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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Feb 03. 2021

재난에서 탄생한 못난 놈들의 새로운 가족

스위트 홈 리뷰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워킹데드나 킹덤은 재미있게 봤지만 뭔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스위트 홈은 재미도 있었고, 보고 난 뒤 든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를 느꼈다. 인상 깊었던 점 몇 가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재난 공동체에서 피어나는 이타심 


스위트홈을 보면서 레베카 솔닛이 쓴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서평 보기)가 떠올랐다. 예측하지 못한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생존해나가는 이야기니 이 책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책은 여러 재난을 사례로 들고 있는데 레베카 솔닛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다. 재난 상황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이타적이고, 혼란과 패닉에 빠져 폭력을 일삼거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엘리트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범죄를 저지르거나 약탈을 일삼는데, 이런 행동에 나서는 이들은 주로 타인이 자신의 것을 빼앗을 거라고 여기는 이들이라는 말로 덧붙인다. 

 

스위트홈을 보면 레베카 솔닛의 분석은 옳다. 주인공들은 고립된 아파트에서 서로 돕는다. 군대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지만 굉장히 폭력적이며(어쩌면 괴물보다 더 폭력적이며) 상황을 좋지 않게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군대의 역할에 대한 최종 판단은 시즌2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거 같다) 준섭의 패거리는 약간은 사이코패스처럼 그려졌는데 솔닛이 말한, 남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의 이들로 볼 수 있을 거 같다. 


아파트 주민들은 아예 대놓고 이타적인 인물들-정재헌, 박유리, 한두식 등등-도 있지만 많은 경우 소심하거나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행동도 한다. 그들은 경비에게 쓰레기 생선을 가져다준다든지, 자기 살겠다고 괴물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수의 위치를 노출시킨다든지 하지만, 괴물의 습격을 받는 주민들을 구할 때는 힘을 합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이타심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호포 사피엔스의 생존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덩치도 작고 힘도 세지 않은 포유류가 생존확률을 높이려면 무리 지어 살아야 하는데, 그 생존본능이 재난상황에서도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즐겁다


사실 재난 영화나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건 드문 장면이 아니다. 워킹데드나 킹덤 같은 좀비물만 봐도 사람들은 예전에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살던 사이였어도 일단 서로 협동하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갈등 없는 인간 사회는 없으니까. 


스위트홈이 여타의 작품들과 다르다고 느낀 점은 주인공들의 출신 성분이다.  워킹데드에서는 경찰관인 릭을 중심으로 무리가 형성되고, 킹덤에서 무리를 이끄는 이창(주지훈)은 무려 세자니 그보다 높을 수 없는 신분이다. 반면 스위트홈의 주인공들은 다들 별 볼 일 없는 이들이다. 혹은 사회에서 낙오자 취급을 받는 이들이다. 왕따인 청소년(차현수), 장애인(한두식), 깡패(편상욱)다. 그나마 좀 멀쩡해 보이는 이들도 전직 알코올 중독자(정재헌), 환자(안길섭), 꿈이 좌절된 이(이은유)디. 초반 리더 역할을 하는 서이경은 특전사 출신의 소방공무원이지만 결혼을 앞두고 남편을 잃었고, 브레인 역할을 하는 이은혁은 의대생이지만 부모 없이 동생을 돌보느라 학교를 휴학 중이다. 괴물들의 세상이 되지 않았더라도 삶이 버거웠을 이들, 버거운 삶 속에서도 꾸역꾸역 살아갔을 이들이 주인공인 재난 드라마라는 점이 여타의 작품들과 차별적이라고 느꼈다. 

 


가족의 해체와 새로운 가족


주 배경이 생활공간인 아파트지만 정상 가족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김석현(우현)과 안선영(김현) 부부가 유일하다.(물론 이들도 자식이 없다.) 이들은 유일한 정상 가족이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 가운데 가장 사이가 나쁜 가족이다. 주인공인 현수의 경우 부모님과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스테레오 타입의 정상가족이었지만 현수 역시 가족들과 불화한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자살 시도를 하는 현수를 부끄러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 오히려 끈끈한 정을 보여주는 가족은 이은혁, 이은유 남매(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 같은 완전체가 아닌 가족이나 길섭과 유리(환자와 간병인) 같은 유사 가족이다. 


한편 괴물이라는 재난이 흔들어놓은 관계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버지를 잃은 수영(허율)과 영수(최고)를 사고로 갓난쟁이를 잃고 빈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명숙(이봉련)과 두식이 돌보는 것처럼 말이다. 명숙이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괴물이 된 것은 어쩌면 수영과 영수를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 때문이지 않았을까. 한편 스위트 홈 주민들 사이에 형성된 연대감 또한 일종의 가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거 같다.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말한 것처럼 "같이 밥을 먹는 입구녁"이 식구라면, 스위트 홈의 주민들도 식구인 셈이다. 이처럼 스위트홈은 기성의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생존을 위한 돌봄으로 관계를 맺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보여준다. 



뽀나스: 총기 없는 사회의 다양한 무기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상 깊은 것은 바로 스위트 홈 주민들의 무기다. 워킹데드만 보더라도 총이 메인 무기다. 좀비랑 싸울 때든, 인간과 싸울 때든 탕탕탕 두두두두 하면 끝이다. 그런데 한국은 총기 소지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나라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징병제 국가이기 때문에 총을 쏠 줄 아는 사람들의 비율은 어쩌면 미국보다 높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군대나 경찰처럼 국가가 인정한 소수 집단만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 준섭의 패거리가 가진 총은 군인들을 습격해서 빼앗은 총이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은 총 말고 다양한 무기를 찾아내고 만든다. 부엌칼을 장대에 달아 전기를 흐르게 한 현수의 무기(얼핏 보면 짝퉁 언월도 같다), 야구 방망이에 칼날을 박은 지수의 무기, 목발을 개조해 총처럼 쏘는 두식, 석궁을 들고 다니는 유리, 정재헌의 장검까지 다양한 무기가 보이는 액션씬은 총싸움 액션씬보다 훨씬 다채롭다. 아 가장 원초적인 무기인 편상욱의 주먹과 굉장히 한국적 무기인 화염병을 빼먹으면 안 된다. 



'괴물'엔 역시 화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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