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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30. 2022

나의 코로나 확진 일지, 두 번째 이야기

4일 차: 7월 25일 월요일


전날과 다르게 푹 자고 일어났다. 잠에서 깨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뜻한 기운, 일상적인 몸 상태였다. 열도 없고, 두통도 없고, 몸 전신에 뭔가 가득 차 내 몸을 지구의 핵 쪽으로 자꾸 잡아끄는 거 같은 그 느낌도 사라졌다. 평소와 같은 상태인데도 나는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잔뜩 차고 있다가 풀어버린 그런 느낌처럼. 나는 이 기분을 더 만끽하고 싶어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반신욕을 했다. 물론 아침은 평소처럼 일어나자마자 먹었다. 공복에 욕조에 들어가면 크게 어지러워서 안 된다. 반신욕을 하면서 생각했다. '오늘까지는 그냥 쉬면서 놀자'. 월요일이니까, 그리고 몸 상태가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 없으니 재택근무를 해도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던 터라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쉬니까 좋았다. 나는 원래 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노는 날에도 무언가를 하면서 놀아야지 그냥 쉬는 거 잘하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쉬니까 좋았다. 


아침에 병원 가서 진료를 받고, 새 약을 지어왔다. 열은 내리고 기침과 가래만 조금 남은 상태라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줬다. 지자체별로 다르다던데 파주는 진료에 한해서 확진자가 바깥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계속 집에만 있어 답답하던 참이라 외출이 무척 반가웠다. 하늘은 또 왜 이리 대책 없이 맑은 것인가. 집에서 쉬면서 잠시 외출 나와 맞이한 하늘 치고는 너무 눈이 부셨다. 


그렇게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 저녁에 청소를 시작했다. 전날은 그냥 정리정돈만 했고 본격적인 청소를 하려고 시작한 건데, 청소가 책 정리로 번졌다. 방바닥에 책 탑이 여러 개 쌓여있었으니 청소를 제대로 하려면 그걸 정리하긴 해야 했다. 하지만 책장을 제대로 정리하려면 하루로는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결국 이번 참에 정리할 책들을 솎아냈다. 100권이 넘는 책을 중고서점에 팔 책과 버릴 책으로 구분했다. 


5일 차: 7월 26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혓바늘이 두어 개 돋았다. 코로나로 몸이 부대꼈으니,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너무 놀고만 있을 순 없으니,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자신만만하게 일을 시작했는데, 조금 하다 보니, 30분도 안 되어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심한 두통은 아니고 누가 머리를 지그시 누르는 거 같은 약한 통증이 머리 전체를 옥죄어 왔다. 겁 많은 나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바로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머리가 괜찮아지면 다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가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 쉬기를 반복했다. 실제 일을 한 시간은 채 2시간이 안 되었을 것이다. 


방바닥은 난장판이었다. 책장 정리를 하겠다고 책을 늘어놨으니. 엄두가 나지 않은 일을 괜히 시작했나 싶었다. 하지만 요 몇 달간 필요한 책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 난감했던 경험을 몇 차례 했던지라, 정리가 필요하긴 했다. 낮 시간에는 업무를 핑계로(실제로는 쉬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저녁 시작에는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방바닥에 늘어진 책들을 방치했다. 


부모님이 부천에서 파주까지 오셨다. 확진 사실을 알렸을 때부터 오신다고 한 것을 내가 계속 오지 마시라고,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와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가는데 뭘 굳이 오시냐고 말렸다. 집에 친구들이 보내준 것이 많아서 먹을 게 이미 넘친다고 안심도 시켜드렸지만, 애초에 합리적인 판단의 영역이 아니었던 거지. 부모님은 기어코 파주에 올 일을 만들었다. 전날 찰밥을 했다고 했을 때부터 사실 직감하고 있었다. '오시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찰밥을, 내가 격리 중이라 먹지 못하는데 하실 리가 없었다. 찰밥 가져다주러 오실 게 뻔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일산에 일이 생겼다 하셨다. 무슨 자전거 안장을 사러 일산에 오신다는데, 고작 안장 하나 사러 부천에서 일산까지 오는 것도 이상했고, 아빠가 일산의 자전거포에 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냥 파주에 온다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하니까 핑계를 만드신 것이 분명했다. 


6~7일 차: 7월 27일~28일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여전히 머리를 쓰면 머리가 아팠지만 일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렸다. 혓바늘은 그냥 혓바늘로 끝났고, 머리 아픈 것을 빼면 몸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기력이 좀 없긴 했지만, 여름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방바닥의 책은 결국 미루고 미루다 정리를 시작했다. 원래는 책 분류를 다시 해서 아예 새롭게 정렬하리라는 야심 찬 계획으로 시작했지만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내가 자주 들춰보는 분야-전쟁과 평화, 에세이, 과학, 야구만 정렬을 새롭게 하고, 나머지 분야는 그냥 되는 대로 책꽂이에 꽂았다. 빨리 정리해버리고 싶었다. 원래는 좀 쾌적한 방에서 격리 치료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책 정리 때문에 난장판인 방바닥에서 격리 치료를 했다. 뭐 그래도 한 번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방바닥에 제멋대로 쌓아두었던 책 탑은 없어져서 좋다.


격리가 끝날 때가 되면서 후유증이 나타날까 봐 더더욱 긴장했다. 우공의 경우는 격리가 끝나는 때에 찾아온 심각한 두통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고 하고, 건너 건너 들은 많은 경험들은 후유증이 언제 어떤 것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하니 긴장을 놓을 순 없었다. 


후기 


내가 이렇게 쉬는 걸 좋아하는지 몰랐다. 나는 원래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거를 별로 안 좋아한다. 여행을 가더라도 휴양지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집에서도 하여간 뭔가를 꼭 하는 편이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거나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 보내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격리 치료 기간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더 쉬고 싶었다. 출근 안 하고 싶었다. 이게 내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몸이 피곤한 걸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걸까?


나는 잔병치레도 없고 크게 다친 적도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다. 대단한 체력이나 힘을 가진 건 아니지만 아무튼 꾸준하게 건강했다. 그래서 나는 통증이나 아픔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두통이 찾아오면 나는 무얼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했다. 열이 39도까지 오르는데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무얼 할 수 있고 하면 안 되는지 알지 못해 허둥거렸다.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아픈 상황에 대한 노하우나 경험이 없었다. 아픈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몸으로 감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당연했다. 건강에 대해 자만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자주 나누지만, 또 다른 의미로 나는 건강해서 취약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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