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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ug 14. 2020

아무튼, 떡볶이

짧은 리뷰

 

떡볶이를 좋아합니다


떡볶이를 무척 좋아한다. 하기사 떡볶이 안 좋아하는 한국 사람 드무니, 굳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 식사로도, 간식으로도, 안주로도 떡볶이면 오케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밖에서 사 먹기도 하고 집에서 해 먹기도 한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떡볶이가 몇 개 있다.


이모가 만든 간장 떡볶이.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둘째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 지금은 없어진 둔촌주공아파트였다. 나보다 6살, 8살 어린 사촌들이 있었다. 마침 배가 고팠는데 이모가 떡볶이 먹지 않겠냐고 물었고 나는 목소리도 우렁차게 "네!" 라고 소리쳤던 거 같다. 냉장고에 있는 떡볶이를 전자레인지로 덥혀 주셨는데, 한 입 베어 무니, 아뿔싸 고춧가루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달달하고 짭조름한 간장 떡볶이였다. 매운맛을 기대했던 나는 순간 당황했고, 떡볶이를 남겼다. 사촌동생들이 아직 어려서 맵지 않게 조리했던 건데 미처 예상하지 못했고, 처음 먹어본 매운맛이 전혀 없는 떡볶이에 무척 당황했다. (이모는 미국으로 이민 가셨다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마침 지금 미국에 와 있다. 내일이나, 모레 이모 뵈러 갈 거다.)


잠실여고 앞 즉석떡볶이. 막내 이모가 한때 광주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셨는데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앞에서 하셨다. 친구들과 자주 가서 먹었다. 서울로 전학 왔는데 동생네 학교인 잠실여고 앞 분식집에서 즉석떡볶이를 먹고선 '아 음식은 전라도라지만 즉석 떡볶이는 서울이 맛있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잠실여고 앞에는 당시 광주에서 먹을 수 없었던 파파이스도 있었지만 나는 파파이스 치킨이나 비스킷보다 즉석떡볶이가 더 맛있었다. 떡볶이를 다 먹고 난 뒤 참기름에 김가루를 더해주는 볶음밥이란. 20년도 더 전에 먹은 맛이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고인다. 한참 뒤에, 병역거부로 성동구치소에 수감된 친구 출소하는 날 마중 갔다가 같이 간 사람들을 꼬셔서 잠실 여고 앞에 가서 즉석떡볶이를 먹었다. 분식집 이름이 기독교적인 이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천국의 맛이었다.


'오시오 떡볶이'와 '불타는 떡볶이'. 대학생 때 우리 과에서 논쟁이 붙었다. NL PD 논쟁도 아니고, 시사나 사회 문제에 대한 논쟁도 아니고, 과연 최고의 떡볶이가 '오시오 떡볶이'인지 '불타는 떡볶이'인지를 두고 다퉜다. 익명게시판에서 벌어진 논쟁이었는데 나름 치열했다. 지금 보면 국물떡볶이의 시조(?) 격이었을 오시오 떡볶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에 맞서 나는 불타는 떡볶이를 지지했다. 불타는 떡볶이는 국물이 좀 더 걸쭉했고, 튀김을 범벅해서 주는 세트 메뉴가 유명했다. 논쟁은 팽팽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현실에서는 '불타는 떡볶이'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없어졌고, '오시오 떡볶이'는 최근까지도 장사를 하는 것을 확인했다.


청주교도소 떡볶이. 감옥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떡볶이가 반찬으로 나왔다. 당시 떡볶이는 카레, 콩장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교정시설마다 음식 솜씨가 다르고 맛도 달랐다. 가장 맛없던 곳은 수원구치소였고, 가장 맛있는 곳은 청주교도소였다. 수원구치소에 있다가 청주교도소로 이감 갔으니 맛의 차이가 정말로 극적이었다. 교도소 음식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과장하면 편의점에서 1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마시다가 향긋한 핸드드립 커피 마실 때의 기분이랄까. 훙덩한 국물에 밍숭맹숭한 떡이 둥둥 떠다니는 수원구치소 떡볶이를 먹다가 이감 와서 찰지고 빨간 국물에 달짝지근하고 매콤하고 쫄깃한 떡인 담긴 청주교도소의 떡볶이를 먹으니, 징역 생활의 퀄리티는 떡볶이 맛으로 정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덕질 한 번 안(못) 해본 사람   


떡볶이를 아무리 좋아한들, 나는 요조처럼 떡볶이 먹으러 해미읍성까지 가는 정성을 들이지는 않는다. 떡볶이뿐만이 아니다. 노력이 필요할 때는 나름 노력도 하지만 순전히 자발적으로 내 모든 삶을, 혹은 꽤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쏟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낯설은 일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덕질을 안 해봤다. 나는 무엇이든 아주 깊이 빠져드는 일이 좀처럼 없다. 취향이 없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뚜렷한 편이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걸 못한다고 해도 죽을 거 같진 않다. 병역거부로 감옥 갔을 때도, 좋아하는 것 하나도 못해도 그럭저럭 지냈다. 좋아하는 가수도, 좋아하는 작가도, 운동선수도 그냥 그들의 노래, 글, 플레이가 좋을 뿐이지 윤리적으로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들 개개인의 삶은 사실 내 관심 밖이다. 온갖 책이며 영화, 노래, 스포츠는 내 삶을 즐겁게 해 주고 윤택하게 해 주지만 그것들이 사라진 대도 내 삶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팬질이라는 걸 진득하게 해 본 적도 없고 굿즈를 사본 일은 더더욱 없다. 듣지 않는 CD는 사질 않고, 책은 사놓고 못 읽을 건 많지만 그래도 읽을 마음 없이도 팬심으로 사는 경우는 없다. 좋아하는 선수의 싸인볼마저 탐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팬질이나 덕질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부럽기도 하다. 많이 부러운 건 아니고 내가 가보지 않은 길,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인다.


'아무튼 시리즈'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작은 출판사들이 하나의 시리즈를 함께 이어간다는 게 흥미로웠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도 매력적이라 느꼈다. 하지만 굳이 찾아 읽어보진 않았다. 덕질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덕후들의 책에도 관심이 덜했다. 어쩌면 <아무튼, 프로야구>나 <아무튼, 평화운동> 같은 책도 있었다면 읽어봤을지도. 그렇게 나는 '아무튼 시리즈'를 서점에 갈 때마다 마주치면서도 한 권을 사 볼 생각을 안 했다.


아끼던 동네 서점 '땅콩 문고'가 있던 자리에 새로 생긴 발전소 책방에서 현정이가 책을 사준다길래 고른 것이 <아무튼, 떡볶이>였다. 그 당시 마땅히 사고 싶은 책이 없기도 했고, <아무튼, 떡볶이>가 '아무튼 시리즈' 중에 발군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기도 했고, 나도 떡볶이를 제법 좋아하기 때문에 골라 들었다. 읽고 나서 역시, 나는 떡볶이 좋아한다고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말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물론 아주 좋아하지만, 맛있는 떡볶이를 먹으러 도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나는 하지 않는다. 그냥 집에서 해 먹고 말지. 내 애정의 깊이가 얕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방식이 다른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덕질하는 사람들의 애정은 과연 나의 애정과는 무엇이 다른지 다시 한번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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