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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pr 22. 2021

오르막길의 고통과 쾌감

동해안 자전거 여행첫째 날의기록

어떤 일을 실행하기 전에 나는 늘 예상을 해보는 편인데, 대개의 경우 내 예상은 넉넉하지 못하다. 특히 안 좋은 쪽에 대한 예상은 늘 현실이 예상보다 더 난감한 경우가 많다. 친구들과 떠나온 동해안 자전거 여행. 예전에는 전쟁없는세상 친구들과 여행도 많이 다녔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애들은 유럽 자전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내가 출소한 뒤에는 일본 자전거 여행을 갔다. 그때는 시간은 많고 돈은 정말 심하게 없어서 모든 걸 우리의 몸과 시간으로 때웠다. 마지막 장거리 여행이 10년 전 제주도.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훨씬 힘들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지만, 한참이나 부족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이랬나?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자전거 도로라서 오르막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강원도도 경상북도도 한국이었다.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맑고 기온도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이라서 기분이 들떠서 좀 더 무리를 했는지도.


그래도 산맥을 넘는 건 아니어서 대체로 고도 100m 정도의 고개가 여러 번 나타났다. 오르막에 접어들기 직전 속도를 최대한 내서 그 힘으로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 보려고 애쓴다. 속도가 줄어들 때면 자전거 기어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다리를 많이 돌리더라도 무릎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기어를 다 풀고 나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오르막길은 길을 넓게 써 바퀴로 S자를 그리며 조금씩 조금씩 올라간다. 심장과 허벅지가 터질 것 같지만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사이로 원초적인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두 번째 고개를 넘을 때 즈음 이런 생각을 했다.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오르는 일이 마치 사회운동 같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면에서 오르막 주행은 사회운동과 닮았다. 물론 사회운동에서 느끼는 쾌감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오는 성취감과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만족감 같은 것이고 오르막길의 쾌감은 내 경우엔  내 몸의 최대한을 쓸 때 오는 한계가 확장되는 그런 느낌의 쾌감으로 조금 다르긴 하다. 


그리고 오르막을 잘 오르는 방법과 사회운동을 잘 지속하는 방법이 닮았다. 오르막에서는 자신의 속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느리게 가면 자전거가 멈춰버리고, 너무 빠르면 다 오르기 전에 다리가 풀려 역시 멈추게 된다. 너무 힘들면 쉬었다 가도 되고, 정 힘들면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올라가도 된다. 사회운동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회변화는 지난한 일이다. 아주 긴 오르막을 오르는 것과 비슷한데, 너무 천천히 가면 지루해서 활동가들이 멈춰버릴 것이고 너무 빨리 가면 활동가들이 소진되어 번아웃에 빠지게 된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되 최선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속도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오르막을 오르는 일보다 내려가는 일이 더 무섭다. 겁이 많아서 빠른 속도를 즐기지 않는데, 높고 가파른 오르막일수록 내리막도 가파르다.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자전거로도 시속 40~50km는 쉽게 나온다. 그나마 도로가 지그재그로 되어 있으면 커브를 돌기 위해 감속을 하게 되는데 일자로 쭈욱 뻗은 내리막은 공포 그 자체다. 그런 길에선 오르막을 오른 것이 아깝더라도 브레이크를 잡고 내려가게 된다. 


사회운동은 오르막의 최고점-목표로 삼았던 사회 변화를 일구게 되면 내리막은 없다. 물론 백래시나 반동의 시절이 올 수도 있지만 오르막 뒤 찾아오는 내리막과는 다르다. 다만 오르막을 다 오르고 난 뒤 어떤 허탈함, 공허함 같은 것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길고 높은 오르막을 오른 뒤라면 감정의 진폭은 더 크다. 그러면 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다른 오르막, 다른 쾌감을 찾게 된다. 하나의 캠페인을 성공리에 정리하고 나면 다른 캠페인을 찾고 실행하는 것처럼. 나는 유난히 오르막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거 같다. 새로운 자극, 새로운 쾌감이 지속되어야 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다.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재미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일출을 보려고 알람을 켜 놨는데, 알람 듣고 깼는데도 팔다리가 너무 힘들어 일출을 보러 나가지 않았다. 오늘의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내 몸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또 몇 개의 고개를 넘을까. 사회운동의 오르막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전거 여행에서는 오르막이 주는 쾌감이 아무리 좋더라도 영원히 평지가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나마 야트막한 오르막 정상에서 내려다본 동해바다 

 



역시 오르막길에선 이 노래를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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