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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18. 2020

미래가 물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냐고

짧은 리뷰


땡땡책 협동조합 해산과 헬북


내가 속한 유일한 협동조합인 땡땡책 협동조합은 요즘 해산 절차를 밟고 있다. 나는 이 협동조합의 발기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나는 출판사를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밥벌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개인기로 돌파하기엔 나는 그다지 유능한 편집자가 아니었고, 각자도생보다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땡땡책 협동조합 결성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다 취직하고, 다시 퇴사하면서 출판계를 떠나 전업 평화활동가가 되었다. 확실히 내 위치가 달라지니 관심과 집중도도 달라졌다. 여전히 "함께 책 읽기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이웃과 연대하며 자율과 자치를 추구하는 독서 공동체로, 건강한 노동으로 책을 만들고 합당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땡땡책 협동조합의 모토에 가슴이 뛰었지만, 당장 눈앞에 급한 일이 먼저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츰 조합 활동에 내 삶의 작은 부분만 걸친 채 살다가 최근 해산 국면에서 다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산 과정에서 땡땡책 협동조합이 걸어온 길과 이룩한 성과들, 그리고 뼈저리게 느낀 한계 같은 것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작업이 책자 같은 걸로 묶여 나와도 좋겠다고 주장했다.


책 리뷰 한다면서 왜 책 이야기는 안 하고 땡땡책 협동조합 이야기만 늘어놓냐면, 이 책 『미래가 물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냐고』가 마치 내겐 땡땡책 협동조합이 만들어가고자 했던 어떤 이상향, 관계, 정신, 실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룬 성과와 마주한 한계를 고스란히 정리한 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은이 헬북은 땡땡책 협동조합의 활동을 정리해보려고 이 책을 쓴 게 아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땡땡책 협동조합의 활동을 정리한 책으로 기획했다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헬북은 땡땡책 협동조합의 초대 공동대표였고,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조합 활동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냥 '열심'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땡땡책의 어떤 특징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가 바로 헬북이었는데, 그것은 헬북이 땡땡책의 모습에 동화된 것이 아니라, 헬북의 여러 활동이 땡땡책 사람들을 모으고 관계를 만들고, 행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섯 팀(일곱 명)의 인터뷰이들이 모두 땡땡책 협동조합 조합원은 아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땡땡책도, 헬북도 조합원 여부에 연연하지 않았으니. 인터뷰이들의 공통점, 이 책의 출발점이 되는 키워드는 여성, 독립, 출판이다. '독립'과 '출판'은 그 자체로 땡땡책 협동조합의 핵심적인 키워드였다. '책' 협동조합이었으니 당연하게도 출판이 키워드였고, '협동조합'을 만든 까닭이 바로 여러 의미로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여성'은 그 자체로 땡땡책의 키워드는 아니었지만 광의의 의미로 해석하자면 나는 '여성'이 상징하는 위치가 땡땡책이 지향하는 위치였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자리에서 어떤 시선으로 책을 읽고, 만들고, 나눌 것인가를 고민할 때 우리의 생각이 머문 자리는 기득권 혹은 이미 사회의 중심인 곳은 아니었다. 그런 자리에 위치한 이들은 굳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서로를 보듬지 않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여력이 있을 테니까.


땡땡책 협동조합은 조만간 해산 절차를 완료할 것이다. 조직이 멈춘다고 관계가 멈추거나 실천이 멈추지는 않는다. 조직은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멈추거나 다시 시작하거나 모습을 바꿀 수 있지만 관계나 실천이 멈추는 것은 그 운동이, 그 정치가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미래가 물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냐고』는 땡땡책 협동조합이 멈춘 자리에서도 땡땡책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꾸었던 꿈은 아직 멈추지 않았고 멈출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는 멋진 사람들


한달음에 읽을 수 있고,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인터뷰이 중에는 원래 알던 이들도 있다. 많이 알던 이, 더 알고 싶던 이, 이름만 알던 이, 아예 모르던 이가 섞여 있다. 책방지기이고, 1인출판사 대표고, 편집자고 다들 제각각이다. 출판일을 하게 된 계기와 경로도 제각각. 공통점은 세상의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대책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나도 예전엔 대책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병역거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책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근데 나는 사실 대책이 없기도 했지만 대책이 필요 없기도 했다. 병역거부를 하고 전과자가 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 출소 이후의 생계 문제다. 당시 나는 평생 활동가로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가난하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 그게 나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책이 없던 게 아니라 대책이 필요 없었다. 다른 면으로도 대책이 좀 없었는데, 뭔가를 체계적으로 계획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 딴에는 그게 자유로움이라고 착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몹쓸 짓이었다. 내가 대책을 세우지 않는 뒤에서 대책을 세우느라 고생하는 이들이 있었고, 주로 나처럼 대책 없음을 자유로움으로 착각하는 이들은 남성 활동가들이었고, 남성 활동가들이 자유로움을 뻐기고 다닐 때 대책을 마련하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은 대체로 여성활동가들이었다. 그래서 다시 전업 활동가가 되면서는 좀 대책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대책 없이 사는 사람들이 삶이 마냥 멋있어 보이지는 않게 되더라. 그들 중에는 분명 과거의 나처럼 무책임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착각하는 이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미래가 물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냐고』의 주인공들이 멋져 보이는 것은 마냥 대책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대책 없음이란 대체로 주류 (남성) 질서의 방식이 아닐 뿐이다. 이들은 오히려 늘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삶을 마주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질문하고 성찰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대책 없는 사람이라는 딱지는 가당찮다.


이들이 무엇보다 멋져 보였던 것은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삶의 굴곡들을 내가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인터뷰에서 드러난 것만 봐도 만만찮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세상을 탓하거나 남들을 탓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생이 망한다고 느낄 때 끝없이 자신을 탓하거나 끝도 없이 구조 혹은 남을 탓하기 쉬운데, 이들은 구조의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구조만을 탓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려 애쓴다. 그 태도가 나는 너무 멋지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이고, 이 세상의 단단한 구조에 어떤 균열을 내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관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멋지다. 자기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 일이 자신의 삶과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 관심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헬북은 이런 사람들을 잘도 모아냈다.


헬북의 두 번째 책이 기다려진다.




『미래가 물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냐고』는 독립출판물로 인터넷 서점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 책이 입고 되어 있는 동네서점들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 어느 어느 서점에 입고되어 있는지는 헬북의 페이스북을 참고하거나 헬북에게 직접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서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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