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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r 17. 2021

“너희는 총알도 아까우니 칼로 찔러 죽어야해”


병역거부자들의 리즈 시절은 감옥 시절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감옥에 가 있을 때만큼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관심과 애정을 받을 때가 없다. 편지와 영치금, 면회 등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마음을 받으니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 관심과 애정을 모를 수가 없다. 이는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생활을 버티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물론 병역거부자들을 둘러싼 관계를 벗어나면 양상은 정반대가 된다. 지지와 애정의 자리에는 욕설과 비난이 자리한다. 요즘도 병역거부 관련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세상이 과연 변했나 싶지만, 그래도 병역거부 운동 초창기에 비해서는 굉장히 많이 변했다.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인식이 넓어지면서 병역거부자를 향한 악감정도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오프라인에서도 병역거부자를 향한 분노와 혐오를 마주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국회가 대체복무 법안을 만들 것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는 캠페인을 했다. 10만 명에게 서명을 받는 게 목표였는데 당시 대학생인 나와 내 동료들은 주중에는 학교에서, 주말에는 마로니에 공원이나 여의도 광장 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서명을 받았다. 그러다가 시민들과 시비가 붙는 일도 있었고 성격이 욱하는 시민들의 경우 손찌검을 하려 하기도 했다. 내 친구는 종묘 공원에서 서명을 받다가 지나가던 할아버지한테 맞은 적도 있다. 인사동에 있는 쌈지길이 한참 준공 공사를 하고 있을 때에는 매주 그 공사 펜스 앞에서 서명을 받았는데 어느 주말인가 지나가던 스님이 우리가 하는 캠페인을 보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스님은 거나하게 취했는지 비틀거렸고 술 냄새가 지독했다. 다가와서는 허리춤에 찬 목검을 우리에게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당황했지만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목검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술’과 ‘목검’와 ‘스님’이라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당황했던 기억이다.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덧붙이면 병역거부 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스님이나 불교신자도 많다. 병역거부 연대회의 대표였던 효림 스님, 병역거부자 오태양, 불교신자이자 진보적인 역사학자인 박노자 교수가 대표적이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이들의 경우 대개 나라와 안보에 대한 걱정으로 참지 못한 분노를 터뜨리는 데, 위협적인 몸동작을 취하기도 하지만 자기 분에 씩씩거리다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가버린다. 물론 저주 같은 말을 쏟아내는 이도 있었다. 2012년 무렵, 국회의원들에게 대체복무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병역거부 역사에 대한 전시를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진행할 때 일이다. 전시물을 살펴보던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섞어가며 또박또박 소리를 지르셨다.      


“내가 북한에서 살았어! 김일성과 스탈린의 사진이 걸린 교실에서 공부했다고. 그래서 내가 러시아 말도 할 줄 알아!. 너네들이 공산당이 뭔지 알기나 해? 얼마나 끔찍한 종자들인지 몰라서 이딴 소리를 하는 거지. 너희 같은 놈들은 총으로 쏴 죽여야 해! 아니 총알도 아까우니 칼로 찔러 죽여야 해!”   

  

우리가 대꾸하지 않자 할머니는 목소리를 더 높였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우리는 할머니께 그냥 가시라는 말만 하고 따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만 보면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분들은 죄다 막무가내에 폭력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디든 과격한 사람들이 더 주목받기 때문에 기억에 깊게 남았을 뿐, 병역거부를 반대하면서도 차분하게 말을 걸어와서 우리와 토론하고 논쟁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 분들과의 토론은 병역거부 운동이 펼치는 주장과 논리의 부족한 점을 발견해주었기 때문에 병역거부운동에도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렇지만 역시 마음에 많이 남는 것은 가시 돋친 말들이다. 거친 표현 하나하나보다 그 말에 묻어 있는 강한 감정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병역거부자를 향한 저 감정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상적인 시민에서 낙오된 이, 혹은 남성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성이나 장애인, 노인이나 어린이, 이주민을 향한 혐오와 비슷한 면도 분명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소수자 혐오와는 다른 결을 가지는 것도 같다. 예컨대 병역거부자에게 악담을 퍼붓는 나이 든 세대의 경우에는 당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국가안보를 무너뜨리는 놈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군대에 다녀온 예비역 중에 병역거부자를 욕하는 이들은 남성의 의무를 기피하는 ‘남자답지 못한 자들에 대한 경멸’과 자신의 군 생활을 투영하며 누군가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부러움’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병역거부자는 군대 말고 감옥에 갔고 이제는 군대보다 2배가 긴 기간 동안 대체복무를 하지만 무엇을 하든 ‘절대적’인 군복무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사회 운동은 본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를 대변하거나 인정받지 못한 존재의 권리를 옹호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보면 소수의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보편성을 획득한 가치나 보편적인 존재의 권리는 사회운동이 아니더라도 정치나 언론에서 충분히 대변하고 옹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중집회, 직접행동, 성명이나 논평 쓰기 등등 사회운동의 전통적인 방식들은 모두 큰 틀에서는 사회운동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과 추구하는 가치를 알리고 설득하기 위한 방식이다. 병역거부는 특히 한국사회가 민감하게 여기는 징병제와 군사안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직접행동이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대중적인 지지를 받기 어려웠다. 보수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병역거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민중대회나 노동자대회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진보진영의 집회에 가서 병역거부를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면 “그래도 남자라면 군대 다녀와야지.”라는 지청구를 듣는 일이 다반사였다. 홍세화, 박노자와 같은 진보지식인과 고 임기란 민가협 대표와 같은 인권운동의 어른들이 나서서 병역거부 운동을 옹호했던 것도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의 반감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병역거부 운동은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해갔다. 우리는 전략적으로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 특히 군대에 입대하는 청년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또한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려고 애썼다.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분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대의 정도, 반대하는 이유가 다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잘 모르거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서 반대했다, 혹은 어떤 분들은 병역거부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도 자기가 아는 사람이 병역거부를 하면 일단 병역거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그런 뒤에도 반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때의 반대는 혐오와 같은 감정이 실린 반대가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와 선택을 존중하는 가운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표명하는 반대였다. 그렇게 병역거부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정치인,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면서도 병역거부를 싫어하는 보통의 시민들과는 어떻게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방식으로 설득할지 고민해왔다.      


우리의 방식이 지름길이었는지 돌아오는 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한 수 있는 건,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적어도 병역거부에 관해서는 아주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 변화는 단순히 대체복무제라는 제도의 도입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 앞서 병역거부 운동을 펼쳐온 외국의 평화활동가들이, 병역거부 이슈에 발 벗고 나서 준 국내 인권활동가들 평화활동가들이, 그리고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해온 동료 시민들이 함께 일궈낸 변화다. 물론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도 있다. 병역거부자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지키는 게 아니라 전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는 더 필요하다. 이 주장 또한 만만치 않은 반대와 비난을 마주할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다 보면 우리는 또 어느새 지나온 변화를 체감하는 순간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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