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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r 01. 2021

병역거부를 포기하는 마음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

   

태어나서 이런 운동단체는 처음 봤다. ‘전쟁없는세상’에 가서 병역거부를 하고 싶다고 말해도 환영받지 못한다. “대체 왜 그래요.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라는 핀잔을 듣는다(여기에는 감옥행이라는 현실적 고려가 작동하고 있다). - 『감옥의 몽상』 321쪽     


약간의 오해를 풀자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누군가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늘 기다리고 환영했다. 물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환영하면서도 우리는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 볼 것을 요청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두 가지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병역거부 운동 초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병역거부가 한 사람의 삶에 지운 무게를 절감했다. 나를 포함해 초기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과 병역거부자들 중에는 같은 학생운동 그룹 출신이 많았는데, 우리는 입영영장이 나오기 전에 예비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학생운동 그룹 선배였던 나동혁이 병무청 앞에서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할 때 나를 비롯한 십 수명은 나중에 입영영장이 나오면 우리도 병역거부를 할 것이라고 예비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얼마 뒤 수명의 학생운동 동료들이 예비병역거부 선언에 동참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병역거부를 했다. 하지만 결국엔 병역거부를 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고 병역거부 선언을 번복해야만 했던 일이 이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로 남기도 했다. 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남성 활동가들이 병역거부에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근한 공기를 형성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병역거부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이 정했다.


전쟁없는세상 활동 초기에도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었다.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여러 고민 끝에 병역거부를 포기했다. 하지만 몇몇은 병역거부 선언을 공개적으로 알리거나, 병역거부를 하고 재판을 받는 도중에 포기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거셌던 가족들과의 갈등, 혹은 막상 경험해본 감옥의 끔찍함(예전에는 병역거부자들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병역거부자의 경우는 스스로 소견서를 써서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해서 알리는 등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전혀 없는데도 재판부는 기계적으로 구속수사를 했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등 병역거부를 포기하는 마음은 다양했다.  

    

병역거부를 마음으로만 고민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들보다 외부로 병역거부 사실을 알리고 난 뒤 포기하는 이들의 상처가 더 컸다. 외부로 알린 뒤에는 병역거부가 이미 사회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데 포기할 때도 개인적인 행동인 동시에 사회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마음의 짐이 더 무거웠던 것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병역거부 상담을 하면서 더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감옥에 갇히고, 출소 후에 전과자로 살아가는 일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병역거부라는 선택에 뒤따르는 일들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고 이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니 병역거부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게 전쟁없는세상에 좋더라도 섣불리 병역거부를 권할 수 없었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판단하기를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와 생각해봐야 할 질문을 모으기 시작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고민해야 하는지, 병역거부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정리했다. 앞선 병역거부자들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전쟁없는세상에 찾아오기 전 군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지만 감옥 생활에 대해서는 큰 고민을 해보지 않았거나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감옥생활이 어떠한지, 감옥 안에서 병역거부자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앞선 병역거부자들이 이야기해준 것이 특히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병역거부 과정에서 겪는 가족과의 갈등, 특히 부모님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전쟁없는세상도 앞선 병역거부자들도 도와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 자식 관계는 부모님의 직업, 정치적 성향, 성격과 병역거부자 자식의 성격, 성향들이 복잡하게 작용하며 집집마다 너무 달랐다. 우리가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부모와의 갈등이 극심해질 수 있으니 그 점을 염두에 두라는 정도였다.      


전쟁없는세상의 상담과 조언이 병역거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전쟁없는세상의 이러한 노력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병역거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병역거부를 포기하면서 상처를 입는 이들도 분명 줄어들었을 것이다.   

    

병역거부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실천할 수 있던 이들에게도 일정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집단이나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공통점을 지닌 집단은 여호와의증인이다. 여호와의증인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같은 그룹 출신인 경우가 많다. 고동주와 백승덕은 서울지역 가톨릭학생회 연합회에서 함께 활동을 했고, 나와 나동혁, 임재성 등은 같은 학생운동 그룹 출신이다. 나의 경우엔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에는 대학생이었는데,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이 큰 힘이 되었다. 날짜도 잊지 않는 2002년 10월 17일 서울대학교에서 병역거부 관련 문화제가 열렸다. 언니네 이발관이 공연팀으로 왔던 것도 기억난다. 나는 학교에서 함께 학생운동을 하는 동료들과 문화제를 보러 갔는데, 문화제 끝난 뒤에 한 친구가 “용석이 감옥에 보낼 거냐고, 우리 열심히 활동하자”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감정이, 그때 상황이 똑똑히 기억날 정도로 그 말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큰 힘이 되었다. 물론 나는 결국 감옥에 갔지만 그 친구의 마음 덕분에 나는 병역거부의 결심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 그룹에서 꾸준히 병역거부자의 등장이 이어졌던 것은 아마도 병역거부자를 언론이나 책에서 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만나는 경험이 가져오는 감각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평화주의를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본다면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고 지나가겠지만 그런 사람이 내 눈 앞에 있다면, 그 사람이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결심하는 과정을 지켜봤다면 병역거부는 ‘그런 일’을 넘어서 내 삶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군대를 앞둔 남성이라면 자신의 삶에 대입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역거부자를 만날 수 있는 그룹에 속한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병역거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속한 그룹에 병역거부자 선배가 없다고 병역거부를 못하는 건 아니다.      


전쟁없는세상도 병역거부를 결심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없세를 통해 다른 병역거부자들을 만난 것이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따뜻한 안도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도 대부분 교회, 사회단체 등 다양한 그룹에 속해 있으며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 집단 안에서 풀어나갔다. 이러한 그룹들에는 당장 앞서 병역거부를 한 선배는 없더라도 대다수의 구성원이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병역거부라는 선택을 지지받을 수 있는 공동체의 존재는 병역거부자들이 온전히 자신의 양심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다. 아울러 병역거부라는 선택이 지지받는 소중한 경험을 병역거부자들에게 전해준다. 겁쟁이, 비겁자, 무임승차자라는 비난에 노출되어 있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이러한 경험은 굉장한 힘이 되고 어쩌면 병역거부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앞서 다른 이들이 해결해 줄 수 없고 병역거부자 스스로가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몫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반대의 경우도 중요하다. 한 사람이 병역거부를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며 그걸 채워주는 커뮤니티가 굉장히 중요하다.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병역거부라는 선택을 지지받을 수 있는,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고립되지 않도록 관계를 이어나갈 커뮤니티의 존재는 병역거부자에게는 필수적이다. 병역거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던 이들 중에는 이러한 커뮤니티가 없는 게 주된 이유인 경우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경향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전쟁없는세상을 찾아오는 병역거부자들은 특정한 그룹에 속해있거나 커뮤니티가 없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병역거부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전과자가 된다는 점이나 병역거부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일이 조금은 덜 어려운 일로 인식되는 것이니 이런 변화는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해졌을 뿐 여전히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병역거부자에 적대적인 분위기는 덜해졌을 뿐 여전히 위력적이고, 전과자가 안 될 뿐 징벌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기나긴 대체복무(36개월)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병역거부를 이해하고 지지해줄 커뮤니티의 존재는 병역거부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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