국인들에게는 커다란 공포였을 겁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졌지만 911 테러는 막을 순 없었습니다.
한편 미국은 총기 사고로도 유명합니다. 잊을만하면 총기 난사 사건 뉴스를 접할 수 있습니다. 수십 명이 죽어가는 총기 난사 사건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실제 총기 사고로 죽는 사람이 하루 평균 세 자릿수에 달합니다. 2017년에는 하루에 109명 꼴로 1년 동안 4만여 명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마다 수만 명씩 죽어나가는 일에 세계 최강 미군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쓸모가 없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 최강 군대이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만들고 소비하는 나라기 때문에 미국 내에도 총기가 너무 많이 넘쳐나는 게 아닐까요? 911 테러도 마찬가지입니다. 테러범들은 절대 용서하면 안 될 범죄자들이고 그들의 행동은 결코 이해할 구석이 하나도 없지만, 미국이 전 세계에서 수행한 무수한 전쟁과 테러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요? 강한 군사력, 넘쳐나는 무기가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평화와 안보를 해치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옛날에는 안보라고 하면 총칼을 들고 외국 군대로부터 국경선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죠. 한반도를 가르고 있는 철조망, DMZ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전쟁의 양상이 변했습니다. 전쟁의 양상은 특히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데요, 100년 전인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참호전의 형태로 군인의 목숨을 갈아 넣는 전쟁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투기의 등장으로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드론과 같은 무인항공기와 ICBM 같은 최첨단 무기들이 전쟁을 주도해 나갑니다. 더 이상 총칼과 탱크로 국경선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게 된 것이죠.
한편 시민들의 욕구와 국가의 역할도 변해갑니다. 20세기에는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가 전통적인 의미의 군사적 침략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식민지를 겪고, 현대전의 전쟁터가 된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는 군사적 충돌에 대한 공포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전쟁보다도 다른 것이 우리의 삶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북한의 핵무기보다 코로나19, 몇 년 전 일어났던 포항 지진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나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재난이 시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합니다. 그에 따라 국가가 요구받는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강한 군사력으로 국경선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국가의 의무였다면 이제는 자연재해나 사회적 재난에 마주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안보의 개념, 안보에서 중요한 것들이 바뀌어가고 있는 거죠.
군사력에 기반한 전통적인 안보 개념에 대비되는 최근의 이런 새로운 흐름을 '인간 안보', '사회적 안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평화적 수단에 기반한 새로운 안보 개념들은 아직까지는 논리에서도 더 짜임새를 갖춰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짜임새를 갖추더라도 완벽한 대안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의 방식, 한 가지의 대안 만으로 전쟁과 폭력을 근절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인 군사안보를 한 번에 없앨 수도 없고, 외교처럼 국가 주도의 노력도 계속하고,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전쟁에 맞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안보의 개념을 도출해야겠죠.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까지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일을 군사적 수단에 크게 의존해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명백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냥 실패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다. 전쟁 준비 때문에 쫓겨나고, 전쟁으로 죽고 다치고, 전쟁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지독한 가난으로 죽음에 내몰렸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땅이 전쟁터가 되어 난민으로 내몰리고, 부자 나라의 사람들은 테러를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군사안보의 많은 영역은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군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군사 독재를 겪었고, 여전히 이런 나라들이 지구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군사안보는 전쟁을 막지도 못했고, 피해를 줄이지도 못했고, 때로는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명백한 실패를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실패를 인정한 뒤 다른 시도, 다른 노력으로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이 확진자 숫자에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유럽 국가들도 확진자가 급속히 늘고 있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도 확진이라고 합니다. 군사안보의 허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코로나 이야기를 썼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하루 빨리 인류가 코로나19의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