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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26. 2020

클래식 문외한이 만난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리뷰


어디선가 오늘(9월 25일)이 쇼스타코비치의 115번째 생일이라는 글을 봤다.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쇼스타코비치의 이름조차 생소했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를 읽지 않았다면 쇼스타코비치의 이름을 듣더라도, 어디선가 이름 들어본 적 있는 러시아인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서평을 쓰려다 몇 번 실패했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생일이 너무 오래 지나기 전에, 그리고 내가 책을 읽은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너무 오래 지나기 전에 서평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다시 쓴다.



교향곡 같은 책, 책 같은 교향곡


말했다시피 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고, 교향곡의 특성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어봤다. 몇몇 곡은 익숙한 멜로디가 군데군데 들리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의 특성인지 교향곡이라는 장르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향곡을 듣는 내내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는 것처럼 교향곡도 꼭 그런 구성 같았다. 장엄하게 몰아치다가 폐허 위에 피어난 조그만 꽃 한 송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조용조용하게 전개되기도 하고, 가쁘게 달려가다가 절정에 이르러 속으로 침잠하는 듯 전개되기도 했다. 거대한 제국이 흥하다 망하고 다시 반짝 일어섰다가 주저앉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서사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로 된 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무언가 이야기가 있는데, 느낌은 알겠는데,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는 느낌 같았다.


다행히 내 경우엔 음악적인 이해가 떨어지는 면을 역사 이야기가 채워주었다. 나는 무언가에 대해 공부할 때 역사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상대성 이론 자체보다는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시대의 과학의 발견이 인류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찾아보고, 재즈나 락큰롤의 주법에 대해 궁금하기보다는 그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사회적인 의미였는지가 더 궁금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은 내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이 책은 아름다운 비운의 도시 레닌그라드와 세계적인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이야기고,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전투에 대한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역사의 소용돌이가  한 개인의 삶에, 한 도시의 흥망성쇠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고 초라한 개인(그러면서도 후세에 길이남을 위대한 작곡가)과 오래된 도시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부여잡으며 소용돌이를 어느 방향으로 틀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구조를 닮은 것인지, 교향곡이 책의 구성을 닮은 것인지 헷갈리지만, 책 또한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유서 깊은 도시 레닌그라드에서 어릴 적부터 작곡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로 시작해, 러시아 혁명 시기 청년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의 뜨거움 심장을 지나, 스탈린의 서슬 퍼런 철권통치 시절 동료 예술가들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내리막을 지나, 히틀러의 소비에트 침공과 레닌그라드의 고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쇼스타코비치를 그린다. 그리고 마침내 러시아가, 특히 레닌그라드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끝에 나치 독일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주목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정치적으로 유약하면서도 음악적으로 강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폭력의 세기였던 20세기, 특히 스탈린 치하의 야만적인 국가 폭력의 지배 아래서 쇼스타코비치의 정치적 유약함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정치에서 풀어내지 못하는 갈증들을 음악에서 풀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계적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도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교향곡 중에서도 특히 7번은 그 자체로 러시아 인민의 자랑인 동시에 고난한 전쟁의 진창에서 인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응원가가 되었다가, 적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는 스탈린 정권을 불편하게 하는 부르주아들의 나쁜 취향처럼 취급되는데 그 모습이 쇼스타코비치의 불안함과 함께 그려진다.



아쉬운 점과 궁금한 것


쇼스타코비치가 각각의 교향곡 넘버를 작곡할 때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였는지,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그 안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상태였는지가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서 나처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러시아 역사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지는 않아서, 음악이 역사를 보충해주는지, 역사가 음악 이해를 거들어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려움 없이 교향곡을 들으며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이제 길을 가다, 혹은 카페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나 7번이 흘러나오면, 혹은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이 흘러나오면 '어 이거 쇼스타코비치 곡이잖아' 하고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도 있다. 아쉬움은 책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 이 책을 선물해 준 친구도 처음에는 두께에 압도되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 속에 독서를 시작했지만 빠르게 읽어내려갔다고 한다. 쉽게 쓰여서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도 손색없는 책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나, 러시아 역사에 대해 이해도가 높다거나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훨씬 재밌게 읽었을 거 같다. 나는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쳤을 순간들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숨어 있었을지를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그리고 궁금한 점, 혹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지점도 있는데. 바로 스탈린에 대한 묘사다. 스탈린 체재는 서슬 퍼런 국가폭력 시스템으로 묘사된다. 비밀경찰이 늘 러시아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으며, 스탈린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지식인, 예술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탈린의 악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탈린 개인은 굉장히 무능한 존재로 그려진다. 특히 독일과의 관계에 있어서 히틀러는 영리하고 영악한 반면 스탈린은 멍청하고 무능하게 묘사된다.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고서는 독일이 절대로 소련을 침략하지 않을 거라 맹신하고 전쟁 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에 너무 쉽게 독일에게 동유럽과 소련의 서부 지역을 내줬고, 그 때문에 러시아의 인민들이 더 크게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연히 본 신문 칼럼에서 스탈린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칼럼에서는 스탈린은 잔인하지만 영리하고 용감하다. 지식인을 경멸한 것은 맞지만, 독일(어쩌면 거기에 더해 자본주의 국가들까지도)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미친 듯이 중공업을 육성한다. 나라의 중심인 농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치와 전쟁이 일어나자 신속하게 군수산업 공장을 후방으로 옮긴 뒤 자신의 모스크바에 남아 전쟁을 진두지휘 한다. 두 묘사가 너무나 상반되니 어떤 면이 더 맞는지 모르겠다. 러시아 역사를 좀 더 알았다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을 텐데. 이 궁금증은 다른 책을 읽으면서 해소하는 것으로 남겨둬야겠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인공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면 무척 특별한 독서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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