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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16. 2020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짧은 리뷰


20대에는 주로 시집과 소설을 읽었다. 서른 살에 출판사에 들어갔고 전쟁없는세상에서는 비폭력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출판사에 다니면서 문단에 염증을 느껴서였을까? 아니면 비폭력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사회운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랬을까? 아무튼 30대에 접어든 나는 문학보다는 수학, 과학 분야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권을 읽고 보니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나는 수학과 과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책보다는 수학과 과학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인간과 사회는 과학과 수학을 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즉 수학/과학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책이 재밌었다. E가 MC의 제곱인 걸을 증명하는 것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의미이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내 관심사였던 거다. 


특히 두 명의 저자가 쓴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전치형과 정인경. 전치형은 단독 저서는 『사람의 자리』 한 권 밖에 없지만 그가 쓴 글은 과학잡지 「에피」의 편집위원이고 한겨레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에피」의 편집위원이고 한겨레 신문에는 '과학의 언저리'라는 꼭지를 연재한다.) 전치형의 글은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글을 주로 쓴다. 


전치형이 과학과 인간의 관계를 테마로 현재를 다룬다면, 정인경은 역사를 다룬다. 정인경의 책은 처음 만난 건 지금은 사라진 동네 서점 '땅콩 문고'에서였다. 서점 평대에 진열된 『뉴턴의 무정한 세계』가 내가 만난 정인경의 첫 책이었다. 제목을 보고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땅콩문고'의 큐레이션과 돌베개 출판사에 대한 믿음으로 책을 샀다. 20세기 초반 이광수의 『무정』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뉴턴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근대 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는 책이었다. 척 재미있었고,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근대 과학은 근대 서구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일 뿐 그 자체로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과학을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기술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를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과학이라는 지식과 세계관이 이식되는 과정, 즉 과학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증폭시켰다. 나는 저자 정인경의 책을 사 보기 시작했고,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가 2020년에 4월에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가 20세기 초반 조선의 과학사라면,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는 시대에 있어서는 인류가 문자와 숫자를 사용하기 시작하기 전인 선사시대부터 과학기술이 제국주의에 복무하고 핵폭탄을 개발하고 사용한 20세기까지 다루고 있고, 지역적으로는 유럽과 중동과 중국과 한국의 과학을 서로 비교하며 각각 지역에서 발달한 과학의 특징과 왜 그런 과학이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정인경 책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서구 근대 과학의 빛나는 성취를 다루지만 절대로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서구 근대 과학의 명암을 다루는 것을 넘어서 여러 시대와 지역을 비교해가며 과학의 발전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본다. 특히 중국의 과학과 조선의 과학을 다룬 파트는 그간 내가 알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는 동시에, 서양 근대 과학의 기저에 흐르는 유럽중심주의를 상대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시선을 보여준다. 과학에 묻어있는 인간 사회의 지문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즉 절대적인 지식으로 여겨지는 과학의 발견들이 결국 인간 사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견되는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 어떠한 과학적 발견이 왜 일어나게 되었고, 그것은 그 이후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두루 살펴보다 보면 유럽만이 과학의 담지자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다. 


정인경이 소개한 니덤의 책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소개한 맥락이 특히 그러하다. 니덤은 "유럽이 본래 우월하기 때문에 과학혁명이 일어났다는 안일한 대답을 피하기 위해" "과학혁명이 왜 유럽에서만 일어났을까?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인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중국의 과학기술이 14세기 이전에는 서양보다 훨씬 앞장섰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한다. 하지만 정인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니덤의 질문이 가진 오류까지도 소개한다. 즉,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을 전제로 중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얼굴의 유럽중심주의라는 것이다. 물론 니덤의 빛나는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니덤을 비판할 수 있는 그다음 논의가 가능해졌을 것이다. 


과학사 책이 대개 그렇듯, 이 책은 과학책이면서 역사책이다. 나는 확실히 원자와 전자를 설명하는 내용보다, 원자의 발견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재밌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는 『뉴턴의 무정한 세계』보다는 덜 재밌었는데, 그건 내가 세계사보다 한국 근현대사에 더 관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과학의 역사, 과학이 어떻게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발전하면서 역으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너른 시야에서 관찰해보고 싶다면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는 꽤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인경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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