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홀가분합니다. 전업작가나 연구자가 아닌 분들 중에 책을 쓰는 사람들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짧은 글 한편이면 몰라도 한 호흡으로 글을 이어가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막 지겹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러더라고요.
사실 제 책은 두꺼운 책도 아니거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 나름대로 고생하며 썼는데 분량이 200쪽도 안 되는 걸 보니 사실 좀 허무하기도 합니다. 물론 얇고 쉬운 책을 쓰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래도 200쪽은 넘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190여쪽이라니,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진짜. 책 쓰는 일은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인 거 같아요. 이 책 한권 쓰려고 지난 20여년간의 활동경험을 탈탈 털고 추가로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공부했는데 그래봤자 200쪽도 안 되는 거잖아요. 대체 500쪽 넘는 책을 쓰는 양반들은 어떻게 글을 쓰나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작가들을 좀 다르게 보게 됐어요. 제가 출판사를 한 5년 다녔는데 그때는 아무래도 출판노동자의 입장이다보니 편집자나 디자이너, 마케터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지 작가들의 어려움은 관심 밖이었거든요. 지 이름으로 된 책 내는 건데 당연히 사서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었고, 문장을 엉망으로 써오는 작가들의 글을 고치면서는 '아무리 컨텐츠가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냐? 이런 글솜씨로 작가하면 아무나 작가하겠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직접 저자가 되어보니,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더라고요. 제가 몰래 흉봤던 작가님들 죄송합니다.
공부하려고 책을 썼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공부가 되는 글쓰기>라는 책이 있어요. 요지는, 사회의 모든 일은 어떤 종류든 글쓰기를 해야하고 그래서 글쓰기 교육이 중요하고,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가다듬는 공부 과정이다는 주장을 펼치는 책이에요. 저도 이 생각에 동의합니다. 글 쓰는 과정이 공부예요. 글을 써야 공부를 하게 돼요.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 아이디어 혹은 말로 썰을 풀어낸 생각들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닙니다. 그걸 글로 써보면 알아요.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내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억지인지. 그래서 글을 쓰는 과정은 그 부족한 논리와 논거를 공부하며 채워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어요. 특히 블로그에 글 한 편 쓸 때보다 책으로 출판하는 글을 쓸 때는 더더욱 공부를 해야하더라고요. 틀린 정보, 혹은 설득력 없는 논리로 주장을 펼칠 수 없으니까요.
다행히 저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뭐 그렇다고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요. 공부를 좋아하지만 노는 걸 더 좋아하니까요. 암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느낌을 계속 확인하고 싶어요. 그래서 늘 새로운 걸 배우거나 이미 배운 걸 더 깊이 있게 알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제겐 중요해요. 날마다 발전할 순 없어도 적어도 작년의 나보다 올해의 내가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스스로 납득하고 싶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뭔가를 배우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렇지 않았음 책을 안 썼거나, 훨씬 더 힘들게 썼겠죠.
책을 쓴 두번째 이유는 의무감 때문입니다. 사회운동은 보통 이 세상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보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를 주장합니다. 그러니 늘 정치적으로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죠. 마이너리티이면서 동시에 보편이 되려고 노력하는(혹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 사회운동이라면, 결국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말하고 글쓰고 아무튼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주장을 펼쳐서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주장하기'는 활동가의 직업적인 의무라고 생각해요. 육상 선수가 체력훈련을 하는 것처럼, 음악가가 작곡을 하거나 연주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주장하기'가 꼭 글쓰기일 필요는 없죠. 영상이나,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딴 건 다 못하고 그나마 만만한 것이 글쓰기니 책을 쓴 거죠. 친구들이 책 냈다고 '작가'라고 부르며 놀리는데, 뭐 책을 쓴 사람은 다 작가니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저는 저를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활동가죠. 활동가로서 책을 썼고, 활동가이기 때문에 책을 쓴 거예요.
내 글의 장점과 단점 혹은 특징이 무얼까를 생각했어요. 평화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한다거나 혹은 미학적인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건 애시당초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평화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론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면 좋겠지만 아름다운 문장에 신경쓰다보면 겉멋만 든 글이 나오더라고요. 말했듯이 저는 활동가 정체성으로 글을 썼어요. 그게 제 글의 장점이나 특징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구자가 작가는 쓰지 못하는 이야기를 활동가는 쓸 수 있으니까요. 제가 평화운동을 하면서 겪은 일들, 고민한 흔적들을 담고자 했어요. 평화운동 현장에서 보고 듣고 나눈 이야기들을 쓰니 연구자들의 글보다는 생동감 있고 재밌을 것이고, 작가들의 글보다는 논리정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근데 제가 생각한 장점이 잘 발휘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책을 한 권만 읽고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하잖아요. 책 쓰면서 공부를 계속 하다보니 저의 부족함이 점점 크게 보여서 자신감이 줄어들더라고요. 활동가가 글을 쓰면 이렇게 좋구나, 이런 반응을 독자들이 보여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지금은 좀 자신 없어요.
아 그리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학자들이 부러 어렵고 생소한 단어 사용해서 쓴 어려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쉬운 글도 좋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다루는 주제나 내용에 따라 다르긴 하죠. 하지만 세상의 보편적인 인식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책은 어느 정도는 불편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쉬운 책은 자극이 없고,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죠. 게다가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어려워죽겠는데 그걸 쉽게만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도 쉽게 쓰려고 무진장 노력했어요. 입문서잖아요. 평화 이슈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더 깊은 관심을 갖게 하려면, 관심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관심이라고 생기게 하려면, 일단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재미없거나 어려워서 바로 내려놓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재밌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썼어요. 평화 이슈라고 무겁고 진지하게만 접근하지 않았고 유명한 영화, 소설 같은 것도 많이 인용했어요. 캡틴 아메리카와 타노스가 등장하는 책입니다.
먼저 평화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시민들, 혹은 약간의 관심이 있지만 무엇을 어디서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해요. 그분들에게는 새로운 인식, 새로운 사실, 새로운 정보가 이 책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평화운동 쪽으로 한발짝 다가오면 좋겠어요. 평화운동 되게 재밌게 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거든요. 사람들이 평화운동을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 매력을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이 책을 읽고 평화이슈 뿐만 아니라 평화운동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꼭 직업적인 활동가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평화운동을 찾아가는 독서를 독자들이 해준다면 저로서는 크나큰 영광이죠. 쉽고 재밌는 책을 목표로 썼으니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로 평화활동가 동료들이 읽어주면 좋겠어요. 평화활동가들에게는 뭐 새로운 내용, 혹은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닐 거예요. 그치만 제 동료들이 어떻게 읽을지 너무 궁금해요.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분명 저와 생각이 다른 점도 있을 텐데, 그런 것도 궁금해요. 읽고 비평을 해주기를 바래요. 칭찬은 뭐 원래 넘치는 사람들이니,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비판이에요. 이 책이 부족한 점을 평화활동가들이 지적해주고 채워주면 좋겠어요.
당연하죠 있죠. 좀 더 빨리 마무리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너무 오래 끌었어요.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근데 다음에 다시 써도 또 이럴 거 같아요. 제가 막 엄청나게 자기관리 철저하게 시간을 쪼개 쓰고 이런 사람이 아니라서, 일하면서 책 쓰면 매번 이럴 거 같아요.
내용적으로는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것이 있어요. 요한 갈퉁이 말하는 '적극적 평화', 혹은 전쟁없는세상식으로 말하면 '건설적 대안 만들기'에 대한 내용은 책에서 다루질 못했어요.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부정의에 대한 저항만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삶의 양식들이 필요하잖아요. 부정의에 저항하는 것과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 이 두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해요. 전쟁없는세상 같은 단체는 구질서에 저항하고 반대하고 이런 건 잘하지만 건설적 대안을 만드는 것은 잘 못해요. 혹은 적극적 평화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그룹들은 구질서, 구체제에 저항하고 낡은 것을 파괴하는 걸 잘 못하죠. 아무튼 적극적 평화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쉬워요. 근데 이걸 다루기엔 제 경험과 고민이 너무 없어요. 제가 쓸 수 없는 내용이었어요. 이건 다른 평화활동가들이 다른 책에서 채워주기를 바랄 뿐이죠.
또 하나, 이 책에 빠진 내용이 있어요. 병역거부 운동이에요. 이건 일부러 뺀 건 아닌데 책을 다 쓰고 보니 빠져있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일부러 뺀 건 아니에요. 목차 짜고 써내려가면서도 병역거부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는 걸 꺠닫지 못했어요. 제가 가장 오랫동안 하고 있는 활동인데 말이죠. 원고를 다 쓰고 나서 임중혁 대표님이 한국의 병역제도에 대한 글을 부록으로 넣자고 제안해주셔서 거기서 살짝 다룬 게 전부예요. 병역거부운동은 특히 한국에서는 평화운동에서 중요한 위치인데 어쩌다 빼먹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는데 그 책은 병역거부 운동에 대한 책이에요. 첫 번째 책에서 병역거부를 다루지 않은 덕에 쓸 이야기가 한가득 남아있습니다.
네 책을 꾸준히 쓸 생각이에요. 말했듯이 활동가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활동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책 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아요. 전업 작가가 아니니 생계때문에 무조건 써야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충분히 공부하고 생각하면서 책을 써서 전쟁없는세상의 주장을 알려내고 사람들을 설득해야죠. 출간 목록이 막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그럴정도로 제가 쓸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일단 두 번째 책까지는 계약을 했으니까 올해 안에(계획상으로는 상반기에) 다 쓸 거예요. '병역거부의 질문들'(가제)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도 연재하고 있어요. 그 뒤로도 아이디어는 몇 개 있는데 아이디어가 글이 되고 책이 되는데까지 아주 많은 단계가 있으니까요. 언제 어떤 책을 쓰게 될지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평화운동에 관한 책 말고 다른 책들도 쓰고 싶어요. 취미생활로요. 저는 활동가가 밥먹고 잠잘 때도 사회운동 생각만 하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활동과 분리된 개인의 삶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취미생활도 필요하고요. 그런 취미 생활을 하면서 그 내용으로 책을 써보고 싶어요.부담없이. 평화운동에 대한 책은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러워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책은 활자화되어 영원히 남는 거잖아요. 명색이 평화활동가인데 내가 내 전공 분야에 대해 틀린 말을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불안감이 늘 있어요. 근데 취미 활동 관련한 글을 쓰면, 물론 책으로 나오는 마당이면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튼 그런 부담감은 덜하잖아요. 부담감은 한편으로는 책임감이기도 한데,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편하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삶에 꼭 필요하고, 기왕이면 책도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지는 않고 그냥 생각뿐이죠.
네 있어요. 여러 차례 말했는데 활동가들에게 글쓰기가 의무라고 했잖아요. 저는 다른 평화활동가들이 책을 쓰면 좋겠어요. 아니,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각을, 주장을, 경험을 글이든 영상이든 뭐든 아무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의 경험, 사유, 주장은 개인의 것이지만 활동가라면 그것을 사회적인 것,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여기서 겸손함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 방기예요. 특히 평화활동가는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소수인데, 그들의 경험 사유 모든 게 사회의 공적인 자료죠. 꼭 글을 쓰면 좋겠어요.
모든 글이 다 책이 되진 않겠죠. 책으로 나오려면 어쨌든 어느 정도는 팔려야 하니까. 하지만 평화활동가들의 많은 글이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회를 못 만났을 뿐이죠. 저는 출판인들이 이 지점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에게 글쓰기가 사회적인 행위이고 의무라면, 출판인들에게는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책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인 행위이고 의무잖아요. 출판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가들에게 책을 내자고 제안하고 겸손 떨면 설득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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