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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ug 03. 2020

이어즈&이어즈

짧은 리뷰

(스포일러 있음)


가장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는 극우 포퓰리스트가 집권한 멀지 않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해 있지만 지금의 우리가 충분히 상상 가능하고 납득 가능한 수준이며, 디스토피아의 원인으로 과학기술이 지목되지 않는다. 멀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에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은 여전히 권좌에 올라 있고,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는 끝났지만 허수아비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한다. 그리고 영국은 혜성같이 등장한 극우 정치인 비비안 룩이 집권한다. 극우 정치인답게 이민자를 혐오하고, 인권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책을 펼친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가장 끔찍한 디스토피아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과학기술이 지금보다는 발전해 있지만 이미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는 기술이 좀 더 발전한 형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세상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가장 강한 의지는 과학기술과는 상관없는, 굉장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포퓰리즘과 인종주의, 차별과 혐오의 확산은 과학기술의 책임이기보다는 정치의 책임이니까. 상당히 가능성 높은 미래를 우리 앞에 펼쳐주니 타노스가 지구에 쳐들어오는 설정보다 훨씬 더 소름 돋을 수밖에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드라마의 주인공은 영국의 한 가족이다. 물론 이 가족 안에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 흑인, 아시아인 같은 유색인종과 이민자, 미혼모 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지만 드라마는 그들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그들의 소수자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삶의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고 지극히 평범한 시민으로 그려진다. 정치적 성향도 제각각인데, 선거 때 노동당, 보수당, 사성당(극우정당), 투표 거부 등 다양한 선택을 한다. 


특히 남매들 가운데 맏이인 스티븐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가장 평범한 영국인일지도 모른다. 평범이라는 규정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평범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에서 멀끔하게 양복 차려 입고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백만 파운드를 잃고 일자리마저 잃은 인물. 바람을 피우다 들켜 쫓겨나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동생의 파트너에게 나쁜 짓을 하는 인물.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개차반인 오너에 맞서기보다는 자신이 가담한 범죄에 대한 파일을 경찰에 넘기고 자살하려는 소심한 인물이다. 아주 정의롭지도 못하지만, 또 인면수심으로 잘못을 외면하지도 못하는 인물이다. 마지막화에서 남매의 할머니는 이런 세상을 만든 게 바로 '우리들'이라고 말하는데, 그 우리에 가장 많은 교집합을 가진 인물이지 않을까. 아무튼 이 드라마 캐릭터 중에는 히어로도 악당도 없다. 가끔씩 등장한 비비안 룩을 제외하면 유명인도 없다. 



스마트폰과 SNS는 과연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사회적인 위기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된다. 첫 번째는 영웅들의 활약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다. 어벤져스가 타노스를 무찌르는 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약한 자들의 연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옹산 어벤져스가 까불이는 잡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방식에서 요즘 자주 등장하는 게 바로 스마트폰과 영상 중계다. 예를 들면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잡는 건 경찰 서도형(황정민)이지만, 조태오가 권력을 이용해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관객들이 생각하는 건, 서도형과 조태오의 난투극을 평범한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퍼뜨렸기 때문이다.  


이어즈&이어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주인공들이 스마트폰으로 라이브 중계를 한다. 난민을 몰래 가두고 전염병을 일부러 퍼뜨려 죽도록 방치해둔 어스트와일 난민 캠프(?)의 실상을 생중계 해 비비안 룩과 사성당의 도덕적, 법적 책임을 폭로한다. 결국 비비안 룩은 총리에서 물러나고 수감된다. 물론 아주 충실한 디스토피아 드라마답게 이 승리는 결국 신기루 같음을 일깨워주지만, '아무개'들의 저항으로 절대권력을 무너뜨리는 쾌감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라이브 중계로 정말로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는 서사가 나는 조금은 게으르고 안일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조리는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 가령 박근혜와 최서원의 국정농단은 사람들이 몰랐기 때문에 유지되었고, 세상에 드러나자 그들은 거센 퇴진운동에 떠밀려 감옥에 가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다 이러진 않는다. 삼성가의 불법과 탈법 행위를 이미 많은 국민이 알고 있지만 부조리는 개선되지 않고 이재용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 


물론 이어즈&이어즈가 사회운동의 방법을 탐구하는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감 넘치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이나 대안을 드라마가 제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현실감 넘치는 장르적 상상력이 결말에 대해서도 다른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안전한 서사가 아니라 뭔가 색다른 서사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 재미로만 보기에도 충분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구성과 진행이 탁월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결말이 살짝 아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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