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늘 보고 나면 고민이 든다. '뭔 전시인지 모르겠는데 아는 척해야 하나?' 그러자니 금방 들통날 거 같고, 양심에도 찔린다. '솔직하게 전시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그러자니 너무 무식해 보일까 봐 그것도 싫다. 솔직히 보고 나면 뭐가 나에게 남는지 잘 모르겠으면서도 가능하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챙겨보려고 한다. 미학적인 비평이라든지 작품에 담긴 철학적 사유는 모르더라도, 그냥 요즘의 트렌드를 익히기 위해. 갈수록 이미지의 역할이 커지는 세상이니, 텍스트형 인간인 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이번에 본 국립현대미술관의 <낯선 전쟁>은 이런 고민이 덜했다. 아무래도 내 직업과 연관된 내용이다 보니, 확실히 더 많이 알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보통 강한 정치적인 주장을 담거나 많은 정보를 담은 작품들이 의미에 미치지 못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거나 촌스러운 경우도 많은데, 예술알못인 내가 보기에는 <낯선 전쟁>은 익숙한 주제(전쟁)를 익숙하지 않은 시선(군사주의 비판)으로 조명하며 정치적인 메시지(전쟁의 정치경제적인 책임을 묻는 방식)를 충분히 담고 있는 아름다운 전시였다.
전시는 크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 '낯선 전쟁의 기억'은 한국전쟁 당시 화가들이 그린 기록화들을 보여준다. 폭격과 주검 같은 전쟁의 참혹한 현장, 피난민들의 삶이 수묵화, 유화, 연필 스케치, 사진 다양한 표현 양식에 담겨 있다. 한국 전쟁 관련 기록을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다. 다만 나는 이 그림을 그린 화가들에 마음이 머물렀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누가 죽을지, 누가 살 수 있을지 모를 그 악다구니에서 화가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거미가 집을 짓는 것처럼 화가로서 손가락이 그냥 움직였던 것일까? 아니면 시대를 기록하는 기록자의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그렸을까? 그것도 아니면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그려야만 할 수밖에 없었을까? 혹시 내가 상상도 못 할 어떤 이유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장 '전쟁과 함께 살아간다'는 전쟁 이후 한국사회를 조명한다. 전쟁이 끝났지만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전쟁의 모습을 실향민의 삶, 무기전시회의 풍경 등으로 보여준다. 내게는 익숙한 노순택 작가의 사진이 특히 인상 깊었다. 무기박람회 아덱스를 찍은 사진 8장을 십자가 형태로 배치했는데 세로줄은 무기전시회를 구경하는 일반인들의 풍경을 원경에서 잡았고, 그 세로줄 오른쪽에 한 장 왼쪽의 사진 두 장이 서로 이어져있다. 가로줄 사진은 아마도 에어쇼를 구경하는 어떤 사람의 뒷모습일 텐데, 사진을 연속해서 보면 어떤 사람의 실루엣 오른편 관자놀이 께 비행기가 머리를 관통해서 왼편으로 뚫고 나오는 것만 같다. 무기박람회로 보기 좋게 포장해놓은 행사의 본질이 살인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노순택 작가의 사진이 인상 깊었던 까닭은 이 상징성의 기발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상징이 전하는 메시지가 세 번째 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장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에서는 영상, 회화, 설치미술 등 다양한 양식으로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여러 측면을 조망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반공주의, 난민, 미사일, 거대기업, 커넥션 같은 것을 다루는데 한데 모아 보면 누가 전쟁을 원하고 전쟁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고 그 대가로 누가 어떤 피해를 보는지를 고발하는 매우 정치적인 메시지가 된다. 노순택 작가의 사진과 연결되는 지점에는 전쟁을 돈벌이로 여기는 집단들의 검은 커넥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미얀마 평화산업단지'라는 작품은 평화와 밥벌이(산업)라는 명목으로 마인드맵처럼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도를 보여준다. 영상 작품이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는데 석유와 마약과 돈과 전쟁이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시각화한 사이트를 전시한 작품도 인상 깊었다.
거대한 공간을 차지한 아이웨이의 작품은 전쟁의 대서사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널따란 공간의 가운데는 검은 고무로 제작된 난민 가득한 보트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기다란 보트의 양쪽 벽면에는 시트지가 부착되어 있는데 한쪽에는 '난민과 새로운 오디에서'라는 작품이 프린트되어 있다. 고대 신전 벽면에 있을 법한 화풍으로 전쟁과 난민의 역사를 서사시처럼 보여준다. 다른 벽면 시트지에는 그동안 인류가 만든 미사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최근 우리에게 익숙한 사드THADD나, 패트리어트PATRIOT 같은 이름도 보이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들(LITTLE BOY, FAT MAN)도 있다. 나치 독일이 개발한 미사일에서부터 미국이 만든 확산탄까지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 전시는 난민의 발생 원인이 전쟁이라는 것을 밝히고, 그 전쟁에 가장 큰 책임이 어느 국가에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네 번째 장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제목 그대로 평화를 위한 실천을 보여주는 전시다. 피스모모의 워크숍을 활용한 설치와 평화 도서가 전시되어 있고 삐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안전보장증명서(Safe ConductPass)'를 나눠준다.(나눠주는 건지 몰라서 안 가져왔다)
한국 전쟁 7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가 특별히 좋았던 것은 전쟁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시선으로 조망했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사회는 전쟁을 떠올리면 자동반사적으로 한국전쟁을 떠올리고 전쟁의 참상과 우리가 입은 피해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낯선 전쟁> 전시는 한국전쟁에서 시작하고 한국인들이 입은 피해에서 시작하지만 현재의 전쟁의 구조와 원인, 결과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반공주의, 군사주의 같은 사회문화적인 비판뿐만 아니라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과 원인에서 작동하는 권력과 돈을 보여준다. 전쟁을 그저 나쁜 것, 폭력적인 것만으로 인식한다면 전쟁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경제와 권력을 보지 못하게 된다. 어쩌면 이는 현재 전쟁을 주도해가는 세력이 가장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악마화 된 나쁜 놈 하나 세워놓고 모든 비난이 그에게로 향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럴 때 전쟁의 가장 추악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가려지기 마련이다.
코로나 때문에 전시가 닫혀있던 적이 많았고, 지금도 미리 사전 예약을 해서 정해진 인원만 입장이 가능해 접근성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