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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518, 병역거부 그리고 평화를 위한 선택

아이디어는 잊기 전에 기록하자

by 이용석

광주여고 1학년 방과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평화는 처음이라》저자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했다. 10명의 학생이 참여했는데, 끝나고 선생님을 통해 받은 학생들의 후기를 보니 질문을 던져주고 소그룹으로 토론해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은 것 같더라. 내가 던진 질문은 두 개였는데, 양심과 선택이라는 딜레마를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1. 1980년 5월 광주에서 나는 시민군의 일원이다. 오늘 밤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며 시민군들에게 총을 나눠줬다. 그런데 나는 평화주의자고 따라서 평소 총을 들기를 거부한 병역거부자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것인가?


2. 어슐러 르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오멜라스는 물질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아무튼 모든 것이 완벽한 유토피아다. 그런데 이 오멜라스의 풍요는 조건이 있는데 한 소녀가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그 조건이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은 그 소녀를 봐야 하는데. 이때 소녀에게 말을 걸거나 소녀를 지하실에서 데리고 나오면 오멜라스가 누리는 모든 풍요는 무너진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것인가?


1번 질문은 의외로 싱겁게 대부분의 학생이 총을 들겠다고 결론 내렸다. 광주 지역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했거나,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2번은 좀 갈렸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려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이 질문들을 통해서 군사안보가 강요하는 현실주의가 어떤 도덕이나 양심과 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후기를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해 보인다.


그런데 다음 날 광주에서 하루 더 머물며 놀면서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전일빌딩 내부 전시를 보고, 미얀마 광주 연대 활동에 대한 전시를 보고, 광주여고에 초대해준 김영주 선생님 글을 읽은 까닭인 거 같다. 사실 나는 병역거부가 전쟁에 저항하는 직접행동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이게 너무 양심의 자유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좀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는데, 아래처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양심의 자유가 평화를 위한 실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음번에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특히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병역거부를 주제로 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 해보고 싶다.



*프로그램 아이디어


1부 양심에 대하여


1. 소그룹 토론: 계엄군의 폭력을 목격하고 총을 들 수밖에 없던 시민군의 양심과 감옥까지 감수하면서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2. '양심'의 법적인 의미와 사회적 의미에 대한 짧은 브리핑

3. 소그룹 토론: 학생들 일상에서 양심을 감지하거나 발현하는 순간 찾아보기

4. 3번 소그룹 토론의 결과를 바탕으로 양심의 특징이나 속성 발견하기

-양심은 민주주의 국가가 지켜야 하는 핵심적인 가치

-양심은 본디 무르고 흔들리는 것.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 함

-양심은 원래 보편적이고 지배적인 질서나 생각과 배치될 때 발현됨

-그렇기 때문에 양심을 따르는 일을 보통 무언가를 거부하는 일로 표현되기도 함

-양심을 지키는 일은 결국 개인의 희생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함


2부 양심의 자유와 평화


5. 소그룹 토론: 국가의 잘못에 개인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인의 책임,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한국인의 책임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독일인의 책임에 대한 프리모 레비의 말 소개: 알려고 하지 않고 모른 척하고 싶어서 몰랐던 고의적인 태만함이 전쟁을 유지시켰다.

6. 전 세계 전쟁에 한국의 좌표 브리핑: 세계 10위권의 무기 수출 국가, 분쟁지역에서 한국산 무기 쓰임

7. 다양한 양심적 전쟁 거부 행동 소개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및 태업, 교사들과 학생들의 동맹휴업 등등 사례 소개

8. 소그룹 토론: 나는 과연 한국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한다면 어떤 것을? 그때 내가 희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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