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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26. 2022

나의 코로나 확진 일지, 첫 번째 이야기

확진 판정, 고열과 두통의 날들 

0일 차: 7월 21일 목요일


퇴근하면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날이 좀 쌀쌀해서 따끈한 국물을 먹고 싶었다. 집 근처 자주 가는 베트남 국숫집을 가려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무일이었다. 복국을 먹을까 하다가 동네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중국집에 갔다. 젊은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깔끔하고 캐주얼한 느낌의 중식당이었는데 인터넷에서 평이 좋았다. 홀에 테이블이 4개밖에 없는 조그만 식당이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볶음밥이 맛있어 보여 잠시 고민했지만 원래 계획대로 짬뽕을 시켰다. 짬뽕은, 내 입맛에는 좀 짰다. 


짬뽕을 먹고 집에 걸어오는데 뭔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이상한다, 과식할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었는데. 간혹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밀가루 면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곤 했으니 피로 탓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집에 오니 열이 나고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고열과 목 통증. 너무나 코로나 증세였지만, '설마 코로나겠어? 그냥 감기 기운이겠지'라고 생각했다. 


보름 가까이 과도한 업무(양도 많았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는 진행하느라 여유가 없고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이다)와 휴가(긴 하지만 조카들과 물놀이하는 일은 써야 하는 에너지로만 보면 노동에 가깝다)가 이어지면서 전혀 쉬지 못했다. 체력이 바닥났으니 감기든 뭐든 몸이 탈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비타민을 챙겨 먹었다. 유자차, 매실차도 마셨는지 밤이 깊을수록 열은 오르고 목은 따끔거렸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1일 차: 7월 22일 금요일


걱정 때문인지, 몸 컨디션 때문인지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직 열감은 있었지만 목의 따끔거림은 사라져 있었다. 이것 봐, 코로나 아니잖아. 안도하면서도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 문 여는 시간이 되자 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37.7도. 서둘러 병원에 갔는데 원래 다니던 이비인후과는 때마침 여름휴가였다. 카카오맵에서 평이 괜찮은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이비인후과가 하나 더 있어지만 신속항원검사를 35000원을 내라고 해서 안 간다) 


내가 간 병원은 소아과였는데, 평일 아침부터 어린이 환자가 넘쳤다. 아픈 아이들이 왜 이리 많은가. 그런데 아픈 아이들이 왜 이리 시끄럽나. 병원 진료대기실은 난장판이었다. 나는 애기들 좋아하고,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시끄럽게 떠들고 울어 대도 싫지 않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열이 많이 나고 머리가 아프니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너무나 신경 쓰였다. '얘들아 제발 조용히 있으면 안 되겠니' 마음속으로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조잘거리고, 울고, 떼쓰고, 토하고, 마구 뛰어다녔고, 나는 미칠 듯이 괴로웠다. 


오래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다. 이 의사 선생님은 내가 그래도 수차례 받아본 코로나 검사 가운데서도 가장 아프게 코를 찔러대는 축에 속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빨리 검사받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아픔을 밀어냈다. 15분 뒤 의사 선생님은 코로나 양성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고, 나 또한 담담하게 들었다.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열이 38.5도였다. 내 머리는 복잡한 생각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빨리 약 받아서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는데 자기들한테는 없는 약이 하나 있다며 다른 약국에 가라 했다. 아, 정말 걷기도 힘든데 그날따라 병원도 약국도 공을 치는 곳이 많았다. 다른 양국에 가 약을 지어 집에 들어왔다. 

약을 먹어야 하고 몸에 열이 너무 높아 소바를 시켰다. 그런데 소바가 너무 맛이 없었다. 코로나 확진되면 미각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나는 미각이 멀쩡한지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반도 못 먹고 버렸다. 


약을 먹었지만 38.9도까지 오른 열은 내리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는 고열이었다. 심하게 어지러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집이 난장판이었지만, 난장판 사이에 자리를 잡고 나는 하루 종일 끙끙 앓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열을 식히려고 보냉팩을 끌어안고 선풍기도 틀었는데 몸에 오한이 들어 이불은 꼭 덮어야만 했다. 한 대여섯 시간 잤다고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고작 20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이 괴로운 시간이 이토록 더디 가나 싶어 서러웠다. 중간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저녁 약을 먹었다. 주말에 만나기로 한 사람들에게 코로나 약속을 미뤄야 한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는 또 잠을 자는 듯, 깨어 있는 듯, 끙끙 앓는 시간에 빠져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누워 있는 것이 유일한 행위였던 하루다.

  

2일 차: 7월 23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열이 계속되면 안 좋을 텐데, 걱정이 됐다. 여옥이가 보내준 새벽 배송 물품을 집으로 겨우 들였다. 정리할 기력은 없어서 냉장보관해야 하는 것만 냉장고에 넣었다. 바나나와 망고주스가 있길래 그것으로 아침을 때우고 약을 먹었다.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힘들면 어쩌지, 걱정만 한가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 약을 먹고 난 이후에는 열이 조금 내렸다. 37.9도. 열이 내려가자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어렵게 회복한 한 조각의 체력으로 집안 정리를 했다. 쓸고 닦기까지 하고 싶었지만 그런 기력까지는 안 됐다. 어제오늘 어질러진 방바닥의 잡동사니만 정리했다. 


점심 약까지 먹고 나니 열이 36도대로 내려갔다. 그제야 좀 안도할 수 있었다. 나처럼 평소에 잔병도 없고, 어디 한 군데 뼈 부러진 적도 없는 사람들은 사실 아픔에 취약하다. 아플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픔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 경험이 없다. 고열이 지속될 때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고열이 지속되면 무엇이 안 좋은지, 이런 걸 전혀 몰랐고,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다. 두려움이 가시니 시간을 잘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몸을 조금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열은 내렸지만 기력이 없었고 두통이 심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두통으로 골이 울렸다. 이건 경험이 있다. 출소를 한 달 앞두고 감기몸살에 걸렸을 때 딱 이랬다. 걷는 것도 힘들고 글자를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어서 편지도 안 썼다. 드라마 보는 것으로 버텼다. 그때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인기리에 방송 중이었다. 이번에도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만화책 <슬랭덩크>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기 시작했다. 소문대로 재밌고 사랑스러운 드라마다. 우영우, 안 보고 아껴두길 잘했다. 


3일 차: 7월 24일 일요일


하지만 밤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새벽 6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붙였고, 8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나는 잠 잘 자는 거는 어디 내놔도 잘하는 사람인데 도통 잠이 오질 않으니 이것도 코로나 후유증인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확진되고 계속 잠만 잤으니, 그래서 졸리지 않은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습관처럼 체온을 쟀다. 36.5도. 이제 체온은 더 재지 않아도 될 거 같다. 문득 열감이 있어서 체크해봐도 실제로는 변함이 없었다. 여옥이가 보내준 것들과 현정이가 사다준 것들로 식사를 했다. 아침은 빵과 우유, 과일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죽이나 누룽지를 먹었다. 3일째가 되니, 그리고 뭔가를 행할 수 있는 몸상태가 되니, 나름 루틴이 생겼다.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 과일이나 주스를 마시고, 쪽잠을 잔다. 


두통이 여전했다. 아니 좀 더 심해진 거 같았다. 두통이라니. 나는 인생의 첫 절반은 두통이 뭔지 아예 모르고 살았고, 나머지 절반은 뭔지는 알 정도로만 두통을 겪었다. 이렇게 강하고 지속적인 두통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고 이 두통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타이레놀을 먹을까 생각하다가도 코로나 처방약과 함께 복용하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참았다. 오전 내내 두통과 함께 우영우를 봤다. 점심 이후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역시나, 두통약을 거의 안 먹고 살아왔던지라(평생 20알도 안 먹었을 거다) 한 알만 먹어도 효과가 바로 왔다. 열도 내리고, 두통도 가시니 이제야 좀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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