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청와대가 청년비서관에 임명한 뒤 쏟아지는 비난을 보고 있자면 그가 만약 남성이었대도 이 정도로 비난이 일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가정법은 무의미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확실한 건 우리는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 '캡틴 마블'에서 주인공 캡틴 마블의 이 대사에 다들 열광했던 게 아닐까.
난 당신에게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어.
I don't have to prove anything to you.
꼭 여성들만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양심이 진실된 것인지를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양심의 자유는 헌법에서는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지만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에서는 병역거부자 스스로가 증명해야 할 무엇이다. 반면 병역거부자를 심문하는 검사와 판사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들은 과거에 사법시험을 통과했으니 증명을 거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특히 일부 검사들이 재판에서 보여주는 무식함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심문 역량 또한 수시로 증명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스스로 증명할 것을 요구할 수 없고, 판검사들은 법복을 입고 있는 한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난민 심사를 받는 난민은 어떠한가. 대게의 난민 심사에서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받는 게 아니라 진짜 난민이라는 것, 이 사회에 결코 해가 되지 않을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이 진짜 피해자라는 것을, 성별정정을 원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자신의 성정체성을 증명해야 한다. 모든 경우에서 반대편의 사람들은 따로 증명할 것을 요구받지 않는다. 이렇게만 쓰고 보면 무언가를 증명하는 일이 마치 사회운동의 최전선에서만 일어나는 일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신입사원 지원서의 자기소개서와 그들이 받는 면접은 그들이 회사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면접관들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데(증명은커녕 심지어 자기소개를 안 하는 면접관들도 수두룩하다) 실제로는 그들 가운데 일부는, 어쩌면 다수는 사실은 심각하게 무능한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증명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수학에서 증명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수학의 증명이 모두가 합의한 공리에서 출발하는 반면 사회에서 증명은 그 기준을 세우는 사람들과 기준에 따라야만 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기준을 세우고, 힘이 없는 이들은 그들이 세운 기준에 맞게 자신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기만 한다. 여성은 남성문화와 가부장제가 만든 사회의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고, 노동자는 자본가가 만든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백인들이 세운 기준으로 평가받고,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장이 만든 기준에서 벗어나면 쫓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행동은 증명을 요구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다. 다만 권력의 입맛에 맞게 수립된 기준에 따라 증명할 것을 거부하는 행동은 대화와 토론, 특히 설득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이 둘을 헷갈린다. 그래서 기준을 만들 힘을 가진 권력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대화하고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난 당신에게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우리가 증명할 것을 거부하는 것은, 저들의 기준에 맞춰 내 존재 자체를 증명할 필요성을 없기 때문이지, 내가 늘 옳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내 주장을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것을 멈춰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이미 내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인데, 왜 내가 저들이 만든 기준-착하고, 성실하고, 폭력적인 게임도 안 하고, 전쟁 영화도 안 보고, 이런 기준에 나를 맞춰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나는 평화활동가인 병역거부자로서 내가 왜 군대를 거부하는지 설명하고, 평화와 군대에 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의견이 다르다면 계속 대화하며 설득해야 한다. 물론 때로는 내가 대화하고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권력자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신봉하며 나에게 증명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설득해야 하는 대상인 동시에,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사회 권력 시스템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그 경우에도 계속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증명을 거부하면서도 충분히 대화와 설득을 이어갈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 병역거부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그래서 내 양심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진짜 병역거부자인지 말하는 대신 강한 군대가 평화를 지키는 것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다양한 논거와 예시를 들어 그를 설득하겠다. 물론 설득이 실패할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게 활동가로서 내 일이다. 아웃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타석에 들어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야구 선수의 일인 것과 마찬가지다. 증명을 거부하며 대화와 설득을 이어가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140km가 넘는 고속 슬라이더를 때려 안타로 만드는 일처럼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어렵지만 계속 시도해야 하는 일이다. 만약 활동가들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을 멈춘다면 사회의 변화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존재를 증명할 것을 강요하는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우리 의견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 우리의 뜻에 동감하며 함께 앞장서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힘도 더욱 커질 것이다.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리 옆에 함께 서거나 함께 나서 줄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일을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