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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자회견 이야기

by 이용석

내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시우님의 병역거부 재판 대법원 선고가 있는 날이라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보지만, 재판이라든지 수감생활 같은 것들은 실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법. 속단하면 안 된다.



기자회견 개최 여부 판단과 준비과정


문득 그동안 해왔던 기자회견들이 떠오른다.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기자회견이다. 기자회견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누가 발언할지 정해서 발언자와 사회자를 섭외한다. 기자회견의 내용이나 성격, 취재와야할 기자들을 고려해서 기자회견 장소를 정한다. 기본적으로 기자회견은 따로 집회 신고를 안 해도 되지만 경찰에 사전에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현수막과 피켓 등을 준비하고 앰프도 준비한다. 퍼포먼스도 할 거라면 그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선 취재요청서를 만들어서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발송하고 출력해서 기자회견장에서도 기자들에게 나눠준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기자회견에 못 온 기자들도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보도자료를 발송한다. 경험이 충분한 활동가라면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도 진행할 수 있다. 아, 물론 규모가 큰 기자회견은 할일이 많기 떄문에 혼자서는 준비할 수 없고,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은근히 필요한 역할이 여러 개여서 규모가 작은 기자회견일지라도 혼자 커버하긴 어렵다.


그렇게 때로는 주최하고 기획하고 준비한 기자회견이, 어떨 때는 사회를 보거나 발언자로 섭외되어 참여한 기자회견이 몇 개나 될까? 100개는 족히 넘겠지.


그나마 내 경우엔 사실 전쟁없는세상은 기자회견을 많이 하는 단체가 아니어서 기자회견 참여 횟수가 아주 많지는 않다. 우리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언론의 주목도라는 것도 무한대는 아니어서 정말 중요한 일에만 기자회견을 하는 단체라는 인식을 주어야지, 모든 일에 다 기자회견 하는 단체라고 여겨져서는 정말 언론 보도가 필요할 때 기자회견을 잘 활용할 수 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꼭 필요한 기자회견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그건 경험이 말해주는 거 같다. 정량화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을 신뢰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때 고려해야 할 것들은 어느 정도는 정량화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언론에서 관심 가질 만한 이슈인지, 파급력이나 시급성이 큰 이슈인지, 기자회견을 주최하는 단체의 언론 노출 파워는 어느 정도인지, 이 이슈와 관련하여 언론에서 중요하게 여길 메시지가 있거나, 기사회 될 수 있는 인물이 있는지 등등. 퍼포먼스를 곁들인다면 사진 기자들이 많이 올 수도 있다. 물론 퍼포먼스가 별 볼일 없거나 비주얼적으로 특별하지 않다면 기자들은 오지 않는다. 이런 경험은 거저 쌓이는 건 아니고, 내 경우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았다. 기자가 한 명도 안 와서 내가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쓴 적도 있다.


생각난 김에 몇 개의 인상 깊었던 기자회견을 정리해보자.



가장 많은 기자들이 온 기자회견


기자회견의 목적은 언론 보도가 많이 되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기자회견에 기자들이 많이 와야 한다. 물론 요새는 연합뉴스나 뉴시스와 같은 통신사들이 와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면 다른 언론사들이 그 기사를 사서 자기네 기사로 내기도 하지만, 그러면 기사 개수는 많아도 결국 다 똑같은 기사만 반복이다. 그러니 신문, 방송 가리지 말고 다양한 언론사에서 직접 와야 다양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내가 했던 기자회견 중에 가장 많은 기자들이 참여했던 건 단연 2018년 헌법재판소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결정을 내린 날의 기자회견이다. 기자들을 세볼 정신은 없었지만 대충 봐도 50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헌법재판소 앞 좁은 인도가 가득 차서 차도까지 기자들이 삐져나갔다. 대체복무 도입을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쪽에서도 반대 집회를 하느라 십 수명이 와 있어서 더 정신이 없었다.


발언자를 사전에 정하기는 했지만, 사실 헌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결정을 내린 근거나 이유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준비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기자회견이었다. 나는 그 기자회견에서 사회였는데 이런 기자회견일수록 사회자의 순발력이 중요하다.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긴장은 이내 흥분으로 바뀌었다. 기자들이 많이 오기도 했고, 병역거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병역거부 운동 18년의 묵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싶었는지, 꽤 길게 기자회견을 했다. 우리 뒤에 기자회견이 하나 더 있었는데도 그냥 길게 했고, 다들 이해해줬다(고 생각한다). 준비해 간 멘트도 많았는데 즉석에서 기분에 따라 많은 멘트가 애드립으로 추가되었다.

20180628_헌재_병역거부_결정_기자회견 09 IMGP0917.JPG 이 사진 밖에도 꽤 많은 기자들이 있었다.



가장 변수가 많았던 기자회견


법원의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은 늘 두 가지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내 기억에 가장 변수가 많았던 기자회견은 법원의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이 아니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 당시 현역 경찰이 병역거부를 했는데, 그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이 지금껏 내가 경험한 가장 변수가 많은 기자회견이었다.


원래는 토요일 낮 2시에 종로 5가에 있는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그 자리에서 농성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병역거부자의 부모님이 기자회견 직전에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그 병역거부자를 데리고 가버렸다. 근처 커피숍에서 당사자와 부모님과 나를 포함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정의구현사제단 나승구 신부님이 본당 신부로 계신 신월동 성당에 다짜고짜 찾아갔다. 거기서 주말 동안 부모님을 설득했다. 부모님은 지금이라도 복귀하면 별일 없을 거라는 경찰간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우리가 보기엔 그건 거짓말이었다.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러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까지 와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와중에 우리의 위치가 언론에 노출되어 갑자기 형사들과 기자들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일요일에 있었다. 결국 드물게 일요일 오후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나는 그때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아르바이트 때문에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게 너무나 아쉬웠다.

8597547214_898bcccc8f_o.jpg 기자도 기자지만 지지자들이 농성장인 신월동 성당에 참 많이 왔었다. 병역거부 운동 역사상 이렇게 많은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자회견


가장 기억에 남는 기자회견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병역거부를 선언한 기자회견이었다. 당시 나는 듣보잡 단체의 듣보잡 활동가였기 때문에, 게다가 병역거부자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 년에 4~5명이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역거부 기자회견에 기자들이 많이 올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을 모아서 3명이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같이 했다.


지금은 통인동으로 이사 간 지 10년도 넘었지만 당시에는 참여연대가 안국역 근처에 있어서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많이 했다. 그러면 길 건너편 경찰서 기자실에 상주하는 기자들이 기자회견에 오기가 수월했다. 내 기자회견도 참여연대에서 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참석했는데, 사실 기자들은 소수였고 대다수가 성공회대 학생들이었다. 어느 교수가 과제처럼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보라고 했던 것이다. 그 기자회견 기사가 얼마나 났는지 기억은 안 난다. 아마도 많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니 큰 성공을 거둔 기자회견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병역거부를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자리였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기자회견이었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자회견인데 어떤 느낌만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고, 솔직히 말하면 디테일은 기억이 안 난다. 당시 그 기자회견을 보러 내 친구들, 대학 선후배들도 여럿 왔는데 지금은 누가 오고 누가 안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8596331085_ca993a337a_o.jpg 내가 만든 현수막 앞에서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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