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잊기 전에 기록하자
광주여고 1학년 방과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평화는 처음이라》저자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했다. 10명의 학생이 참여했는데, 끝나고 선생님을 통해 받은 학생들의 후기를 보니 질문을 던져주고 소그룹으로 토론해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은 것 같더라. 내가 던진 질문은 두 개였는데, 양심과 선택이라는 딜레마를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1. 1980년 5월 광주에서 나는 시민군의 일원이다. 오늘 밤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며 시민군들에게 총을 나눠줬다. 그런데 나는 평화주의자고 따라서 평소 총을 들기를 거부한 병역거부자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것인가?
2. 어슐러 르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오멜라스는 물질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아무튼 모든 것이 완벽한 유토피아다. 그런데 이 오멜라스의 풍요는 조건이 있는데 한 소녀가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그 조건이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은 그 소녀를 봐야 하는데. 이때 소녀에게 말을 걸거나 소녀를 지하실에서 데리고 나오면 오멜라스가 누리는 모든 풍요는 무너진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것인가?
1번 질문은 의외로 싱겁게 대부분의 학생이 총을 들겠다고 결론 내렸다. 광주 지역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했거나,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2번은 좀 갈렸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려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이 질문들을 통해서 군사안보가 강요하는 현실주의가 어떤 도덕이나 양심과 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후기를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해 보인다.
그런데 다음 날 광주에서 하루 더 머물며 놀면서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전일빌딩 내부 전시를 보고, 미얀마 광주 연대 활동에 대한 전시를 보고, 광주여고에 초대해준 김영주 선생님 글을 읽은 까닭인 거 같다. 사실 나는 병역거부가 전쟁에 저항하는 직접행동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이게 너무 양심의 자유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좀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는데, 아래처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양심의 자유가 평화를 위한 실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음번에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특히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병역거부를 주제로 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 해보고 싶다.
1부 양심에 대하여
1. 소그룹 토론: 계엄군의 폭력을 목격하고 총을 들 수밖에 없던 시민군의 양심과 감옥까지 감수하면서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2. '양심'의 법적인 의미와 사회적 의미에 대한 짧은 브리핑
3. 소그룹 토론: 학생들 일상에서 양심을 감지하거나 발현하는 순간 찾아보기
4. 3번 소그룹 토론의 결과를 바탕으로 양심의 특징이나 속성 발견하기
-양심은 민주주의 국가가 지켜야 하는 핵심적인 가치
-양심은 본디 무르고 흔들리는 것.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 함
-양심은 원래 보편적이고 지배적인 질서나 생각과 배치될 때 발현됨
-그렇기 때문에 양심을 따르는 일을 보통 무언가를 거부하는 일로 표현되기도 함
-양심을 지키는 일은 결국 개인의 희생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함
2부 양심의 자유와 평화
5. 소그룹 토론: 국가의 잘못에 개인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인의 책임,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한국인의 책임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독일인의 책임에 대한 프리모 레비의 말 소개: 알려고 하지 않고 모른 척하고 싶어서 몰랐던 고의적인 태만함이 전쟁을 유지시켰다.
6. 전 세계 전쟁에 한국의 좌표 브리핑: 세계 10위권의 무기 수출 국가, 분쟁지역에서 한국산 무기 쓰임
7. 다양한 양심적 전쟁 거부 행동 소개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및 태업, 교사들과 학생들의 동맹휴업 등등 사례 소개
8. 소그룹 토론: 나는 과연 한국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한다면 어떤 것을? 그때 내가 희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