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로 들기름 막국수를 해 먹었다. 밥을 해 먹을까 하다가, 오늘 밖에서 자고 들어오는데 밥 해놓으면 밥솥 안에 너무 오래 있게 될 거 같아서 밥 대신 다른 걸 먹기로 했다. 마침 빵이 다 떨어졌고, 국수와 들기름이 딱 1인분이 남아서 아침부터 국수 삶아먹게 되었다. 들기름 막국수는 만들기 참 쉽다. 작년인가 처음 식당에서 먹어보고 담백하니 맛있다고 생각했고, 슈퍼에서 밀키트를 팔길래 자주 사다가 해 먹었다. 집에서도 해 먹고 사무실에서도 해 먹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밀키트가 올해는 가격이 껑충 뛰어올랐다. 내 기억으로 작년에는 2인분이 5000원 정도였는데 이젠 7000원이 넘는다. 이 정도 가격이면 부담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싸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결국 면만 사다가 직접 해 먹어 봤는데 생각보다 만들기도 간편하고 맛도 괜찮다.
들기름 막국수 만드는 법
재료(1인분 기준)
메밀면: 여러 제품이 있는데 나는 오뚜기에서 나온 노란색 비닐봉투에 든 것을 제일 좋아한다. 1인분씩 따로 묶여있어서 양 조절하기도 쉽다
간장: 1.7큰술. 나는 집에 있는 진간장을 그냥 쓰는데 더 맛있게 먹고 싶은 사람들은 쯔유나 혹은 여러 맛이 들어가 있는 간장을 쓰는 거 같다. 진간장으로도 충분하다.
물: 1.7큰술. 사실 정확한 양은 기호에 따라 다를 거고 물과 기름과 간장이 1:1:1인 것이 중요하다.
들기름: 1.7큰술
설탕: 1큰술
김가루: 적당량. 조미김이 더 맛있다.
방법
국수를 삶아 채에 바쳐 찬물로 씻는다. 국수를 삶을 때는 찬물을 준비해두고 물이 넘치려고 할 때마다 찬물을 붓는다. 찬물로 씻을 때는 거품이 나지 않을 때까지 씻어준다. 다 씻은 면의 물기를 빼서 그릇에 넣은 뒤 위 재료들을 넣고 비비면 끝.
그런데 오늘 막국수는 실패다.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에서 하다가 재료 비율을 틀렸다. 설탕을 1.7큰술을 넣어버렸더니 국수가 단맛이 너무 강하다. 들기름 막국수로서는 망한 셈이지만 그 맛은 잊고 지낸 내 기억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해 줬다.
우리 집은 국수를 자주 먹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름에는 가끔씩 비빔국수를 해 먹었는데 엄마는 아직 어려 매운 것을 못 먹는 나와 동생을 위해 간장비빔국수를 따로 비벼 주셨다. 들어가는 재료는 간장과 설탕 그리고 참기름 몇 방울이 전부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엄마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를 1980년대에도 구현하고 있었다. 간장과 설탕의 단짠 조합도 그렇고, 사실 들어가는 재료만 보면 들기름 막국수의 들기름이 참기름으로 바뀌었을 뿐 다른 게 없으니. 김가루가 빠지긴 했지만.
무더운 여름에, 밥알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을 무더위에, 나와 동생은 엄마가 비벼준 달달하고 짭짭한 비빔국수를 잘도 먹었다. 평소에 외식도 잘 안 하고 국수도 많이 먹지 않아서 외식으로 국수 먹는 일이 거의 없었던지라 일반적으로 비빔국수는 고추장 베이스라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비빔국수라고 하면 간장 소스가 베이스인 국수만을 떠올렸다.
이런 메뉴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백설기처럼 두툼하게 구웠던 엄마표 팬케이크. 나는 원래 팬케이크가 그렇게 두툼한 줄 알았다. 계란과 우유를 잔뜩 넣어 고소하고 부드러웠는데 물론 요즘 파는 팬케이크처럼 부드러운 건 아니었다. 당시 엄마는 버터를 넣지는 않았을 것이고, 마가린을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모양을 보면 팬케이크라기보다는 등산로 밑에서 파는 두툼한 영양빵 같은 모양이었지만 맛은 나름 팬케이크 맛이었다. 당시에는 시럽도 없어서 그냥 팬케이크만 우유에 먹었다. 엄마가 만든 간식 중에서도 나는 이걸 무척 좋아했다.
엄마표 도너스도 생각난다. 말이 도너스지 우리가 지금 먹는 던킨이나 크리스피크림 같은 도너스가 아니다. 물론 기름에 튀긴 거긴 한데, 식감이 완벽하게 달랐다. 밀가루 반죽의 밀도가 높아서 도너스 속이 폭신폭신한 게 아니라 조금 퍽퍽했다. 요즘 편의점에서 파는 구운 도너스와 조금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엄마는 주로 세 가지 모양으로 도너스를 만들었다. 동그란 링 모양, 그리고 직사각형 반죽 가운데 평행한 줄을 내어 줄 안으로 직사각형을 꼬아서 만든 모양(우리는 그걸 꽈배기 도너스라고 불렀다). 마지막으로 마름모꼴 모양. 잘 익으라고 가운데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냈는데, 그게 튀기고 나면 꼭 십자가처럼 보였다. 당시 내가 즐겨봤던 아더왕 만화에 나오는 십자가 새겨진 방패처럼 보여서 나는 그 도너스를 가장 먼저 먹곤 했다.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는 법. 혹은 왜곡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사람 자체가 바뀌는 법이다. 특히 음식에 대한 기억은 더욱 그러하다. 예전에 감동적이었던 음식을 나중에 다시 먹어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당시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은 어린이였던 나와 동생 입맛에 맞춘 간식이었을 테니, 성인이 된 내 입맛에는 더더욱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간장비빔국수는 언젠가 해 먹어 봤는데 매운맛이 하나도 없고 달고 짜기만 해서 맛이 없었다. 그런데 들기름 막국수에서 힌트를 얻는다면 간장비빔국수에 김가루만 뿌려도 확 달라질 것 같다. 그리고 도너스는,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조카가 태어나고 아직 어렸을 때 엄마는 도너스를 한 번 했다. 아기 간식으로도 먹이고 나와 동생도 같이 먹으라고. 도너스는 예전 그 맛 그대로였다. 예전에는 우유에 먹었다면 이제는 커피에도 먹는 것이 달라졌을 뿐. 그리고 이제는 마름모 모양 도너스(일명 방패 도너스)부터 먹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