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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r 28. 2021

군산 진포해양테마 공원에서 든 생각

평화와 안보에 대한 빈약한 상상력에 짜증이 나다

군산 평화바람 부는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몇 차례 군산에 가봤고 잠을 자고 온 적도 있지만 일 때문에 시간에 쫓겨 방문했던지라 한번 둘러보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일로 방문한 거였고 여기저기 둘러볼 여유는 없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오전 회의 전까지 두세 시간 여유가 생겼다. 평화바람 부는 여인숙은 군산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이들 찾아오는 월명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후다닥 씻고 근처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을 챙겨 먹고 산책을 했다. 목포 적산가옥 거리나 동인천 신포시장 일대처럼 일제시대 건물들이 남아있어 여기저기 구경할 것이 많았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은 바닷가를 향했다.



바닷가 풍경은 전형적인 서해안 풍경이었다. 수평선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자리 잡고 있고 해안선은 썰물에 드러난 갯벌이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숨 쉬고 있었다. 포구에 정박한 배들은 마치 쓰러지지 않도록 갯벌에 박아둔 모습이었다. 포구로 이르는 길은 해양테마공원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나는 익숙하고도 도무지 친숙해지지 않는 고철 덩어리들을 발견했다. 실물 크기의 탱크와 장갑차들, 그 너머로는 전투기를 비롯한 군용기들이 놓여 있었고 길을 마주한 해변가에는 군함이 바다 풍경을 가로막고 있었다. 팻말에 다가가 읽어보니 한국군이 과거에 실제로 썼던 것들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이 전쟁기념관도 아니고 바닷가 공원에 전시되어 있지? 군산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현대식 탱크와 군용기 사이에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화포들이 바다를 향해 포구를 들이미는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가로로 늘어진 화포들의 양 끝과 한가운데에는 갑옷을 입은 장수의 인형이 서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가장 왼쪽은 장보고, 가운데는 최무선, 오른쪽은 이순신이었다. 고려 시대 최무선이 화포를 사용해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었다.



분명 당시 고려인들에게 왜구의 약탈은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고, 혹은 쌀이나 물자를 약탈해가면 더러는 굶어 죽기도 했을지 모른다. 백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해적을 무찌르는 것, 요즘 말로 하면 안보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임무였을 것이다. 조악한 디자인이지만 화포와 최무선 인형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장보고와 이순신이 거기에 왜 있어야 하는지 좀 의아하긴 하다.)


그렇지만 한국군이 사용한 탱크와 군용기, 군함은 대체 왜 거기에 전시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진포대첩을 기리는 것과 한국군이 수십 년 전에 사용한 무기들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는 '국가 안보=군사력'이라는 연결고리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해상공원을 디자인한 사람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바로 안 보이고, 안보는 강한 군사력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한국군이 사용했던 무기들이 바로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평화에 대한, 안보에 대한 얼마나 빈약한 상상력인가. 제국주의 일본에 식민지배를 당한 강렬한 경험 때문에 우리는 평화와 안보를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평화와 안보를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한다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 국민은 침략에 신음하는 피해자면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고, 국가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어 국민을 보호하는 보호자다. 이 가부장적인 도식 안에서는 새로운 상상력이나 사유가 일어날 수 없다. 왜구들 이전에 농민을 수탈한 탐관오리나 지주들의 존재를 찾아낼 수 없고,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에 저항하거나 공동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았던 백성들의 능동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없다.


피해마저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 고려시대 왜구가 아니더라도 군산은(대체로 항구 도시들은) 수탈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이 호남 곡창지대의 쌀을 수탈해갔던 항구가 군산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일본군이 있던 자리에 지금까지 미군이 주둔해있다. 미군 기지 주변의 사람들이 겪는 환경오염, 미군 범죄와 같은 다양한 피해를 군산사람들도 겪고 있을 거다. 도식화된 피해자 이미지는 실제로 전쟁과 전쟁 준비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이 파괴되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든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나쁜 놈과 나쁜 놈들에게 당한 불쌍한 이들이라는 이미지만 반복 재생될 뿐이다.


사실 내가 해양공원에서 짜증 났던 것은 이런 빈약한 상상력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전쟁기념관을 분석하는 평화활동가의 눈과 마음이 아니라 관광지 군산의 아침 바다를 즐기러 나온 여행자의 마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각이 내겐 더 중요했다. 여행자의 눈과 마음으로 봤을 때 잘 꾸며진 바닷가 공원에 설치된 탱크와 전투기와 군함은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미관을 심각하게 해쳤다. 아덱스 전시장의 무기들은 미관상으로는 멋지고 훌륭하기라도 하지(물론 평화주의자로서는 비판적이지만) 여기의 고철덩어리들은 정말로 아름다운 서해안 바닷가 풍경에 버려진 전쟁 쓰레기 같은 모습이었다.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것도 아니고, 크게 까다로운 성격도 아닌 내 눈에도 거슬릴 정도로 미학적으로 실패한 전시물이었다. 고요한 섬들이 차분하게 감싸고 있는 아침 바다의 고즈넉함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흉물스러운 몰골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성당 빵집에 들러 생도너스를 하나 사 와서 따뜻한 커피를 내려 먹었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평화와 안보가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더러 그런 전시를 기획해보라고 한들 뭐 대단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평화바람 부는 여인숙은 평화박물관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군산에 내려간 일도 이 평화박물관을 준비하고 있는 평화활동가들이 평화박물관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 초대해줬기 때문이다. 탱크와 전투기가 아닌 안보와 평화를 어떤 상징으로 어떤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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