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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n 18. 2022

커리를 추앙하라


경기가 끝나기 직전, 스테픈 커리는 울먹이며 코트에 주저앉았다. 무슨 상념에 젖었던 걸까? 우승 한 번 못하고 은퇴하는 슈퍼스타들도 수두룩한 NBA에서 벌써 네 번째 우승이니 익숙할 법도 한데 그는 앞선 세 번의 우승보다 더 감격하는 거 같아 보였다.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보다 이 장면이 더 인상 깊었다. 



울고 있는 스테픈 커리를 보면서 나는 2009년 기아 타이거즈가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시리즈를 우승하고 난 뒤 오열하던 이종범과 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 대 능남전이 끝나고 울며 서로를 포옹하는 채치수와 변덕규가 떠올랐다. 세계 최고, 이룰 거 다 이룬 슈퍼스타가 코트 위에서 우는 장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번 파이널 시리즈 인터뷰에서 커리는, 마지막 우승(2017~2018시즌)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 케빈 듀란트와 클레이 탐슨이 부상으로 아웃되고 결국 토론토에서 파이널 트로피를 넘겨준 뒤, 다음 시즌 자신도 큰 부상을 입어 듀란트, 커리, 탐슨 모두가 없던 골든스테이트는 리그 꼴찌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한다. 직전 시즌 준우승, 그 앞의 두 시즌 챔피언이었던 왕조가 말이다. 커리는 다음 시즌 복귀했지만 클레이 탐슨이 시즌 직전 다시 큰 부상(아킬레스건)을 당해 시즌 아웃되었고, 커리는 득점원을 차지하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였지만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탐슨이 돌아왔지만 그린과 커리가 번갈아 부상을 당하며 완전체의 전력은 좀처럼 꾸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놀라운 팀 디펜스와 특유의 유기적인 공격 창출로 서부 컨퍼런스 3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경쟁팀들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을 자랑하며 무난하게 다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내 생각엔 멤피스 그리즐드와 붙었던 서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겐 가장 큰 도전이지 않았나 싶다. MVP 니콜라 요키치나 농구 천재 루카 돈치치의 경우도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고 골든스테이트와 경기 때 30점은 그냥 쉽게 넣어댔지만, 골든스테이트는 그들에게 줄 점수는 주면서도 팀 디펜스가 무너지지 않았다. 요키치와 돈치치가 40점을 넣어도 골든스테이트의 수비는 탄탄했다. 그건 모두 스티브 커 감독의 계획대로 된 일이었다. 반면 멤피스는 리그 최고의 드리블러+득점원인 자 모란트가 있어서 골밑을 걸어 잠그는 골든스테이트의 수비를 공략하기 가장 좋은 팀이었다. 올 시즌 MVP 레벌 선수로 성장한 자 모란트는 기술도 최고 수준이지만 운동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작년 플레이인 토너먼트에서 골든스테이트를 떨어뜨린 것도 자 모란트의 멤피스였고, 올 시즌 정규 리그에서 또한 멤피스는 골든스테이트를 상대로 좋은 상성을 보였다. 만약 모란트가 부상을 입지 않고 세미 파이널 전 경기를 뛰었다면 승패가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만, 스포츠에 가정은 필요 없다. 비중은 다르지만 특급 수비수인 게리 페이튼 2세가 부상당하지 않았다면 자 모란트를 억제할 수도 있다고 예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 없다. 다만 경험치 이빠이 먹은 멤피스의 젊은 선수들이 내년에 한층 더 성장한다면, 멤피스가 NBA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다시 커리의 눈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스포츠는 스토리다. 경기 내적인 것은 피지컬 한 액션이고 숫자와 데이터로 정리되는 스탯이지만 관중들은 액션과 스탯에 더해 스토리를 본다. 응원하는 팀의 그냥 잘하는 선수가 수월하게 우승한다고 관중들은 감격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 예를 들면 풍전의 남훈에게 눈을 가격 당한 뒤 한 쪽 눈으로 농구에 몰입하는 서태웅의 보여주는 감동이라든지, 야생마 같은 강백호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라든지, H2의 두 주인공이자 단짝 친구인 히로와 히데오의 라이벌 구도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를 스포츠의 세계로 이끈다. 한국 프로야구만 봐도, 선동열 혼자 잘했다면 우리는 그를 볼 때 아무런 감격이 없는 리그 폭력 외계인으로만 기억할 것인데, 최동원이라는 불세출의 스타와 라이벌을 이루면서 선동열도 비로소 국보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번 파이널은 역경으로 무너진 슈퍼스타가 다시금 일어나는 일종의 고난 극복 서사 스토리고, 농구에 혁명을 가져온 역대급 선수면서도 늘 수비가 약하고 큰 경기에 약하다는 편견에 시달린 커리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증명해 보인 성장 스토리다. 고난 극복 서사와 성장 스토리면 뭐 말 다했지. 재미없을 수가,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커리의 눈물은 우리를 이 스토리의 주인공 자리로 위치시켜 준다. 세계 최고 레벌의 슈퍼스타에게 우리가 어떻게 감정이입이 되나.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우리처럼 고난도 겪고,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고, 약점도 있다. 그리고 결국 이걸 이겨내고 극복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바라는 모습을 커리를 통해 바라본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견디고 버티며 쌓아 올린 노력들, 말이 노력이지 고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골든스테이트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행복 농구는 이런 인내와 고난과 노력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번 커리에 대한 이야기. 커리는 커리어 내내 부당한 논란에 시달렸다. 사이즈가 작고 운동능력이 별 볼 일 없다.(이건 사실이다.) 수비력이 형편없다.(처음에는 그랬다.) 이 정도면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고 커리 또한 이 약점을 극복하려고 애써왔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논란은, 파이널 같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것과 좋은 동료 덕분에 우승했다는 것이다. MVP가 없어서 파이널에 약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커리의 그동안의 기록을 보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물론 시즌 최다승을 기록하고 파이널에서도 앞서가다가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브랜드에 허무하게 내리 3게임을 내주며 준우승에 그쳤던 시즌에 커리는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안드레 이궈달라가 파이널 MVP를 수상한 첫 우승 때도 커리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 슛터의 숙명상 터지지 않아 고전한 경기도 있었지만, 그해 파이널 4쿼터 평균 10.8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1997년, 1998년 마이클 조던보다 앞선 기록이고 커리 위에는 1995년과 2000년의 샤킬 오닐만 존재한다. 동시대의 괴물들-르브론 제임스나 케빈 듀란트보다도 2015년 커리가 4쿼터를 지배했다. 좋은 동료 덕에 우승했다는 말도 어이없다. 파이널 우승팀은 늘 좋은 동료가 넘친다. 조던에게도 피펜과 로드맨이 있었고 르브론도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이상 매이애미), 카일리 어빙, 케빈 러브(이상 클리브랜드)가 있었다. 커리도 듀란트, 탐슨, 이궈달라, 그린 같은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듀란트가 있을 때에는 듀란트에게 1옵션을 양보했지만 충분히 만점의 활약을 펼쳤고, 듀란트 또한 커리가 수비를 몰고 다니는 덕에 오클라호마 시절보다 더 좋은 슛을 던질 수 있었다. 


커리에 대한 이런 저 평가는 한편으로는 한두 경기 망한 것에 대한 잔상이 편견을 강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타적인 커리의 스타일과 골든스테이트의 팀 컬러 때문에 커리의 능력이 과소평가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성기의 제임스 하든이 평균 35점을 쏟아 넣는 것과 같은 득점력을, 전성기의 웨스트브룩이 시즌 평균을 트리플더블로 장식하는 것과 같은 다재다능함을 커리는 보여주지 못했다. 만장일치 MVP 시즌에도 말이다. 이는 포인트가드면서도 볼을 독점하지 않고, 역사상 최고 슛터면서도 득점에 욕심부리지 않는 커리의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커리는 소위 말하는 스탯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리그의 다른 슈퍼스타 득점원들과 다르게 경기를 혼자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이타적인 스타일 덕분에 커리는 동년배의 슈퍼스타들이 급격한 내리막을 걷는 동안에도 최고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2010년대 MVP를 나눠가졌던 르브론, 듀란트, 웨스트브룩, 하든은 모두 이번 파이널에 참가하지 못했거나 1라운드에서 광탈했다. 전성기가 지나 개인 기량과 성적이 곤두박질치기도 했고(하든, 웨스트브룩), 개인 성적은 준수하지만 좋은 팀을 만들지 못했다(르브론, 듀란트) 하지만 커리는 전성기보다 조금 하락한 스탯으로 올NBA팀에 선정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동료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퍼펙트게임보다는 수비의 도움을 받아 팀이 함께 만드는 노히트노런을 더 좋아한다는 쿠미니 히로가 커리라면,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자신의 재능으로 팀의 승리를 이끄는 히로따 같은 스타일이 하든이나 웨스트브룩일 것이다. 


커리가 위대한 것은 3점슛과 스페이싱이라는, 현대 농구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끈 혁명가면서 동시에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훌륭한 팀워크, 노력을 통한 약점 극복, 고난을 이겨낸 인내심과 강인함을 두루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미 NBA는 빠르게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 2020년대 NBA는 야니스 아테토쿤보, 니콜라 요키치, 조엘 엠비드에 자 모란트, 루카 돈치치가 도전하며 MVP 레이스를 펼치겠지만, 여전히 팀 워리어스는 당분간은 이들보다 강할 것이고 그 중심에는 스테픈 커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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