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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y 10. 2021

병역거부하는 남자, 옥바라지하는 여자?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뒤 전쟁없는세상 사무실 전화기는 쉴 틈이 없었다. 기자들은 십중팔구 병역거부자를 연결시켜달라고 했다. 당사자의 한마디가 갖는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조금 심통도 났다. ‘우리가 무슨 병역거부자들 매니저인가.’ 병역거부자들과 연결시켜줘 봤자 다시 전쟁없는세상으로 전화가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는 잘할 수 있지만 병역거부 이슈의 전반적인 내용이나 대체복무에 대한 세세한 것들은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아주 오래되었고 너무 익숙하다. 내 짜증은 여성활동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 또한 병역거부자로 인터뷰를 많이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전쟁없는세상이죠? 혹시 여옥 활동가 연락처를 알 수 없을까요?”     


귀를 의심했다. 여옥의 전화번호를 묻는 기자라니, 병역거부자가 아니라 여성활동가를 찾는 기자라니! 깜짝 놀라면서도 너무 반가워서 아주 큰 소리로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드디어 병역거부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는 기자가 생겼구나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여옥에게 기자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었다. 이런 혜안을 가진 기자라면 질문도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한 상태였다. 하지만 여옥의 입에선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나왔다.      


“나한테 인터뷰할 수 있는 병역거부자들 연락처를 묻더라고.”     


병역거부운동을 하며 만난 많은 기자들은, 아니 한국사회 대다수가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여성활동가를 그저 병역거부자를 돕는 조력자쯤으로 여긴다. 감옥행을 감수하는 남성 병역거부자들이 ‘전쟁 영웅’으로서 군인들의 반대편에서 ‘평화 영웅’이 되는 동안 여성활동가들은 영웅의 그림자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영웅이 더욱 빛나게 도와주는 역할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병역거부운동에서 여성이 언론에 등장하는 경우는 병역거부자 누구누구의 가족, 애인, 친구로 호명될 때였다. 여성의 목소리는 남성 병역거부자의 존재를 거치지 않고서는 사회적으로 발화되지 못했다.      


여옥와 오리(최정민). 이 둘을 빼고 한국 병역거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유재석과 김태호를 빼고 무한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한국 병역거부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이들은 주로 여성이었다. 이 당연한 사실에는 우연과 필연이 섞여 있었다. 한국에서 병역거부 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젊은 평화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단체 평화인권연대(1999~2010)의 최정민 활동가였다. 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한 외국 활동가 한 명이 최정민에게 대만의 대체복무 도입 소식을 알리며 병역거부운동을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병역거부운동을 제안받은 이가 여성인 것이 우연이었다면(사실 나는 이조차도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활동가가 왜 굳이 최정민에게 제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성인 것이 주된 이유일 수도 있다), 그 이후 최정민과 함께 전쟁없는세상의 양여옥이 꽤 오랫동안 병역거부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은 필연적인 요소다.   

   

나를 포함해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다녀오는 동안 활동의 공백이 생겼고, 더러는 수감생활 전후로 긴 방황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반면 여성활동가들은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서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도, 출소하고 나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이후에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포함한 병역거부운동의 나아갈 방향을 살피고 사람들을 모으며 활동을 기획하고 조직해갔다. 수감자 지원은 여성활동가들의 수많은 활동 중 하나였을 뿐이다. 여성활동가들은 병역거부운동에 내재되어 있는 남성중심성이나 가부장성을 탈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특정한 성별, 혹은 특정한 개인에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병역거부운동 내부의 의사결정과 캠페인 진행과정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문화와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한국 병역거부운동이 일군 성과를 분석해보면 다양한 성공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앞자리에 병역거부운동이 여성 리더십을 중심으로 이어져왔다는 사실이 자리 잡아야 한다.


여성활동가들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 외부의 시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활동가들은 병역거부운동에는 페미니즘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력했는데, 이 노력은 외부의 요인보다는 내부의 문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활동가들은 병역거부운동 내부의 성별 분업을 민감하게 생각했다. 사무실 컵을 누가 씻는지 같은 일상생활적인 문제는 다른 사회운동보다는 병역거부운동이 덜 한 편이기도 했고 큰 이슈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운동 내에서 누가 감정노동을 요구받고 감당하는지가 더 큰 문제였고, 감정노동은 철저하게 여성활동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병역거부운동이 병역거부자를 만나는 방식에서 상담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상담 업무의 상당한 부분은 감정노동이었다. 또한 이들이 감옥에 갈 경우에는 수감생활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는데 수감자 지원에서도 감정노동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병역거부자 현민은 《감옥의 몽상》에서 신영복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진보 남성의 감옥살이가 여성의 돌봄노동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비판했는데, 병역거부자들의 감옥살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핏 생각해보면 감옥생활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은 출소한 병역거부자들이었지만 한국사회에서 20년 넘게 남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돌봄노동에 서툴렀고 그러다 보니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은 필요한 일을 부탁하거나 수감생활에서 오는 여러 정서적 어려움을 여성활동가들에게 의존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여성활동가에게만 집중되는 돌봄노동을 분산시키기 위해 출소한 병역거부자와 수감된 병역거부자를 짝을 지어 수감자 지원을 하는 등 여러 시도를 했는데, 어느 정도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감정노동의 성별분업을 극복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성별분업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예기치 않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수감생활은 결국 병역거부자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면서 동시에 바깥의 도움 또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없는세상은 구속을 앞둔 병역거부자들에게 영치금 관리, 면회 조정과 같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늘 신경 써야 하는 업무를 담당해줄 후원회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병역거부자들은 비교적 자신이 신뢰하고 부담 없이 무언가를 부탁할 수 있는 이에게 후원회장을 부탁했는데, 여기서 특별한 경향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애인이 있는 이성애자 병역거부자의 경우엔 거의 백 퍼센트 애인이 후원회장을 맡았다. 성소수자거나 애인이 없는 병역거부자의 경우에도 여동생이나 여성 친구가 후원회장을 맡았다. 병역거부 하고 감옥에 가는 남성과 옥바라지 하는 여성의 구도가 너무나 명확했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자와 후원회장에게 감정노동이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병역거부운동 내 성별분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면서 가능하다면 후원회장을 남성으로 할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몇몇 병역거부자들의 여성 후원회장은 전쟁없는세상의 문제의식이 자발적으로 병역거부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자신의 선택을 왜곡한다고 느꼈다. 후원회장을 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병역거부자 남성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역거부운동의 중요한 주체로서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한 것인데 마치 자신의 선택이 성별분업을 가속화시키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그들의 불편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후원회장을 특정 성별이 맡는 것 또한 옳은 방향은 아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없는세상의 조언을 받아들여 남성에게 후원회장을 맡겼는데 이때도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돌봄 노동에 익숙하지 못한 남성 후원회장은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고, 그 결과 후원회장 업무의 상당한 영역을 다시금 병역거부자들의 여성 지인들이 감당하게 되었다. 후원회장을 맡는 경우라면 그래도 소수의 사람들이 그 고생을 알아주고 치하하는데, 후원회장도 아니면서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경우 여성들의 활동은 더더욱 비가시화되었던 것이다.       


성별분업과 남성이 과도하게 대표되는 문제는 비단 병역거부운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병역거부운동은 태생적으로 남성 중심성을 띄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회운동보다 훨씬 더 신경을 많이 쓰고 노력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 후원회장을 맡는 문제에서 봤듯이 여성활동가의 비가시화를 극복하고 성별분업을 깨는 것에는 언제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정답은 없다. 모든 문제는 권력과 편견에 뿌리를 박고 맥락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병역거부운동에서 여성활동가들이 비가시화되는 문제 또한 그때그때의 맥락에서 성별에 따른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늘 긴장하고 살펴 경계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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