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자는 무엇일까? 새우깡, 빼빼로, 꼬깔콘? 1974년에 태어난 초코파이가 그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은 누적 판매량을 기록한 과자다. 달콤한 초콜릿이 바삭한 식감의 파이를 둘러싸고 있고 가운데에는 부드러운 마시멜로가 들어있는 과자. 한국 사람 대부분은 초코파이에 얽힌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듯하다.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연은 군대에서 초코파이 먹은 이야기다. 이등병 시절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 먹었다는 이야기, 자기를 갈구던 선임이 채찍 뒤 당근으로 초코파이를 줬을 때 마음이 마시멜로처럼 사르르 녹았다는 이야기, 초코파이 먹으려고 크리스마스 때도 나가지 않던 교회 집회 나갔다는 이야기 등등 군대에서 초코파이 먹은 이야기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만큼이나 지겨운 레퍼토리다.
1990년 후반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은 96년 연대 사태와 초코파이 이야기를 기억한다. 나도 이 이야기 수십 번은 들었다. 들을 때마다 구체적인 정보는 달랐는데, 경찰이 봉쇄한 연세대에 갇혀서 초코파이 하나를 십 수명이 돌려가면서 먹었다는 이야기다. 서로 양보하느라 초코파이가 수십 바퀴 돌았다 동지애 가득한 미담을 들으면서 나는 그냥 한 명한테 몰아주는 게 더 현명하고 합리적이지 않나, 생각했다. 그때가 8월이었으니 수십 바퀴 도는 동안 초코파이가 다 녹았을 테니 말이다.
나도 초코파이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수감되었던 2007년. 당시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무척 재밌게 보고 있었다. 공효진이 HIV에 감염된 어린 딸을 키우는 미혼모로 나오는 드라마였는데, 신구가 알츠하이머 환자면서 공효진의 아버지로 출연했다. 그 드라마에서 치매 노인 신구의 시그니쳐 대사가 "초코파이 줄까요?"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초코파이를 내밀면서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형(누나) 초코파이 줄까요?" 물어봤다. 감옥에서는 드라마를 녹화해서 틀어주느라 1~2주 정도 늦게 보게 되는데, 오리가 면회 와서 "용석아 너 좋아하는 신구 죽어서 어떻게 하냐"라고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를 발설했다. 아무튼 신구의 저 대사는 유행어가 되었고, 드라마 덕에 초코파이 매출이 크게 올랐다는 기사도 봤다.
또 하나는 형진이가 준 초코파이 생일 케이크다. 우리는 2006년 무렵 친해졌다. 당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투쟁이 한창이었는데, 나는 서울대책위에서 활동하며 마찬가지로 서울대책위에서 활동했던 문화연대 활동가 김완, 김형진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또래이기도 했고 죽이 잘 맞았다. 박래군 선배가 구속된 것을 계기로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날마다 촛불문화제를 했는데, 문화제가 끝나면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나는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놀았다.
그러던 나날 중 하루, 아마도 6월쯤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인사동에 있는 '천강에 비친 달'이라는 전통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완이와 형진이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로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다 생일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뻥을 태연하게 해댔다. 내 생일은 11월인데 말이다. 누굴 속이려는 의도도 없이 그냥 실없는 농담 같은 말이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고 우린 어느새 술잔을 비우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나갔는지 갑자기 형진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초코파이를 가득 사 왔다. 술상 가운데를 치우더니 초코파이를 쌓기 시작하고 맨 위의 초코파이에는 초를 꽂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리둥절하는 나를 보고 형진이는 나보다 더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너 생일이라며! 케이크 사려고 돌아다녔는데 빵집들 다 문 닫아서 그냥 초코파이로 샀어"라고 성질을 냈다.(김형진이 그때 스스로 썼던 별명이 '까칠한 언니'였나 암튼 그랬다) 나는 바로 이실직고를 했다. 내 생일은 11월이고 아까 그 말은 실없는 농담이었다고. 김형진은 어이없는 표정이었고 아까 말이 뻥인지, 지금 말이 뻥인지 분간이 안 가는 얼굴이다가 이내 나에게 욕을 욕을 퍼부었다. 나는 거짓말을 해서 케이크 사러 다니는 고생을 시킨지라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게 돌아다니다 초코파이를 사 온 거에 감동하기도 해서 그 욕을 그냥 다 듣고만 있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자주 술을 마셨고, 오래 술을 마셨다. 내가 감옥 다녀온 뒤로 형진이는 완이랑 결혼하고 회사에 들어갔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이제 예전만큼 자주 술을 마시지도 오래 마시지도 못한다. 나 또한 체력도 안 되고 그때보다는 바쁜 삶을 사니 마찬가지긴 하다. 그래도 우리는 최소한 일 년에 몇 번은 얼굴을 보고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얼마 전에는 술 마시면서 형진이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야기를 했다. 김갑수 배우와 김해숙 배우가 나오는데, 죽마고우로 함께 늙어가며 티격태격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귀엽게 그려진다. 내가 그날 술을 많이 먹어서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형진이는 우리도 나이 먹고도 저런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알게 된 지 15년이 지났는데, 또 한 번 15년이 지나면 김갑수 김해숙 배우의 극 중 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노년의 문턱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2주 전에 형진이와 완이를 다시 만났다. 활동가 친구라며 맨날 맛있는 거 사주는 친구들에게 그날은 내가 사주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쳤다. 주꾸미 집에서 만나 맛있게 먹고 나와 맥주로 입가심을 하기로 했는데, 형진이가 살 것이 있다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온 형진이의 손에는 초코파이 한 상자와 생일 초가 들려있었다. 그 주 금요일이 내 진짜 생일이었다. 나는 순간 15년 전 인사동 천강의 비친 달에서 들어 처먹은 욕이 생각나서 크게 웃었지만 마음으로는 깊게 뭉클했다. 맥주집에 가서 초코파이에 촛불을 켜고 완이와 형진이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나는 쑥스러우면서도 굳이 초코파이로 케이크를 만들어준 형진이의 마음이 따뜻해 기분이 으쓱 좋아졌다. 한입 배어 물자 올해 먹은 케이크 가운데 가장 달콤한 온기가 마음에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