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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27. 2021

믿습니까? 믿습니다!

짧은 리뷰

입덕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 그토록 빠져든다는 것이 나로서는 신기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나도 취향이 있고,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이 있고, 누군가의 팬이라고 할만한 구석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이소라의 모든 앨범을 가지고 있다. 그치만 덕후는 못 되는 것이, 나는 모든 앨범을 한 장씩만 가지고 있으며 소장용으로 포장재도 안 뜯은 앨범은 없다. 앨범의 쓸모는 음악을 플레이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산 앨범을 열심히 듣는다. 또 나는 이종범의 선수 시절 기록을 좔좔좔 외울 수 있다. 그치만 이 경우에도 덕후는 못 되는 것이 나는 이종범 관련 굿즈를 사본적이 없으면 야구팬들은 흔히 장만하는 유니폼조차 사본적이 없다. 책으로 치자면 나는 프리모 레비와 서경식, 정희진, 정세랑, 정인경, 김승섭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물론 최은영과 김초엽의 단독 저서는 다 읽었지만 뭐 한두 권이니. 3권 이상 낸 작가 중에 출간된 모든 책을 읽은 이는 오후 작가가 유일하다. 


우연하게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읽은 뒤로 그의 유머러스한 문체와 박학다식함에 감탄하며 그가 쓴 책은 나오면 바로 사 본다. 물론 책마다 편차는 있고 더 재밌는 책과 덜 재밌는 책이 있지만, 그래도 오후 작가의 책은 은 잘 읽히고 읽고 나면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좋은 지식과 정보들이 가득하다. 그가 정치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고,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 소개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데, 아무튼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정치적 성향이 나와도 접점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도 그의 책을 챙겨보게 되는 이유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진지한 사회운동의 이슈와 주장에 호감을 표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을 가진 작가다. 그래서 이번 책 <믿습니까? 믿습니다!>도 출간된 걸 알자마자 사서 봤다. 크게 기대하고 오래 기다린 책 <사이보그가 되다>, 내가 딱 좋아하는 콘셉트인 <굉장한 것들의 세계>와 함께 주문했는데, 가장 먼저 <믿습니까? 믿습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오후 작가는 과학 전공자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과학작가로 인식된다며 일부러 과학과 가장 거리가 먼 분야로 '미신'에 대한 책을 썼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이 책도 과학책으로 손색없다. 과학이 특정 정보가 아니라 사고의 방식이나 체계, 세계관이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미신을 비과학이라고 비판하거나 미신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지를 밝혀내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아무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도 삶과 인생에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미신에 대해서도 그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왜 인류가 미신에 기대 왔고 어떻게 기대 왔는지를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특이한 것은 오후 작가가 모은 미신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신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기독교, 불교와 같은 기성 종교들도,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경제 체제와 사상 체계도, 심지어 농업혁명까지도 미신의 범주에서 다룬다. 오후 작가가 이야기하는 미신은 실험과 관찰로 증명 가능한 과학의 영역이 아닌 것들, 특히 실험과 관찰 없이(혹은 그런 게 불가능한 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약속하고 그걸 사람들이 믿는 행위를 통칭한다. 수렵채집으로 나름 부족하지 않게 살던 인류가 농업혁명이라는 긴가민가한 사기를 믿어 버린 일, 투쟁하면 노동자의 세상이 올 거라고 철석같은 믿음을 전파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면 행복하다는 지상 최대의 거짓말을 한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 종교인과 정치인과 운동권은 비슷한 점이 많은데. 실체가 없는 관념으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신앙이니,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관념으로 존재하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설교를(주장을) 믿으면 삶이든 내세든 암튼 좋아진다고 말하지만 물이 100도씨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처럼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는다. 물론 의심도 하지만, 의심도 믿음의 일종이다. 물이 100도씨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은 믿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그런 면에서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것을 미신의 카테고리에서 살펴본 오후 작가의 시선이 나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오후 작가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나 경쾌하고 유쾌한 언변과 신기한 역사적 예시들 속에서 빛나는 유머다. 근거 없는 믿음을 파 해치고, 그 믿음과 관련한 재밌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소개한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 섬에서 발달한 화물교(보급물을 운반하던 비행기에서 실수로 보급물품을 적재한 박스가 떨어지곤 했는데, 다른 문명과 교류 없이 지내온 남태평양 섬의 토착민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박스에 가득 담긴 식량을 보고 신의 기적이라고 여기며 만들었다는 종교)라든지, 그리스 최강의 군대인 스파르타군을 물리친 것이 150쌍의 게이 커플로 구성된 신성부대라든지(역시 사랑이 종교를 이긴다. 퀴어퍼레이드VS혐오세력)  하는 잡지식(?)을 늘어놓는다. 진짜 알쓸신잡이 따로 없다. 


덕분에 '세상에 이런 일이'스러운 잡지식을 소개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과학 과학책이다. 미신에 대해 말할 뿐이다. 과학책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저자의 사고방식이나 논증 과정이 지극히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야매 인척 하는 과학사책인데, 원래 야매가 더 재밌는 법이니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과학책이다. 





어디서 이렇게 잡학다식한 지식과 정보를 찾아내는지 참 궁금하다. 지난번 책을 읽고 작가에게 메일을 썼다. 평화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인데, 요즘 우리 단체가 무기 만들어 파는 군수산업체를 타깃으로 활동한다고, 군수산업체들과 관련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굴해 글을 써주십사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하루도 안 되어서 답장이 왔다. 우리 활동을 지지한다며, 다만 그 분야는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지금은 다른 책 쓰는 일로 시간이 없다고, 언젠가 그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면 말씀해주신다고 했다. 오후 작가가 군수산업체들의 모습을 취재해서 이렇게 재밌게 써주길 나는 계속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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