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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성취감과 사회적 인정

야호 나 상 받았다!

by 이용석

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으로 살긴 월급으로 살지. 그런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 만족스럽지가 않다. 단체마다 급여의 차이가 있겠지만 자기가 받는 월급에 만족하는 활동가는 거의 없을 거 같다. 제 아무리 큰돈 버는 것에 관심 없거나 청빈낙도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혼자서 먹고살 수는 있어도, 최저임금에서 왔다리갔다리 하는 수준의 월급이 만족스러운 벌이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월급 말고 다른 것에서 만족을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활동을 지속하기 힘들다. 나 같은 경우는 만족감을 채우는 것이 성취감과 사회적인 인정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 사회운동의 경우 목표 달성 난이도가 제법 높은 편이다. 어려운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존버는 필수니, 상황이 받쳐주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캠페인 처음 시작 때부터 목표 달성까지 보기가 어렵다. 물론 사회운동은 함께 달리기이자 이어달리기니, 내가 떠난 뒤 주자들이 목표지점을 통과하면 그 또한 보람찬 일이겠지만 그래도 직접 경험하느니만 못하다. 나는 운 좋게 대체복무제 도입이라는 성취감을 동료(이자 친구)들과 경험했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한 적도 있지만 운 좋게 다시 돌아와 있을 시점에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다. 이 성취감을 어떤 감정과 비교할 수 있을까? 진부한 비유지만, 사막을 일궈 나무를 심고 열매를 얻은 기분이랄까.


난이도가 높을수록 미션을 성공했을 때 성취감은 커진다. 사회운동의 높은 난이도는 다시 말하자면 성공했을 때 그만큼 큰 성취감을 준다는 말이다. 성취감은 곧 나에게는 재미를 뜻하기도 한다. 아무리 의미가 좋아도 재미가 없으면 그 일을 지속할 수는 없다. 나에겐 직업을 정할 때 재미도 월급만큼이나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니 큰 성취감에 뒤따르는 큰 재미는 내가 활동가로 살아가는 데 큰 활력소가 된다. 다시 한번 그 감정을, 그 경험을 해보고 싶다. 소소하고 작은 성취감뿐만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 정도의 큰 기쁨을 누리고 싶다. 물론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떠난다 해도 누군가는 이어 달리며 그 성취감을 맛볼 테니 그걸로도 충분하다. 나는 이미 한 번은 경험한 거니까.


또 하나, 인정. 존버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인정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버틸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인정은 필수적이고, 더 나아가 그 일을 잘 해낸다는 인정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다.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요새 대유행인 슬램덩크에서도 나온다.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어 기대를 받고 인정을 받는 경험이 강백호를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보여주는 작품 아닌가. 나는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 술 마시며 뒷담화 할 때 지나치게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들을 함께 흉보고는 하는데, 바로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한테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지 않을 것을 미워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싫은 내 모습을 타인에게 발견했을 때, 인정받고 싶은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그렇게나 흉을 보는 거겠지.


아무튼 보통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정은 결국 돈이다. 물론 돈과 인정이 정비례하지는 않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인정받는 만큼 돈을 못 버는 사람이 있을 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큰돈을 받지는 못한다. 그런데 사회운동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만큼 돈이 없는걸. 그래서 다른 방식의 인정이 중요하다. 동료들의 인정도 중요하고 사회적이고 공적인 인정도 중요하다. 동료들이나 친구들의 인정은 '내가 잘 해내고 있구나' 이런 마음을 갖게 해 준다면 사회적인 인정은 '내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들게 해 준다. 지금 당장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내가 하는 일로 세상에 기여한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리고 그 확신이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리 생각한다면, 당장의 어려움은 충분히 견딜만한 것이 된다.


구구절절 길게도 썼는데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나 상 받았다!


2019년에 서울시NPO지원센터 활력향연 프로그램에 참여해 <세상을 바꾸는 비폭력의 힘-평화운동이 궁금한 시민들을 위한 안내서>를 냈는데, 그 연구보고서가 사단법인 시민에서 주최하는 '제1회 현장지식X좋은연구'에 뽑혔다. 내 보고서를 비롯해 모두 10편의 글이 뽑혔다. 나는 이미 이 보고서를 토대로 단행본 <평화는 처음이라>를 썼기 때문에 3년 전에 쓴 보고서가 상을 받는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얼떨떨했다. 페이스북 보면 책 낸 저자들이 자기 책 무슨 상 받았다, 어디에 선정되었다, 추천도서에 뽑혔다, 이런 자랑들 하면 부러웠는데 이제 나도 자랑할 게 생겼다.


상 받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상패가 요즘에는 불이 들어오게도 만드나 보다. 뭐 2023년이니 이 정도로 신기해하면 안 되겠지. 상금도 받아서 좋다. 사실 상금 받기 전에 이미 전없세 회의 끝나고 기분 내며 맛난 거 사 먹었다. 연구보고서는 내가 썼지만, 내 노력도 물론 많이 들어갔지만, 그래도 내가 평화운동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건 전없세 동료들 덕이고 연구보고서에 들어간 생각이나 주장이 온전히 나 혼자서 생각해 낸 것이 아니지 않은가.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온 생각이니 상 받은 돈으로 맛난 거 사야만 했다.


좋은 연구라니, 게다가 현장지식이라니. 이거 너무 멋져 보이는 단어들이잖아.

확실히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평화운동 하고, 글 쓰고, 이런 게 헛일이 아니라고 인정받은 느낌이다.



표지입체.jpg 상 받은 연구보고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사 보시면 됩니다.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더 풍성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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