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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31. 2021

양심과 속죄

영화 <스카우트>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엄마 아빠와 영화 <스카우트>를 봤다. 나는 이미 본 영화지만 엄마 아빠가 아직 안 보셨다길래, 그리고 부모님도 좋아할 거 같아서 함께 봤다. 아빠는 나주 출신, 엄마는 목포 출신이었고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광주에 살았으니, 우리 식구 모두가 해태 타이거즈 팬이었으니 틀림없이 부모님도 이 영화에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부모님은 무척 재밌게 보셨고 나는 덕분에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내게 크게 다가왔던 지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이 영화를 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는 선동열의 스카우트를 다룬 야구 영화 혹은 이루어질 듯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임창정과 엄지원의 멜로 영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역사 역화 등등. 사실 이 모든 게 한데 섞여 있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나는 이 영화를 양심의 자유와 속죄에 대한 영화로 봤다. 


영화 줄거리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대학 야구부 직원인 호창(임창정)이 당시 고교 최고 투수 선동열을 라이벌 대학에 빼앗기지 않고 스카우트하려는 과정의 이야기와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러 내려간 광주에서 대학시절 애인이었던 세영(엄지원)과 다시 만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시공간이 1980년 5월 7일부터 17일까지의 광주다. 영화는 한 번도 광주민주화운동을 핵심적인 이야기도 다루지 않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이 겪는 여러 일들에 광주민주화운동이 녹아들어 가 있다. 


영화의 한 장면. 1980년의 이종범과 호창. 야구팬들에게는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장면이 많은 영화다. 


나는 호창과 세영의 관계에 주목해서 영화를 봤는데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헤어진 진짜 이유와 그 이별이 호창에게 남긴 것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호창은 대학시절 연인 세영에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는데 그 이유를 모른다. 시간이 한참 흘러 사회인이 되어서 세영을 만나서도 자신이 왜 이별 통보를 받아야 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호창마저도 지워버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야구부 학생들이 학교의 구사대가 되어 학교 건물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운동권 학생들을 폭력을 행사해 와해시키는 일에 호창 또한 동원되었다. 운동권으로 그 점거 시위에 참석하고 있던 세영은 호창이 야구방망이로 시위 중인 학생들을 폭행하는 장면에 충격을 받고 이별을 결심했다. 


선동열 스카우트 직전에 스스로도 지워버렸던 이 기억을 호창은 떠올리고 이별의 이유를 깨닫는다. 호창이 이 기억을 지운 건 스스로도 그 일이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창은 구사대 역할을 하라는 선배의 명령에 "왜 우리가 그런 일까지 해야합니까"라고 항변하다 맞았고, 부상당한 후배가 시위대에게 맞기 전까지는 시위대와의 충돌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시위대 학생을 야구부 학생들이 진압하는 것, 그것은 호창의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여기서 양심은 대단한 사상이나 신념이 아니다. 실제로 호창은 대단한 사상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군인 독재자 전두환을 보고 남자로서 매력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전두환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또 아닌, 좌우 어느 쪽이든 진지한 사상이나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캐릭터다. 하지만 시위대 학생을 학교가 폭행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잘못된 행동을 강요당한 순간은 호창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당한 순간이다. 


우리는 양심의 자유에 대해 말할 때 대단한 양심들을 떠올리곤 한다. 준법서약서 종이 한 장을 안 써서 감옥살이를 수십 년간 해야 했던 비전향 장기수들이나 역시나 군복무를 거부하며 감옥을 택했던 병역거부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양심의 자유에 대한 논의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이런 이들의 양심의 자유도 중요하다. 하지만 양심의 자유가 헌법상의 권리이고 모두 국민이 이를 누릴 권리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하는 양심의 자유는 감옥마저 감내하는 대단한 양심들뿐만이 아니라, 호창처럼 대단한 사상이나 신념이 없어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부당한 일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거나 그런 상황이라면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다. 


호창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신이 했던 과거의 잘못에 대해 뒤늦게 세영에게 사과한다. 그 사과는 세영을 향하는 동시에 호창 자신에게 하는 속죄로 들렸다. 과거 자신의 행동을 말렸던 스스로의 양심에게 하는 사과이고, 동시에 호창의 양심이 스스로 반성하는 호창을 용서하는 속죄의식처럼 보였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고, 가장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호창처럼 속죄하는 사람이 드물다. 양심의 자유가 무너지는 순간을 우리들은 아주 많이 겪는다. 그중에는 호창처럼 그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거나, 양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거듭 반복하다가 결국 양심이라는 것에 무뎌지는 사람들도 생긴다. 양심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순간은 비전향장기수나 병역거부자들처럼 특별한 경험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호창처럼 자신의 일터에서, 혹은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양심의 자유가 위협당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양심의 자유는 국가나 권력에 의해 침해당하기 쉽다. 호창이 특별히 비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 개개인의 의지와 힘은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법률로써(우리나라는 헌법상 권리로) 특별히 언급하고 보호한다. 


요즘 병역거부자 재판을 보면 병역거부자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양심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검사들이 제법 있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고, 한 번도 양심에서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그런 양심적 병역거부자만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다. 그들이 틀렸다. 무수히 흔들리고 때로는 호창처럼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고 그 행동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 그런 이들의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바로 양심의 자유를 지켜나가는 일이다. 검사들이 진짜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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