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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28. 2021

대체복무 시대에 병역거부가 평화운동이 되려면

       

2001년 오태양이 병역거부 선언을 한 이후로 20년이 지났다. 그 20년 동안 병역거부자들의 면면이 다양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병역거부를 했는데 갈수록 흔히 말하는 운동권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병역거부를 하게 되었다. 병역거부를 하는 이유도 다양해졌다. 모든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는 병역거부자부터 특정 전쟁과 폭력에만 반대하는 병역거부자, 심지어 특정 전쟁과 폭력은 옹호하는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어떤 병역거부자들은 현재의 대체복무 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비폭력주의자거나 평화활동가는 아니다.     

 

전쟁없는세상은 한국에서 대표적인 병역거부운동 단체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은 대부분 전쟁없는세상에서 상담과 지원을 받았지만 이조차도 달라지고 있다. 출소한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감옥에서 여호와의증인이 아니면서 전쟁없는세상과 일면식도 없는 병역거부자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굳이 전쟁없는세상을 직접 찾아오지 않더라도 인터넷 상에서 병역거부에 필요한 정보를 이제는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병역거부의 이유가 다양해지면서 더 이상 전쟁없는세상은 모든 병역거부자의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병역거부자를 지지하고 그들의 양심을 존중하지만 전쟁없는세상이 지향하는 병역거부운동의 목표는 명확하다. 지금 당장 전쟁을 중단시키거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군사주의를 약화시키는 것. 병역거부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고 수단이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인권적인 측면에서는 큰 성과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도 도입이 그 자체로 군사주의의 약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없는세상의 병역거부운동이 대체복무제 도입에서 멈추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당장 대체복무제가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와 군사안보 이데올로기를 약화시키는데 기여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의 병역거부운동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앞선 장에서 말했듯이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대체복무제 도입이 반군사주의 운동의 약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앞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나라의 평화활동가들의 고민은 ‘더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가는 대신 대체복무를 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지만, 대체복무의 문이 넓어질수록 병역거부는 수많은 군역 중 하나로 기능할 뿐 전쟁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며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에 연대했던 안드레아스 스펙(전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활동가)은 독일의 대체복무제 도입은 “(반군사주의의 관점에서) 아무런 정치적 성과도 얻지 못했다(《병역거부:변화를 위한 안내서》 204쪽)”고 혹평한다. 독일의 경우 2011년에 징병제를 중단했는데 해마다 10만 명이 넘는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는 징병제 중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오히려 대체복무의 사회적 효용성 때문에 징병제의 연장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한다.  병역거부 과정에서 심사받는 절차 대신 단순 신청으로 바뀌면서 병역거부가 대중화되었고, 대체복무는 민간사회서비스처럼 인식되면서 병역거부라는 행위가 탈정치화되었다는 것이다.      


대체복무제도의 모범 사례로 한국 사회에 자주 소개되는 독일의 사례가 반군사주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무척 놀랐지만, 어떤 맥락인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독일과는 다르다. 독일은 제국주의 국가였고 한국은 식민지배를 겪었다. 분단 이후에도 독일과 다르게 한국은 전면전을 경험했고, 통일된 독일과는 다르게 한국은 여전히 분단된 상황이고 심지어 전쟁도 법적으로는 온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다. 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지킨다는 생각이 훨씬 강한 사회인만큼 대체복무제 도입이 사회의 군사주의를 약화시키는 데 기본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병역거부라는 행위 자체가 갖는 사회적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병역거부가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시민불복종, 즉 감옥에 갔기 때문이다. 해마다 수백 명의 젊은이가 감옥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병역거부는 이미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이제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어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질 않는다. 현 대체복무제가 여러 측면에서 인권침해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전과자로 만들지 않으니 병역거부자들의 피해은 크게 줄어들었고, 그와 함께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회적인 인식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들도 탈정치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체복무라는 길이 열렸으니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정치적인 입장이 확고하지 않은 사람들도 병역거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사회의 진보이지만, 병역거부의 사회적 의미나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병역거부운동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병역거부 운동이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에도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이 필요할까?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이러한 점을 적극 고민하기 시작했다. 병역거부운동은 누구와 교차할 것인가? 어떻게 교차할 것인가? 2020년과 2021년 병역거부의 날 행사는 이런 고민에서 기획된 것이다. ‘그런 난민, 트랜스젠더, 병역거부자는 없다’는 제목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한 2020년의 행사는 난민과 트랜스 젠더들이 각각 난민 심사와 성별정정 심사 과정에서 겪는 경험이나 어려움이 병역거부자들이 재판에서 겪는 일들과 만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가 소수자들의 자격을 심사한다면서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는 것의 문제점, 그리고 이렇게 강화된 정상성 이데올로기가 국가 기관을 통해 어떻게 소수자들을 억압하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2021년 행사는 ‘한국을 떠난, 한국으로 떠나온, 한국에 남아있는 병역거부자’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는데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한 한국인, 내전을 피해서 한국에 온 소년병 병역거부자 난민, 그리고 한국의 여성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병역거부 이슈와 난민 이슈의 교차점을 모색했다. 병역거부와 난민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전쟁이었다. 이 행사들의 경험은 분명 군사주의가 굉장히 복잡하고 촘촘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군사주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 국가주의, 자본주의가 각각 그리고 서로 얽히며 군사주의와 어떻게 협력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 난민, 트랜스 젠더, 병역거부자는 없다'에서 상영한 콩트 <당신과 함께> 촬영 장면. 난민 심사,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심사, 병역거부자 재판에 대한 풍자극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깨달음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우리가 찾은 것은 우리가 가야 할 막연한 방향이지, 정확한 목적지가 아니다. 안 그래도 늘 뜬 구름만 잡는 운동이라는 오해를 사고는 하는 평화운동인데, 모호한 방향성만으로는 실질적인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 당장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대체복무제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일, 병역거부운동의 성과로 도입된 대체복무제가 한국사회에 잘 안착하도록 감시하고 지켜보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체복무제가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된다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병역거부를 결심하는 상황이 된다면, 병역거부가 군사주의와 전쟁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으로 남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가져야 할까? 다시 말해 여전히 병역거부가 한국사회의 군사주의를 약화시키고 군사안보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실천이 되려면, 그것이 한 개인이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목소리가 되고 사회변화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답은 모르지만 내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질문 목록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좋은 답은 결국 좋은 질문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병역거부의 질문들》(가제) 마지막 글입니다. 물론 책 원고로 만드는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되거나 빠지는 내용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매거진에 올리고자 한 글은 다 올렸습니다. 책 나오고 나서 출간 후기 같은 것들을 추가로 쓸 수도 있겠지만요.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책을 과연 누가 얼마나 읽어줄까 싶지만 읽는 분들에게는 좋은 독서가 되고 좋은 사유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책으로 엮기 위해 남은 과정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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