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평화는 처음이라>(가제) 초고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이 책을 읽어봤다. 내가 쓸 책이 청소년책을 주 타깃으로 하는 책은 아니지만, 청소년 또한 중요한 확장독자다. 그런데 나는 아는 청소년이 없고 그러다보니 청소년들의 관심사나 그이들의 지식과 정보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간접 체험을 하기도 하는데, 드라마에서도 청소년을 본 최근 기억이 '인간 수업'과 '스카이 캐슬'이다. 그다지 참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 『청소년책 쓰는 법』을 사서 봤다. 믿을 수 있는 유유출판사에서 출간했고, 게다가 청소년책 편집자가 쓴 책이다. 실용서란 모름지기 이런 사람들이 써야 한다.
시중에 허다한 글쓰기 책을 나는 보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딱 세 권의 글쓰기 책을 봤는데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유유출판사에서 나온 『공부가 되는 글쓰기』다. 앞의 두 권은 글쓰기의 사회적, 인문학적, 철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인문서고 『공부가 되는 글쓰기』는 글쓰기의 실용적 의미를 강조하는 책이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 저렇게 써야 한다고 알려주는 책이 많지만 내겐 큰 감흥도 없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물론 안 읽는 것보다는 도움되겠지만 이런 류의 글쓰기 책들이 실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다양하고 그들이 쓰고 싶은 글의 형식, 주제 같은 것들도 천차만별이니 글쓰기 실용서가 실제로 글쓰기에 유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반면 『청소년책 쓰는 법』은 여러 모로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일단 책의 컨셉과 목적이 분명했다. 청소년책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청소년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실무자가 조언해주는 책이고, 특히 '쉽게 쓰기가 가장 어려운 당신'들이 읽기 좋게 만든 책이다. 어떤 글을 누구에게 어떻게 쓸 것인지가 명확하니 내용이 구체적이었다. 나는 이것이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편집자가 쓴 책이라 가질 수 있는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쓰는 지난한 과정의 고통을 편집자들은 잘 안다. 때문에 약간의 허영심이나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만으로 책을 쓰진 않는다. 그리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자들은 대개의 경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나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지는데 편집자들은 이런 것들을 다 덜어내 버린다. 편집자가 쓴 실용서이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필요한 내용만 들어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기대한 만큼 좋았다. 유유출판사 책답게 디자인도 책 매무새도 딱 필요한 요소만 갖췄다. 한 손에 들어오는 판형에 200쪽이 넘지 않는 두께. 무겁지 않아서 들고 다니기 좋다.
내용을 살펴보면 청소년책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 누가 읽어도 좋은 내용이다. 물론 청소년 독자, 청소년책 시장에 대한 분석과 청소년책의 여러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만큼 청소년책을 쓸 사람들이 읽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결국 글쓰기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 1차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일기장에 써서 혼자 보는 게 아니라면 '누구에게' '무슨 메시지를' '어떻게' 전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유용한 책이다. 특히 전문적인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닌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인들이나 교통 약자들에게도 유익한 것처럼, 청소년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성인들도 재밌게 볼 수 있다.
물론 쉽게 쓰기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쉽게만 쓰인 책은 밋밋하고 매력이 없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이런 지점에 대해서 글 쓰는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나 자세를 말해준다.
지식을 전달하려는 저자라면 지식이 지식으로서 충분히 흥미롭다는 것, 그리고 지식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거 정말 멋있는 얘기라서 꼭 해 주고 싶어요" "알면 진짜 재밌는 거예요!"라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 책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쓰는 사람조차 자신 없는 지식을 누가 환영할 수 있을까요? (책 92~93쪽)
이러한 태도는 글쓰기를 넘어서 무언가 자신의 주장을 하거나 자신 만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모든 일에 해당하는 거 같다. 예컨대 평화운동을 하는 나의 경우 가끔씩 관심 없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를 고민하고는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하고자 하는 그 일 자체, 평화운동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 그 자체로 흥미롭고 의미 있다는 걸 우리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그럴싸한 이벤트를 기획할 때도 있다. 그런 이벤트는 반드시 망한다. 잔재주도 필요하겠지만, 잔재주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뿌리와 줄기가 튼튼할 때인 거 같다. 결국 평화운동이 자체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지가 핵심이다. <평화는 처음이라>를 쓰면 서도 이 지점을 가장 깊게 고민해야겠다.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간도 있다. 그럴 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나에게는 도피처다. 원래 서평 쓸 생각이 없었는데, 견디고 버티기 위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