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모든 것에 때가 있다면 책을 읽는 데도 때가 있을까? 레베카 솔닛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산 것은 세월호 참사 직후였다. 아직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기 전, 다시 말해 레베카 솔닛이 맨스플레인으로 한국에서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나는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부제 때문에 샀다.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세월호 참사의 충격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그렇지만 책 읽기는 진도가 나질 않았고, 한 챕터도 다 못 읽고 독서를 포기했다. 몇 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집어 든 것은 올해 초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갑작스레 퍼지고 우한에 머무는 한국 국민들이 정부에서 보낸 전세기를 타고 돌아오기 직전이었다. 우한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2주 동안 격리되면서 머물 예정지(예산이었는지, 천안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주민들이 우한 거주 국민들이 자기 동네로 오는 것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 걸었다. 다행히 곧바로 입장을 바꿔 불안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환대했지만, 처음 내건 현수막의 이미지가 내겐 너무 강렬했다.
그때 다시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떠올랐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들의 이타주의와 공동체성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잘 읽어내려갔지만 여전히 진도가 쑥쑥 나진 않았다. 올초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마지막 챕터만 남겨두고 두어 달 동안 또 독서가 멈춘 시점에서 미국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마침 책의 마지막 챕터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던 이야기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 챕터여서 조지 플루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이해하는데 도움되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레베카 솔닛이 쓴 일종의 재난 보고서다. 1905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1917년 캐나다 핼리팩스에서의 대폭발,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 2001년 911 테러,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지난 100년 동안 북미 지역의 재난을 다룬다. 아쉬운 점도 있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야기하는 바, 아시아나 유럽의 재난을 다루진 않았고, 북미 지역의 재난만 다뤘다. 아무래도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서 재난 이후를 접근하다 보니 저자에게 익숙한 지역에 한정했을 거 같다. 내가 북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좀 더 이해가 깊었다면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책에서 다룬 재난은 지진이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도 있고, 폭발사고나 테러와 같은 인간이 만든 재난도 있다. 하지만 모든 재난은 재난 이후 더 큰 재난이 찾아오고 이는 결국 사람들(특히 정부와 엘리트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점에서는 자연재해나 인간이 만든 재난이 별반 다르지 않다.
레베카 솔닛이 다섯 가지 사례에서 발견하는 공통된 재난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재난을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이타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공동체성을 발휘한다. 자발적으로 음식과 생필품을 나누고, 그전까지는 서로 얼굴도 몰랐던 이웃들이 밤마다 모여 서로를 위로한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이 약탈이나 폭력 등의 범죄를 저지르지만 극히 일부이다. 반면 정치인, 군인, 경찰 등은 '엘리트 패닉'에 빠져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그들은 자발적이고 이타적으로 재난 복구에 나선 시민들을 폭도로 간주한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지진 자체 피해보다 그 이후 불이 번진 것이 더 큰 피해 상황이었는데 시 당국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화재 진화를 금지시키면서 불이 더 커졌다. 불을 잡아야 할 시간에 시 당국과 경찰은 시민을 잡았다.
책을 읽어보면 각각의 사례에서 위와 같은 재난 이후의 특질들이 각각 어떻게 고유하게 발현되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다. 예컨대 멕시코시티의 대지진 이후 주민들은 다양한 카니발적인 공동체를 복원했지만 911 테러 이후 뉴욕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헌신성은 결국에는 재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각각의 사례는 재밌지만 겹쳐서 보면 반복적인 이야기가 많아 좀 지루할 수도 있다. 재난을 마주하는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을 파악하려는 사람이라면 가장 최근 사건인 911과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다룬 4부와 5부만 읽어도 될 거 같다. 하지만 좀 더 깊게 재난에 대응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비교해서 보고자 한다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이 좋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역시나 911 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였다. 가장 최근의 일이라 나에게도 기억이 또렷한 일이기도 하고, 레베카 솔닛이 다루는 자료도 다른 사례들이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미디어의 발달과 인터넷 시대의 일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911 테러를 다룰 때 레베카 솔닛은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국방과 외교에 관한 놀라운 분석을 보여준다. 911 당시 납치된 비행기는 모두 4대였다고 한다. 두 대는 우리가 알다시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고 한 대는 국방부 건물을 들이받았고, 나머지 한 대는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했다. 승객들이 테러범을 막았기 때문에 국회의사당이나 백악관을 파괴하려던 비행기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와 미 국방부는 실패했고, 시민들은 방어에 성공한 셈이다.
레베카 솔닛은 하버드 대학 교수 일레인 스캐리의 말을 빌려 그동안 미국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까지 무시하며 지켜온 군사안보 시스템을 문제 삼는다.
국방부 건물을 들이받은 비행기와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한 비행기를 나란히 살펴보면, 국방의 두 가지 개념을 볼 수 있다. 하나는 권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하향식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적인 틀 속에서 작동되는 분산적이고 평등한 모델이다. 첫 번째 모델이 실패하고 두 번째 모델이 성공한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군사구조를 검토하고 어쩌면 하향식이 아닌 민주적인 국방 모델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329쪽)
또한 수전 팔루디의 연구를 인용해 대중매체가 911을 어떻게 "전통적 남성성의 승리이자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하기에 얼마나 급급했는지"(325쪽)를 보여준다. 우리가 아는 911 테러는 미국의 외교, 국방 정책의 실패가 주요한 원인인데, 대중매체들은 교묘하게 미국이 나약해지고 여성화되었기 때문에 공격당했다는 인식을 퍼뜨리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뉴스가 911을 다룰 때 마치 중요한 일은 죄다 남성적인 영웅이 해결하는 재난 영화처럼 묘사"했다는 분석도 페미니스트이기에 가능한 분석이다. 실제 재난 현장에서 재난을 극복하는 노력은 성별, 인종, 계급을 가리지 않았는데 뉴스에 등장하는 것은 제복 입은 남성 전문가들이었다.
이처럼 재난을 둘러싼 담론을 페미니즘으로 분석한 것은 무척 흥미로웠고, 특히 재난으로부터 이끌어낸 국방과 안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평화활동가들이라면 눈여겨볼만했다.
레베카 솔닛은 재난 시 정부와 경찰 군인들이 시민들 폭도로 여기며 적대시한다고 말하는데, 이조차도 평등하지 않다. 이것이 극적으로 드러난 재난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친 일이었다. 뉴올리언스는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였고, 지배층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 시설을 만드는 데 소홀했고 이것이 재난을 더 크게 키웠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난 이후 지배층의 '엘리트 패닉'은 어디서나 있었지만 뉴올리언스에서는 더욱 심했는데, 이것은 인종 문제와 연결된 듯하다.
레베카 솔닛에 따르면 당시 연방정부와 군과 경찰은 뉴올리언스를 폭도들에게 점령당했고, 강간과 살인과 약탈이 횡행한 곳으로 인식하거나 묘사했다. 물론 뉴올리언스는 다른 도시보다 범죄율이 높았고, 재난 이후 일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재난 때와 마찬가지로 이타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범죄는 헛소문이거나 오해일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구조를 포기한 시 당국 때문에 고립되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허리케인으로 난장판이 된 식료품점에서 통조림을 가져간 것을 약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살인과 폭력은 오히려 다른 데서 일어났다.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한 자경단들이 서슴지 않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죽이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들은 살인을 굳이 숨기지도 않고 떠벌리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공격하지 않으면 저들이 자신의 집을 약탈하고 가족을 해쳤을 거라는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한 그 지겹고도 무섭고 끔찍한 인종차별적인 생각이 그들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Black Lives Matter 시위와 시위를 촉발시킨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도심의 빈민 지역이 재난 지역과 다름없"(433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카트리나와 뉴올리언스 사례에서 특별히 흥미로웠던 건 재난 이후 사람들이 보여준 호혜와 이타주의를 사회운동 맥락에서 분석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가 아닌 조직된 사회운동(이 책에서는 '행동주의'라고 표현하고 있다)의 역할과 활약을 보여준다. 특히 이 지역은 재난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거나 그러한 가능성을 마주했던 다른 지역 사례와는 달리 도시 전체가 파괴되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공동체가 와해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운동 활동가들과 재난지역의 피해 당사자들은 서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갈등하고 긴장관계에 놓이기도 하는데, 레베카 솔닛은 그 모습까지도 책에 담고 있다.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힘들게 읽은 챕터인데 나중에 꼭 다시 읽어봐야 할 챕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