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운동의 태생적 한계와 병역거부의 확장
“병역거부 운동은 쁘띠 부르주아 운동이다.” 어느 사회운동 단체의 간부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건너 건너 들었을 때 나는 그만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한 젊은 노동자가 과연 병역거부를 할 수 있겠냐는 아주 현실적인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가 피식 웃은 까닭은 저 말을 한 사람이 속한 단체 역시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쁘띠 부르주아이기 때문이었다.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통찰이 안타깝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병역거부자들은 대체로 중산계급에 고학력자인 경우가 많다.
역사상 가장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한 베트남전쟁 시기에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한 대학생들(주로 백인)은 병역거부를 한 반면, 유색인종들은 일단 군대에 입대한 뒤 베트남에 파병되어 전쟁의 본모습을 겪은 뒤에 탈영을 하는 방식으로 병역거부자가 되는 일이 많았다. 이런 결과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병역거부라는 선택지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이들은 아무래도 중산계층의 고학력자들이다.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를 만날 기회나 병역거부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향을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병역거부의 양심을 증명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고학력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상적인 양심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전과자가 되어도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병역거부를 실행하기 쉽다. 당장 자신이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라면 제 아무리 강력한 평화주의 신념을 지녔다 해도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다녀오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중산계급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병역거부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는 병역거부운동 활동가들에게는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가뜩이나 병역거부는 입영영장 거부를 남성들만 할 수 있는 까닭에 병역거부자 남성만 영웅으로 부각되고 여성 활동가들은 병역거부자를 돌보는 부차적인 존재로 여겨지기 쉬운 약점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돈의 많고 적음과 학력 격차까지 당연한 일이 되어버릴 경우 병역거부운동은 남성 엘리트 중심의 사회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남성 엘리트 중심의 사회운동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이나 차별에 둔감하고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한계를 지니는데 이것은 평화주의자들이 바라는 모습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내제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빠지기 쉬운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 병역거부운동 활동가들은 병역거부의 의미와 개념을 확장하는 데 힘을 써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호와의증인을 제외한다면 오태양의 병역거부 선언 이후 등장한 병역거부자들은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았고 입시학원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학 출신이 그렇지 않은 병역거부자보다 많았다. 아무래도 고학력자와 좋은 학벌을 가진 이들이 병역거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용이한 측면도 작용했을 거고, 출소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도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병역거부에 대해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서 출소 이후의 경제 활동이나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소위 명문대 출신들이 학벌과 학연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더 다양하기 때문에 전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특징이 더 더해졌다. 오태양의 병역거부 선언 이후 등장한 병역거부자들은 한동안 학생운동가나 사회운동가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오태양 자신도 불교신자면서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펼쳐온 평화운동가였고, 이후 등장한 유호근 나동혁도 각각 통일운동을 하는 학생운동 그룹과 맑스레닌주의 학생운동 그룹의 활동가였다. 학생운동 또한 학벌 사회라는 맥락 속에 소위 명문대 중심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으니, 이는 자연스럽게 병역거부자들의 학벌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의 존재적 위치 또한 병역거부운동이 걸어온 역사에서 보여준 한계 속에 놓여있었다. 사회의 평균적인 또래집단에 비해 고학력자의 비율이 높고 좋은 학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병역거부운동 활동가들 또한 이 문제를 인지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쁘띠 부르주아’들만의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쁘띠 부르주아는 병역거부 하지 못하게 말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노력의 방향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병역거부를 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전형적이지 않은 병역거부의 사례를 발굴해서 알렸고 새로운 병역거부의 언어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병역거부자들의 다양한 양심에 주목하기도 하고, 새롭게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병역거부 선언을 만들어가며 각각의 병역거부에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시도하였다.
낫질을 배워야지 왜 사람 죽이는 총질을 배우냐며 병역거부를 한 농부,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의 역할과 불화하며 나약함으로 치부되는 자기 안의 여성성을 긍정하는 페미니스트, 폭력이 만연한 군대의 시스템과 문화가 무섭고 두려운 예술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려 노력하는 기독교 신자와 가톨릭 신자, 동물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폭력을 반대하며 병역을 거부하는 동물권 활동가. 그리고 과거에는 병역기피라고 불렸을, 사회과학적인 언어로 자신의 병역거부 이유를 설명해내지는 못하지만 감옥을 갈지언정 군대에 갈 수 없었던 병역거부자들까지, 병역거부자들의 모습은 다양하게 확장되어 갔다. 이들은 출소 이후에도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삶을 일궈 가고 있다. 단체 활동가와 연구자로 사는 이들의 비율이 높긴 하지만 의사, 농부, 물류 노동자, 연극연출가, 학원 강사, 변호사, 백수, IT회사에 근무하는 프로그래머 노동자, 영화감독, 배달 라이더, 바리스타 노동자, 사회적 기업 창업자 등 다양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런 확장은 병역거부운동의 노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병역거부가 개인의 양심에 기반한 실천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사회운동은 운동 조직에서 설정하는 정치적인 목표나 실천 방향이 구성원 개인에게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반면, 동질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이며 새로운 집단이나 정체성이 사회운동으로 유입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병역거부운동은 조직의 방침이 목표 같은 것보다 개인의 양심이 중요한 사회운동이었고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양심과 조직의 방침이 어긋난다면 기꺼이 조직의 방침을 거스를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사회운동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이들과 사회운동의 틀 안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진지하게 살펴보는 이들 중에서 새로운 병역거부의 언어를 발견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은 비록 소수였고, 집단화되어 있지 않아 당장 변화를 이끌어낼 커다란 힘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언어와 존재는 늘 그렇듯 이후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열어주었다.
물론 병역거부운동의 한계를 극복한 것은 아니다. 병역거부운동은 여전히 병역을 거부한 남성을 중심으로 인식되기 쉽고, 과거에 비해서는 다양성이 늘었다 하더라도 병역거부자들 가운데는 여전히 중산계급 고학력자들의 비율이 높다. 병역거부운동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애초에 극복하여 다른 질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도달해야 할 어떤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과정만 존재할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병역거부자들 중에 가난한 사람들의 비율이 늘고 가방끈 긴 사람들의 비율이 줄어든다고 극복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급과 학력, 젠더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당연히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개별적으로 접근해서 어떤 성취를 이뤄내더라도 병역거부운동은 다른 형태의 내부 기득권을 발견하고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당장에 세계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인종 또한 병역거부운동이 쉽게 빠지기 쉬운 기득권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권력의 작동도 복잡해지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사회적 권력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스스로에게 내재된 권력과 기득권의 속성을 마주하려는 노력을 이어가는 것, 그렇게 마주한 기득권을 과감히 떨쳐내고 다시 새로운 마주침을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병역거부의 언어가 발굴되고, 새로운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