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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n 20. 2020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짧은 리뷰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유익한 정보를 가득 담고 있는 지루한 책이다. 다 읽는데 두 달이 걸렸다. 책을 쓴다는 확실한 목적이 없었다면 나 또한 이 책을 완독 하지 못하고 읽다가 포기했을 거다. 이제 이 저자가 쓴 또 다른 책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를 읽을 차례인데 덜컥 겁부터 난다.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는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독일의 자본가들, 미국의 자본가들이 어떻게 히틀러의 집권을 도왔는지, 왜 도왔는지, 집권 후에는 어떻게 히틀러가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지원했는지, 그리고 나치와 협력한 대가로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얼마나 얻었는지를 파해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독일 재계와 히틀러의 관계를, 2부에서는 미국 재계와 나치 독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독일 재계가 원했던 파시스트 히틀러


저자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두 가지 보편적인 역사 유형을 비판한다.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특별히 나쁜 '악'이라는 평가와, 히틀러가 정당한 보통의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오해에 기반해서 평범한 독일인들이 히틀러와 나치를 지지했고 원했다는 인식이다. 전자의 나치와 히틀러를 예외적인 존재로 치부하면서 제국주의 유럽-각국의 약탈적인 자본이 벌인 나쁜 짓들을 은폐하게 되고, 후자의 인식은 히틀러와 공생했던 독일의 지주, 은행가, 자본가들의 책임을 은폐하게 된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예외적인 존재도 아니고, 인구의 대다수였던 가난한 하층민들의 지지로 권력을 잡은 것도 아니고, 독일의 기득권층-대지주, 거대 교회, 은행가, 자본가들이 히틀러의 집권을 바랐고, 히틀러와 나치가 집권하도록 도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독일 재계와 기득권이 히틀러의 집권을 원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히틀러가 눈엣가시인 노동조합 및 좌파를 숙청하고 자본가들의 이익을 실현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실제 히틀러는 이 역할을 아주 충실히 이행했다.


1930년대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공황 때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를 수탈하며 경제위기를 극복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원료를 싼 값에 들여오고 상품을 비싸게 팔아넘길 식민지가 충분하지 않았다. 미국의 뉴딜과는 다르게 히틀러의 정책은 군사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규모 재무장 프로그램을 추진한 것이다. 탱크, 잠수함, 트럭, 비행기, 전쟁 물자를 대량으로 주문하는 방식으로 경제위기에 대응했다. 티센, 크루프, 지멘스, 다임러-벤츠, 베엠베BMW 등이 히틀러의 주문서를 받았다. "버터 대신 총"(괴링의 말)을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 국내 총생산에서 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933년 1월에 1퍼센트도 안 됐는데 1938년 가을에는 거의 20퍼센트로 증가했다. 그 결과 서민들은 더 가난해졌고, 군수물자를 만드는 기업가와 은행가는 더 부자가 되었다. "히틀러의 재무장 프로그램은 수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을 사회화했다"(99쪽)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유대인 기업을 강탈하는 등 독일 자본이 원하는 일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재무장 프로그램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독일 재계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전쟁이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독일의 은행과 기업은 나치 독일이 점령한 국가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산시설을 점유하는 등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전후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미국 측 검사 텔퍼드 테일러가 "미치광이 집단 나치스가 아니라 기업들이 진정한 전범이다"라고 주장(136쪽) 한 것이 충분히 타당하다는 말이다.


사실 노동조합과 좌파를 경멸하는 히틀러를 반긴 것은 독일의 재계뿐만이 아니었다. 스위스와 영국, 프랑스의 많은 기업과 은행도 히틀러에게 투자했고, 히틀러를 통해 돈벌이를 하려고 했다. 그중 히틀러와 나치당의 가장 가까운 동료는 역시나 미국 재계였다.



미국 재계가 히틀러를 좋아한 이유, 전쟁이라는 최고의 장사  


헨리 포드는 인종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헨리 포드를 비롯해 당시 많은 미국 백인 자본가들이 인종주의에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히틀러를 심정적으로 지지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게다가 히틀러는 자본가들의 철천지 원수였던 소비에트를 지구상에서 절멸시키려는 남자가 아닌가. 미국 재계의 지지는 심정에 그치지 않았고 재정적인 면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장사꾼이 공짜로 돈을 주진 않는다. 미국 기업들은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막대한 부를 쌓는다. 프레스콧 부시(조지 W. 부시의 할아버지)는 독일 정부의 채권을 미국 금융시장에 판매해서 돈을 벌었고, 이 돈은 그의 아들이자 걸프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가 석유사업을 시작하는 자금이 되었다. 포드 자동차, 아이비엠, 코카콜라 등은 독일에 자회사를 차려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히틀러의 제 3제국은 그야말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던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노동조합을 탄압해서 무력화시킨 것도 기업들에겐 중요했고, 전쟁에 집중된 경제라는 점이 특별히 미국 기업들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독일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이 일반 물자를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익성이 높았기 때문이다.(262쪽)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른바 '전격전'은 미국 기업 덕분에 가능했다. 미국의 조력이 없었다면 탱크, 비행기, 트럭을 생산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전격전의 필수품이면서 독일에서는 나지 않는 고무와 석유를 미국 기업이 공급해준 것이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고 수행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미국 기업들이 적국인 독일에 전쟁 물자를 공급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국 기업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 히틀러를 지지했던 헨리 포드는 영국이 사용할 무기 생산을 거부했다가 영국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이 전쟁을 연장해서 독일과 영국 양쪽에서 돈을 무한정 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국에 무기를 지원했다.


한편 독일 내 미국 자회사들은 독일이 미국과 전쟁 중일 때도 무척 안전했다고 한다. 나치는 국제 자본주의 질서(사유 재산 보호)를 존중했고, 미국의 본사들을 겉으로는 자회사가 적국의 손에 넘어간 것처럼 슬픈 표정을 하면서도 비공식적인 라인을 통해 "평시와 다름없이" 자회사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물론 나치와 히틀러는 독일 회사들을 만족시켰던 것처럼 미국 회사의 자회사들이 전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제너럴모터스, 포드, 아이비엠, 아이티티, 코카콜라들이 나치에 협력하고 나치로부터 도움을 받아 많은 수익을 올렸던 미국 회사들이다.


헌데 이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까닭은 미국 재계가 전쟁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정치권에 엄청난 로비를 해서 자신들의 전쟁 책임이 부각되지 않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자기들은 독일에 위치한 자신의 자회사를 나치당에 강탈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또한 훗날 저명한 역사학자들을 지원해서 자기 회사의 역사를 정리하게 하면서 교묘하게 나치와 협력한 과거를 지워나갔다. 연구비를 지원받은 학자들은 포드나 제너럴모터스가 선별해서 제공한 사료를 바탕으로 전쟁의 책임을 나치와 히틀러에게 돌리고 미국 기업들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드는 연구물을 냈다.


한편 미국 재계가 전후에 자신들의 몫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신경 썼던 것이 있는데, 독일 기업과 은행의 나치 관련 범죄를 덮는 것이었다. 전쟁으로 큰돈을 함께 벌어들인 동료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피고인석에 서게 되면 자신들의 가리고 싶은 치부-미국 기업들이 나치와 긴밀히 협력했다는 사실과 전쟁 중에도 독일군에 전쟁 물자를 공급해서 조국을 배신했다는 사실(345쪽)이 들통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


저자는 미국의 기업들이 이미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전쟁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재계의 부름에 늘 응하는 미국 정부는 이를 수행한다. 부시와 트럼프는 노골적이고 무식하게 수행했고, 오바마는 세련된 방식으로 수행할 뿐이다. 미국에서 전쟁은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빈자의 부를 어처구니없이 부자에게 재분배하는 도구로 기능한다."(353쪽)고 말한다.


위의 이야기들을 아주 풍부한 근거 자료를 가지고 주장한다. 독일 기업가들, 회사들, 은행가들, 미국의 은행가들, 기업인들의 이름이 무수히 나오고, 그들이 얻은 경제적 이익을 여러 숫자로 보여준다.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지만,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직접 읽고 필요한 사례들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지금 심정으로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다시 들춰보고 싶지는 않다. 낯선 이름들인 데다, 숫자 또한 낯선 화폐 단위여서 잘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책 읽는 진도가 엄청 더뎠다. 그럼에도 그중에서 솔깃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딱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유대인 절멸수용소와 아이비엠


아이비엠은 히틀러 치하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기업 중 하나인데, 유대인 절멸 수용소가 아이비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비엠이 독일군에 제공한 홀러리스 계산기 등 여러 장비 덕분에 나치는 유대인 명단을 만들고, 강제수용소 수감자를 등록하고 희생자 명단을 관리할 수 있었다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한 절멸수용소에는 홀러리스 부서라고 불렸던 아이비엠 사무소가 있었다고 한다.


코카콜라와 환타


코카콜라는 독일군에 청량음료를 공급한 공식 전쟁물자 공급업체였다. 미군 병사들이 자유의 맛 코카콜라병을 들고 서유럽을 해방시킬 때 독일 병사들의 손에도 코카콜라병이 있었던 거다.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1941년  12월부터 독일의 코카콜라 회사는 미국산 시럽을 구할 수 없게 되어서 노란색 청량음료를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환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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