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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버티는 방법, 뚜벅뚜벅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GV 이후 단상

by 이용석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 개봉 첫 주차 GV가 모두 끝났다. 나는 다음 주 주말에는 다른 일정이 잡혀있으니 극장 GV에 참석하는 것은 첫 주차면서 마지막일 수도 있다. 금, 토, 일 세 번의 GV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이자 기억에 남는 질문은 세월과 시간에 대한 질문이다.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촬영을 계속 해올 수 있었는지, 그 세월 동안 어떻게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 지치거나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는지 묻는 질문들. 사람마다 영화를 재밌게 보는 포인트가 다르지만,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하는 지점은 확실히 18년이라는 세월인 거 같았다. 긴 호흡으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어려운 시대,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해 활동을 이어온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활동가들 옆에서 꾸준히 기록해온 그 세월의 무게에 관객들이 반응하는 게 아닐까. 질문을 거듭 받다 보니 대답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글로 써보기로 했다.


비장한 표정 대신 즐거운 마음, 사명감 대신 책임감


18년이라는 세월이니 희로애락이 왜 없었겠나. 그렇지만 지긋지긋하거나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다. 실제 그만둔 적은 있지만 그때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엄청나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을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없었다. 물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었고, 감옥에 가는 당사자들을 생각하면 사뭇 진지해져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그냥 이 활동이 재밌고, 다행히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 변화를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사실에 뿌듯했고, 각종 상을 받으면서 인정욕구가 채워지는 일에 기뻐했다.

만약 우리가 대단한 사명감으로 병역거부운동을 했다면 이렇게 오래 이어오지 못했을 거다.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높은 에너지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병역거부 운동은 우리에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활동'이었다. 대체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리듬으로 활동을 기획했다. 스스로를 갈아 넣지 않았다. 최저임금 받으면서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것은 온당치 않다. 내 경우에는 활동과 상관없는, 일과 상관없는 취미나 관계를 꼭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활동가는 나에게 중요한 정체성이지만, 활동가를 잘하기 위해서라도 활동가가 아닌 나를 잘 챙겨야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명감은 없었지만 책임감은 있었다. 특히 세월을 거듭해오면서 전쟁없는세상이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을 대표하는 단체가 되면서는 이 운동에 대한 책임감을, 그 무게를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사명감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그리고 우리는 늘 함께였다. 형식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함께였다. 영화의 주인공인 오리와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 밖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인 여옥이나 다른 친구들도 18년 동안 병역거부운동만 하지는 않았다. 오리는 중간에 영국에 가서 공부하고 활동하다 왔고, 나는 한 5년 출판사에 다녔다. 여옥이 또한 쉬다가 다시 활동하다를 반복했다. 누군가 쉴 때 다른 사람들이 활동을 이어갔고, 그 사람이 잠시 다른 일을 할 때는 나머지 사람들이 이어갔다. 함께였기 때문에 우리는 개개인이 병역거부운동에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이런 시간은 활동가 개인에게 재충전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통찰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여럿이 함께 활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오리가 전없세를 가리켜 '집단지도체제'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완벽하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맥락은 맞는 말이라과 생각한다. 구성원 모두가 병역거부운동에 똑같은 발언력과 정보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누가 이를 독점하는 구조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전쟁없는세상을 떠올리면 오리는 가장 먼저 생각하고, 다른 이는 여옥이를 떠올리고, 혹은 이용석을,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단체. 누구 한 사람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은 조직, 누구 한 사람의 독단에 휘둘리지 않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18년 동안 건강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운이 작용했다. 전쟁없는세상을 함께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욕이 없었다. 우리 중에도 (나를 포함해서) 관종은 있었지만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심은 없었다. 초기에 이런 사람들이 모인 것은 정말로 운이다. 물론 운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권력을 견제하고 나누기 위해 노력한 것도 중요하다. 그 노력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없는세상이 여성 리더십과 페미니즘에 기반해 운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성 리더십과 페미니즘


병역거부자들이 남자라서 병역거부운동을 남성의 얼굴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한국 병역거부운동을 이끌어온 리더들은 여성이었다. 지금은 내가 코디네이터를 맞고 있지만 그전에 여옥이가, 여옥이 전에는 오리가 병역거부운동을 이끌어온 리더였다. 남성 병역거부자들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면서 공백이 생기기도 하고, 출소한 이후에는 꼭 병역거부운동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났다.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다녀오고, 자기 삶을 찾아 떠나갈 때 병역거부운동의 중심에서 운동을 기획하고 조직하고 실행해온 이들은 여성활동가들이었다.

병역거부운동이 여성 리더십으로 유지되었다는 뜻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여성이 리더였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병역거부운동의 중요한 철학이자 운영방식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김일란 감독은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다큐를 만드는 일에 대해 "지금 여기서 누가 소외받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라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한 명에게 권력과 정보와 영광이 집중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페미니즘을 주요 운영 원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병역거부운동은 태생적으로 소수의 남성 병역거부자들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그들이 운동의 대표성을 띠기가 쉽다. 왜 아니겠나. 감옥 가는 일은 꽤나 큰 일이고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각인되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권력을 끊임없이 나누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운동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수의 사람이 권력과 정보와 명예를 독점했다면, 우리는 18년을 이어오기 전에 고꾸라지거나, 겨우겨우 유지되었더라도 대체복무 도입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손희정 영화평론가, 나동혁 우리동네 나무그늘 협동조합 이사장이 각각 사회를 봤다. 두 번째 GV 때는 오리와 재성이까지 함께 했다


이렇게 우리는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냥 살아온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대단한 일을 하려 했다면, 대단한 사람이 되려 했다면 이렇게 길게 오지 못했을지 모른다. 운도 좋았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배움이 된 것은 정말이지 운과 노력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8년을 지나고 나니 어렴풋이 알겠다. 우리는 또 여러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고,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을 때도 있겠지. 조금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하겠지. 그래도 천천히 우리의 속도로, 우리의 호흡으로, 우리의 리듬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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