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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15. 2020

현대사 몽타주 - 발견과 전복의 역사

짧은 리뷰


전쟁의 역사 - 유럽, 백인, 남성의 역사      


역사책에는 전쟁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우리가 아는 위인의 대부분은 전쟁 영웅이다. 그나마 전쟁을 끝낸 소수의 영웅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전쟁이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거나 맹활약한 정치인, 군인들이다. 20세기의 역사는 더더욱 전쟁사다. 제국주의의 팽창과 식민지 쟁탈 전쟁,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그 이후 냉전까지. 물론 전쟁의 역사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전쟁사는 승자의 역사이고, 특히 20세기 이후의 전쟁사는 사실상 유럽의 역사, 백인의 역사, 남성의 역사다.      


『현대사 몽타주』의 저자 이동기 교수는 스스로 “냉전사, 폭력사, 평화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사’가 과연 무엇일까? 전쟁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일이기 때문에 쉽게 ‘뉴스’가 되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 평화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정의 내리지만 대체로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것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는 격언이 뜻하는 것처럼 달성하고 이룩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다. 일상적인 것, 언제나 진행형의 모습이기 때문에 평화를 역사로 기록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평화를 특별히 기록한다면 그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지, 평화를 역사로 기록하는 것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평화사’는 과연 무엇인지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애초에 ‘평화사’에 대한 입문서가 아니니 책의 잘못은 아니고, 나의 기대가 과했을 뿐이다. 하지만 평화사에 관심 있는 저자인 만큼 우리가 평화의 시선으로 역사를 새롭게 발견하고 전복하는 것의 이미지를 희미하게 그려볼 수는 있다.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시선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역사를 비유럽, 유색인종, 여성의 시선에서 새롭게 정리하는데, 과연 익숙한 사건이 과연 새롭게 발견되고 역사적 의미가 전복된다.     


      

새로운 시선, 새로운 발견들      


동유럽 국가들의 시선으로 본 제1세계대전의 원인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기존의 역사학은 주로 “강대국 중심의 구조적 대결 요인 때문에 필연적으로” 혹은 “대중의 광기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역사일 뿐이고 전쟁의 원인을 납작하게 바라본 해석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민족주의나 전쟁의 광기보다는 어쩌다 시작된 전쟁이 삶이 휘말린 채 장기화되었을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세르비아 청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 세계대전의 시발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 뒤 각국 (남성) 지도자들의 상황 인식 실패와 조정 능력 부족이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독일 여성의 자리에서 본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의미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한 다른 해석은 부제 ‘발견과 전복의 역사’에서 ‘전복’에 해당한다면 새로운 ‘발견’은 여성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1945년의 해방 혹은 종전의 이면을 발견한다. 독일인들에게는 패망이고, 연합국에게는 승리였고, 독일의 식민지에는 해방이었던 그 사건 이후 철저하게 은폐되었던 역사를 발견하고 복원한다. 1945년 이후 연합군의 독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소개한다. 최소 86만 명의 독일 여성들이 미군, 영국군, 러시아군 등 연합군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독일 여성 가운데는 나치당원도 있을 것이고, 나치에 지배당한 사람도, 나치에 저항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독일 패전의 의미 달랐겠지만, 그들 모두에게 성폭력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전쟁도 ‘남성의 얼굴’, 전후 점령도 ‘남성의 얼굴’이었다”는 점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나치가 운영한 유대인 수용소 내 성노예 시스템

가장 놀라운 발견은 나치와 성노예를 다룬 파트였다. 나치가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독일군 주둔지에서 이른바 ‘위안부’ 여성을 조직적으로 공급하고 관리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인종주의를 적극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 여성들에 대한 우익의 공격 들은 일본군 ‘위안부’를 알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나치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 남성 수인을 상대하는 유대인 여성 ‘위안부’를 운영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피지배층을 분열시키기 가장 좋은 전략이 피지배층 내부의 위계를 만드는 일이라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위계는 젠더를 경유하여 작동한다고는 하지만, 이 끔찍한 지옥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

 

이밖에도 유대인들을 도운 독일인들이라든지, “냉전이 낳은 사랑과 이별” 이야기, 처음으로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스위스의 대학 이야기 같은 새로운 발견과 전복이 가득 담겨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지식이 풍성해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5부 '기억과 전승'은 역사 교육과 평화 교육, 과거사 정리와 역사 전시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내 관심 분야가 아니라 읽지 않았다. 언젠가 읽어보겠지만 지금은 읽어야 할 다른 책이 많아서 뒤로 미뤘다. 잠시 살펴본 바로는 평화교육활동가와 일선 교사들에게 가장 논쟁적인 주제가 마지막 5부에 담겨있는 듯하다. 평화교육이나 역사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고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아쉬운 점을 하나만 꼽아보자면, 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혹은 평화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주로  국가나 정부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는 인상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외교적 노력과 각국 정부가 맺은 국제 평화조약은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기본적으로 비정부기구 NGO에서 평화를 위한 실천을 해나가는 활동가라서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시민사회가 주인공인 저항과 실천이 좀 더 다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평화를 위한 시민들의 노력은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례로 다뤄지는데, 내 생각에는 평화 세우기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노력과 실천이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가 맺은 국제 평화조약이나 여러 평화정책들도 시민들의 평화에 대한 노력과 실천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예쁜 말 써놓은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서평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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