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말의 세게에 감금된 것들 -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병역거부를 하면 감옥에 10년을 갇혀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병역거부를 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양심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절대적이고 고귀하고 순수하고 진실된 게 아니라 늘 의심하고 질문하고 흔들리는 것이다. 지금 병역거부자들 재판에서 양심을 검증하겠다며 예배 참석 진위를 가리기 위해 핸드폰 위치 정보를 내놓으라는 검사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나는 이것이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양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지만 '양심'수의 대명사였던 비전향 장기수와 사상전향서 문제, 그 뒤에 도사리고 있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운동에 어느 정도 거리감을 느꼈다. 논리와 당위로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적극 찬성하지만 어쩐지 나와 깊은 관계가 있지는 않은 것처럼 느껴졌고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의 수감 기간으로 표상되는 양심의 무게는 어쩐지 너무나 버거워 보여 거리를 두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장기수 선생님들을 보듯 누군가 병역거부자들의 수감생활을 보고 우리들의 양심 또한 거룩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부제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이 아니었다면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볼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고귀한 양심을 가진 남성 저항 영웅 서사는 이미 충분히 봤고, 나는 그 삶을 존중하고 존경하지만 내가 걸을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은 국가보안법과 더불어 살아온 여성 11명의 인터뷰집이다. 11명 모두 각자 고유한 서사이며 시대와 상황과 처지가 각기 다르지만 서평을 쓰기 위해 내가 유독 기억에 남는 몇몇 인터뷰를 임의적으로 묶어봤다.
김정순, 정순녀 두 사람은 자신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당하거나 구속되면서 민주화가족운동협의회(만가협) 활동을 시작한다. 민가협은 병역거부운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2000년대 초반 병역거부 운동이 한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을 때, 병역거부자들은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었다. 소수의 진보 지식인과 활동가들만이 병역거부 운동을 옹호했는데, 그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이 바로 민가협이다. 민가협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중요한 운동단체였다. 특히 교도소 내에서 민가협의 이름이 높았는데, 민가협에서 온 우편물을 받는 재소자에게는 교도관도 다른 재소자들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두 분의 인터뷰에서도 민가협의 익숙한 활동들이 나온다. 경찰서나 구금시설에서 인권침해당하는 학생들,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그야말로 머리 디밀고 악으로 깡으로 싸우는 방식이다. 가족 구속력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모성 신화가 강한 한국에서 자식 일에 나서는 엄마를 이길 수 있는 집단은 없는 걸까. 공식적인 절차로는 이룰 수 없는 많은 일을 민가협 어머니들이 머리 디밀고 바닥에 누우며 해결했다. 김정순, 정순녀 두 분의 이야기 속에서 민가협 어머니들의 절규를 읽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우리 엄마의 속은 또 얼마나 타들어갔을지, 그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나이 든’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자식 문제에 나서는 ‘엄마’라는 모성 신화까지 결합한 위치에서 나오는 힘은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건 민가협의 문제라기보다는 (피해)당사자 운동이 가지는 칼의 양날 같은 지점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늘 사회운동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만, 당사자들의 목소리만 남은 사회운동 성공하기 어려우며 ‘엄마’ 이미지는 효과적이지만 때로는 그 이미지 안에 운동을 가둘 수도 있다. 이런 우려 지점에도 불구하고 민가협이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인권 단체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이 단순히 수배자, 구속수감자의 ‘어머니’로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순, 정순녀 두 분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는 바, 자식 문제 때문에 싸움을 시작했지만 “소장이 너만 풀어주고 다른 애들은 안 풀어준단다. 넌 거기서 싸우고 난 여기서 싸우자”(정순녀, 95쪽)라고 감옥 안 딸자식한테 말하는 인권운동가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특히 두 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분들을 ‘누구의 엄마’로 부르는 것은 부당한 호명이다. 자식이 감옥 간 것은 계기가 되었을 뿐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가장 몰입해서 읽은 인터뷰는 양은영, 유해정 님의 인터뷰다. 이들은 90년대 학생운동가로 살면서 국가보안법을 겪었다. 나보다는 몇 년 앞서 대학을 다녔지만 겹치는 기간도 있었고, 학생운동가로 살았다는 점에서 감정이 크게 이입되었다. 70년대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사상전향서를 강요했던 국가는 90년대에는 학생들에게 한총련 탈퇴서를 강요했다. 양은영은 흔들렸지만 쓰지 않고 버텼다, 유해정은 나와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탈퇴서를 쓰고 나왔다. 둘 다 탈퇴서를 앞에 두고 심하게 흔들렸고, 무수한 고민을 했다. 탈퇴서를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이 폭력인 까닭은, 버틴 사람이나 쓴 사람이나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이 분들의 흔들림에 감히 공감한다고 말하고 싶다. 병역거부자로서 내 양심도 늘 흔들리니까. 다만 나는 만신창이가 되지는 않았다. 병역법은 병역거부의 양심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국가보안법처럼 내 양심을 시험대에 올리고 발가벗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에게 실형 1년 6개월을 일괄적으로 선고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지금, 병역거부자들은 양심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양심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데, 문제는 흔들리지 않는 양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들리지 않는 건 양심이 아니라 양심을 가장한 교조주의일 뿐이다.
양은영 님 말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지난 삶이 경력이 되지도 못하고 역사가 되지도 못”(198쪽)했다는 말. 때마침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병역거부 운동의 17년 역사와 활동을 정리한 다큐멘터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2’(김환태 감독)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나도 주요 출연자 중 한 명인데, 내 병역거부는 경력이 되고 역사로 기록된 셈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활동가가 나와 마찬가지로 양심의 자유가 국가 폭력과 부딪히는 삶을 살아왔는데, 나의 삶은 역사로 기록되었고 누군가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단순히 내가 운이 좋다고 할 순 없다. 사실 운이 아니다. 운이나 개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 사회에 켜켜이 쌓여있는 군사주의와 가부장제, 국가주의, 안보 이데올로기, 반공주의 들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이런 것들은 물리쳐야 할 적, 적과 싸우며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 그리고 지킴을 받는 사람을 나누고 각각의 자리에 들어갈 사람을 미리 정해놓는다. 계급에 따라, 젠더에 따라, 인종과 학력에 따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 영화 포스터에 이름은 들어가는 조연, 존재하지만 기록되지 않는 보조 연기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 병역거부 운동에서도 여성 활동가들보다는 남성, 남성 중에서도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 나온 이들, 혹은 좋은 직업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역사로 기록되기 쉽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의 양심이 경력이 되고, 나의 운동이 역사가 되는 동안 누군가의 삶은 경력도 역사도 되지 못했다는 대비가 무겁게 다가온다.
다른 분들의 삶의 굴곡도 모두 특별하고 고단하다. 특히 간첩으로 몰린 북한이탈주민 유가려, 배지윤 님의 인터뷰를 보면, 이게 과연 2010년대에 일어난 일인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최소한의 법의 보호도 못 받고 고문이나 다를 바 없는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한다. 이들이 북한이탈주민이고 여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광화문 광장에서 인공기를 펄럭이며 김정은 만세, 김일성 만세를 외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는다 해도 나한테는 그런 짓을 못할 것이다. “그렇게 몰아가도 되는 사람”이었다는 배지윤 님의 말이 아프게 남는다.
한편 해제로 들어간 정희진의 글은 병역거부가 국가보안법과 맞물리는 지점에 양심의 자유뿐만 아니라 군사주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전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가보안법과 강한 군대는 결국 안보에 대한 상상력을 국민국가의 경계 안에 가둔다. 병역거부 운동은 강한 군대가 우리의 평화를 지킨다는 거짓 신화를 해체하는 운동이고, 평화에 대한 감각이 결코 국민국가의 경계 안에 머무를 수 없다는 선언이다. 외부의 적이 우리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전쟁으로 유지되는 정치, 안보, 경제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는 것을 폭로한다. 그런 면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과 만나는 지점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에서 더 넓어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과 생각에 재갈을 물려왔다. 국가보안법의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된 말이 있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은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안에서도 기록되지 못한 말들, 드러나지 못한 이들의 서사를 길어 올렸다. 그동안 볼 수 없던 이야기를 접하니 아직도 볼 수 없는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정순녀, 김정숙 님은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가족으로 시작해서 스스로 인권운동가가 되었고, 고애순, 양은영, 유해정, 김은혜, 유숙열 님은 국가보안법이 삶을 할퀴고 간 뒤에도 각자의 자리를 찾아 활동가로 살고 있다. 아마도 이 분들이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활동가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삶이 스스로의 존엄을 증명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유해정은 “한총련 탈퇴서를 쓰고 다시 운동하는 사람들을 못봤”(234쪽)다고 말한다. 이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인권운동을 시작한 유해정이 예외적인 존재다.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강제받은 사람에겐 그 일이 단순한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이 되었다는 감각은 그 사람의 영혼을 뒤흔든다. 국가보안법이 아무리 서슬 퍼렀고 감옥이 아무리 튼튼한 들 양심을 가둘 수는 없다. 그래서 국가폭력은 늘 양심을 가두기보다는 무너뜨리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닐까.
문득 병역거부 운동을 스쳐간 이들 혹은 머물고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늘 병역거부 운동 중심에 서 있었지만 조력자로만 취급받았던 여성 평화활동가들이 먼저 떠오른다. 병역거부 운동의 역사는 이들의 서사로 쓰여야 한다. 병역거부를 결심했다가 철회한 이들, 병역거부의 문턱 앞에서 포기해야 했던 이들, 감옥 생활이 몸과 마음에 큰 상처가 된 병역거부자들이 생각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전쟁없는세상과 연락이 끊겼다. 병역거부자의 가족, 친구, 동료, 지인으로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 또한 당사자다. 말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프로젝트 중 하나로 기획된 책입니다. 같은 이름의 전시가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일시 : 2020년 8월 25일 (화) ~ 10월 18일 (일), (9월 29일부터 오픈, 월요일/공휴일 휴관), 기획단 해설 매일 오후 2시 진행
장소 : 민주인권기념관 (구 남영동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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