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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n 29. 2021

속상한 일

머그컵을 깨 먹었다

아침밥을 준비하다가 머그컵을 깨뜨렸다. 너무나 속상해서 애써 준비한 아침밥이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머그컵 하나에 뭐 그리 속상할까 싶지만, 그 컵은 동생이 만든 컵으로 내가 아끼는 거였다.


동생은 나와는 모든 게 다른 사람이다. 나는 키도 작은 편에 운동 신경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 꼴찌만 안 하면 만족할 실력이었는데 동생은 운동 신경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키가 커서 달리기에서 곧잘 1등을 하고 공책을 받아왔다. 식성도 달라서 나는 라면 국물은 안 먹는데 동생은 라면을 끓이면 국물부터 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적 함께 라면을 먹을 때 서로 끓이겠다고 나섰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동생은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반면 동생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잘하고 좋아한다. 내가 손으로 하는 것은 다 못하는 것과 반대로.


모든 게 다르지만 나는 동생과 사이가 좋은 편이다. 우리는 두 살 차이지만 내가 생일이 늦고 동생은 생일이 빨라 거의 연년생이나 다를 바 없다. 한두 살 차이 나는 남매는 어렸을 때 엄청 싸운다던데 나는 동생과 싸운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내 동생은 큰 욕심 없고 성품이 착해서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싸워본 일이 없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영화 벌새를 보면 주인공과 친구가 오빠에서 어떻게 맞았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내 동생을 때려본 적이 없다. 아, 딱 한 번 머리를 쥐어박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걸 지켜보던 엄마가 오히려 나한테 잘했다고 했다. 내가 4학년 동생이 2학년 때인데, 왜 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이 철제 저금통을 나에게 던져서 내 머리에 맞았고 나는 성질나서 그만 동생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동생은 폭력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이인데 왜 저금통을 던졌을까. 갓난아기일 때 무언가를 들어 던지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장독대 항아리 뚜껑 여러 개 해 먹었다고 했는데 그 습관이 남아있었던 걸까? 아무튼 내 동생은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착하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다.  


손재주가 좋은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닐 때도 자꾸 무언가를 만들어댔다. 지금은 아예 공방까지 차려서 라탄 공예와 마크라메 공예를 하지만 그 전에는 재봉틀로 냄비 손잡이 집게 같은 것을 만들어서 팔았다. 그때 만든 냄비 손잡이 집게를 나는 아직도 잘 쓰고 있다. 하지만 판매가 수월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조카들을 낳으면서 재봉틀로 무언가를 오래 만들기 어려웠는지 그만두었다. 바느질 전에 했던 게 머그컵, 접시, 그릇들을 만드는 거였다. 이건 판매용으로 하지는 않고 순전히 취미생활로 했는데, 집에다 커다란 가정용 가마를 들여놨었다. 초벌구이가 되어있는 컵, 그릇, 접시들을 사서 거기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넣은 후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구웠다. 전기로 돌리는 가마였는데 가마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다. 한번 돌리면 전깃세가 15만 원이 나와서 작품을 50개쯤 모아서 한꺼번에 구웠다. 가마가 돌아가면 온도가 어마어마해서 베란다에 두고 구우면 거실까지 따듯했다. 여름에는 차마 가마 돌릴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였다.  동생이 이때 만든 작품들은 아주 세련된 프로페셔널한 감각은 아니지만, 아마추어만이 가질 수 있는 풋풋하고 신선한 느낌이 수채화와 잘 어우러져서 나는 이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런 머그컵을 깨 먹었으니, 속상한 게 당연하다. 가마는 애저녁에 팔았으니 이제 다시 그려달라고 할 수도 없다.





동생이 만든 라탄 공예품, 마크라메 공예품은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멜로우 라탄"을 검색하면 됩니다. 공방은 부천 옥길동 스타필드 근처에 있는데 공방에 가시면 라탄이나 마크라메 만들기 클래스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인스타그램(@mellow_r_m)에 가면 스마트스토어에서 팔지 않는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요새 집들이 선물이나 친구가 아기 낳으면 선물로 동생이 만든 것들을 하는데, 받는 사람들 모두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아래 사진들이 친구들이 제가 보내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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