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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24. 2021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짧은 리뷰

대학 선배가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 이름은 라이프 앤 페이지. 학교 다닐 때 무척 친한 누나였고, 내가 출판사 들어가려고 준비할 때 조언을 해준 누나였다. 출판사 다니면서도 몇 차례 만나서 수다도 떨었고, 누나가 출판사를 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첫 책은 의리로 샀는데 아직 안 읽었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많은 와중에 관심 분야가 아닌데 의리로 산 책은 대체로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러다 라이프 앤 페이지에서 최근에 나온 책은 재미있을 거 같아서 냉큼 샀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라는 기억에 남는 제목의 책을 쓴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책 제목대로 작가가 그동안 살았던 집들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 서울로 올라와 동생과 살던 집, 혼자 살았던 집과 결혼한 뒤 파트너와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 작가는 "나의 기억은 집이라는 물질적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특정한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집의 형태, 구조, 배치, 마감재, 색깔, 빛의 방향, 심지어 벽 귀퉁이의 흠집 같은 것이 기억의 일부로서 나의 서사를 형성했다."라고 말하는데 과연 각각의 집들의 도면과 내부 사진을 보듯 정성스럽고 자세하게 과거의 집들을 그려낸다. 


손으로 무언가를 예쁘게 만들고 꾸미는 데 재주가 없는 나는 집에 이토록 애정을 갖고 예쁘게 꾸미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모르니 잘 안 하게 되고, 잘 안 하니 더 못하게 된다. 20대 내내 내 생활을 주로 집 밖에 있었고 집은 잠자고 씻으러 들어오는 공간으로 기능했고, 30대가 되어 혼자 살게 되었는데 밥은 잘 차려먹어도 집을 꾸미고 가꾸는 일은 여전히 젬병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작가가 살았던 동네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어렸을 적 제법 여유 있던 시절 살던 대구 북성로와 범어동, 집은 몰락하고 서울로 올라와 가난과 함께 살았던 신림동과 금호동, 조금 더 나이 먹은 뒤 직접 꾸민 집에서 혼자 살았던 일산의 행신동과 결혼한 뒤 살게 된 정발산동과 구기동에 대한 이야기가 한축을 이룬다. 나는 집에는 관심이 없지만 동네에는 관심이 많다. 길이 어떻게 나 있는지, 그 길을 따라 어떤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지, 그 길과 가게를 어떤 사람들이 오가는지를 살피고 분석하는 일은 재미있다. 정발산동과 신림동은 그래도 자주 가봤고 행신동은 두어 번 가봤지만 금호동과 북성로, 범어동은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책 덕분에 동네 산책을 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집과 동네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내 경우엔 내가 태어나서 6살 때까지 살았던 쌍문동 집과 나름 정원도 차고도 있던 광주 화정동 집, 그리고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 갔던 광주 동림동 집이 떠올랐다. 집과 함께 떠오른 기억은 상실의 이미지다. 쌍문동 집에서는 동생과 놀러 나갔다가 동생을 잃어버리고 혼자 집으로 왔던 기억이, 화정동에서는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어서 엄마가 사라진 줄 알고 혼자 울었던 기억이, 동림동 아파트에서도 학교 갔다 왔는데 경비실에 열쇠도 없고 집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도 없어서 복도 계단에 쪼그려 앉아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에겐 집이 늘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는데 그 반대의 사건들이 기억에는 강하게 남는 거 같다. 상실은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집과 동네에 대한 이야기지만 나는 무엇보다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특히 같은 집에 사는 아주 친밀한, 그래서 때로는 서로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는 식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생각해보면 집에 대한 이야기는 같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도 같다. 공간(집)은 관계로 확장된다. 하재영 작가는 누가 집에서 어떤 공간을 점유하는지,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살피고, 특정한 집에 얽힌 만남과 이별의 기억을 돌아본다. 책을 많이 보는 엄마의 공간은 모두의 공간이기도 한 부엌이었고 아빠의 공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서재였다는 이야기며, 결혼한 뒤에도 자신은 꼭 부부가 각자의 공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오랫동안 삶을 나눈 반려견과 이별한 이야기 들을 집에 대한 기억과 함께 길어 올린다. 


나는 특히 다음 문장이 좋았다.


"관계에 소극적이던 내가 범준에게 먼저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자에게 의존적이었던 이전과 달리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여도 괜찮았으므로 거절당해도 괜찮았다."


나는 작가와 성격이 좀 많이 다르지만 요즘 내 목표도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족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혼자 설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혼자서만 살아가지 않고 기꺼이 곁을 내주며 다른 이의 곁에도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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