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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24. 2021

참아야만 하는 존재의 무거움

영향력과 책임감

사회운동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혹은 사회가 외면한 사람들의 권리와 목소리, 사회적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사회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목소리를 드러내고, 그로부터 권리를 확장하고, 마침내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보편성을 획득 방법은 다를 수 있는데 크게 보면 두 가지다. 기존의 보편 질서를 해체하지 않은 채 그 질서에 편입되는 방식일 때도 있고, 기존의 질서를 허물어버려 소외와 차별을 제거하는 방식일 때도 있다. 어느 방식이든 성공한 사회운동은 외면당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가치와 권리가 사회의 보편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함께해나간다. 사회운동 초창기에는 캠페인을 위한 자원이 부족한 것, 대표적으로 돈이 없거나 활동할 사람이 없는 것이 큰 문제다. 운동 초기, 캠페인 이슈가 아직 사회에서 외면받는 상황일 때 이런 문제는 생각보다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 그러다가 활동가들의 노력과 운이 더해져 운동이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될 때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병역거부 운동의 경우를 보자면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이 그 변곡점의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병역거부는 법을 어기는 범죄행위였다. 병역거부자들 스스로는 아무리 떳떳하고 당당해도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은 전과자일 뿐이었다. 병역거부 운동은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와 각각 관계를 맺으며 캠페인을 펼쳐왔는데 가끔씩 부분적으로 협력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우리는 문제제기하고 국가는 답변(우리가 보기에는 핑계)을 하는 관계였다. 국가 시스템 바깥에서 시스템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병역거부가 법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상황은 확 바뀌었다. 우리는 예전과 똑같이 국회의원을 만나고, 국방부를 만나고, 병무청을 만나긴 했지만 이야기하는 내용이 달라졌고, 이야기하는 우리의 위상이 달라져 있었다.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을 만들고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쟁없는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전부 관철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방부나 국회는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 심사위원 또한 우리가 추천한 분들이 대거 선정되었다. 여전히 정부 부처들에 날 선 비판을 하지만 비판만 우리는 완벽하게 시스템의 외부에 위치한 존재가 아니라 시스템에 한발 걸친 자리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이는 실은 운동의 성과이고 많은 사회 운동이 국가의 시스템에 날 선 비판을 하면서도 시스템 자체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회가 변화한다. 하지만 새로운 국면에서 새롭게 마주한 문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였다.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활동가들이 우선적으로 고민한 지점은 시스템에 개입하면서 운동의 가치가 후퇴하는 일이었다. 사회운동이 운동의 성과로 국가 시스템과 협력을 넓혀가는 건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운동의 가치는 심한 도전을 받게 된다. 병역거부 운동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를 보면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난 이후에 병역거부 운동이 목표로 했던 반군사주의운동은 오히려 쇠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대체복무제도의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했던 사례가 독일 대체복무제인데,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의 활동가 안드레아스 스펙은 "반군사주의 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완벽히 실패한 운동"이라고 말할 정도다. 독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에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이후 병역거부는 군대를 가는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진 반면, 시민불복종이라든지 평화운동의 의미와는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막상 상황을 겪어보니 문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지점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맥락에서 생겨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전에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갈지언정 그 양심의 진위를 의심받지 않았다. 병역거부를 싫어하고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을 의심하거나 가짜 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병역거부자라고 욕을 먹었지만, 가짜 병역거부자라는 욕을 먹지는 않았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국가가 병역거부자를 심사하게 되면서 ‘가짜 양심’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감옥 갈 생각으로 병역거부를 했던 병역거부자들조차 양심의 진위를 의심받았다. 병역거부자들은 전과자가 되지 않을 기회를 부여받는 대신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양심을 의심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내용이 공격받을 거라는 점은 충분히 생각하고 있었다. 병역거부가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양심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의견으로 존중받는 정도일 뿐이지, 총칼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은 여전히 사회에서는 미약한 목소리일 뿐이니. 그런데 양심의 내용이 아니라, 양심의 진위 여부로 공격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솔직히 전혀 하지 못했다. 병역거부자들은 힘들어했고, 활동가들은 혼란스러웠다. 제도가 도입되고 사회가 바뀌는 과도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일 수도 있겠지만,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받는 병역거부자들도 앞으로 겪을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문제들은, 나와 내 동료 활동가들의 결정과 선택이 병역거부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발생했다. 예전에는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말 한마디가 수백 명 병역거부자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우리가 져야 하는 책임도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늘 갈등할 수밖에 없다. 운동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때로는 당사자들의 추가적인 희생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선택이든 내게 그러한 권한과 권리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반문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체복무 기간이 군복무보다 1.5배(27개월) 이상으로 길면 인권침해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런데 정부는 국방부는 군복무 기간의 2배(36개월)를 주장했고, 그러자 절충안으로 1.77배(30개월)로 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그동안 주장해온 원칙을 지키며 1.77배 절충안을 거부해야 하는가? 병역거부 당사자들, 특히 한국에서 대다수의 병역거부자인 여호와의증인들은 1.77배의 기간이어도 상관없다고 한다면? 원칙을 고수하다가 협상이 결렬되어 국방부의 주장대로 되면 오히려 손해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껏 해온 원칙과 주장을 마치 없던 일처럼 무시해도 되나? 혹은 대체복무제도의 산적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할지, 어떤 문제는 양보할 수 없고 어떤 문제는 다른 더 중요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뒤로 미룰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비판을 할 것이다. 말로 비판하기는 쉽지만 실제 그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도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할 상황들이 늘어갔다.       


작년, 대체역심사위를 방문해 위원장과 사무국장 면담을 마치고 찍은 사진. 다들 착한 척 하느라 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았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단협 타결을 눈앞에 둔 노동조합의 활동가들, 각종 인권 관련 법률 제정 운동을 해오며 입법의 마지막 고비만을 남기고 법안 통과라는 현실과 통과시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조항 사이에 놓여 있는 인권활동가들, 피해 보상을 주장하며 기업이나 국가와 오랜 기간 싸우다가 요구 조건의 상당 부분이 수용되지만 어떤 요구 조건들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당사자 운동 활동가들. 모두가 현실과 운동의 가치 사이에서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고민하고, 운동의 방향과 의미를 고민하고, 결정이 영향을 끼칠 당사자들의 삶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세상 일 중에 정답이 딱 떨어지는 일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는 더더욱 정답이랄 게 없는 문제다. 오랫동안 병역거부운동을 펼쳐온 전쟁없는세상은 그 세월의 무게만큼 영향력과 책임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나는 늘 병역거부 이슈에 대해 전쟁없는세상의 목소리가, 활동가들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커지는 상황을 바라 왔는데, 막상 그리되고 보니 생각보다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아야만 하는 존재의 무거움 혹은 책임감을 이겨내는 것도 내 월급에 포함된 것이겠지.



이 글은 제 브런치에 실린 글 '일정한 성취를 거둔 뒤 사회운동이 겪는 난제에 대하여'에서 많은 문장과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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