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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r 16. 2020

5년 뒤에도 '모모' 같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피스모모 활동가 영철 인터뷰


폭력을 줄여나가는 데 기여하는 사람


뭉치와 미카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대단한 사람들이더라고요.(수줍게 웃음) 뭉치님은 17살 때부터 어렴풋이 활동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미카도 교육이 사회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자각하고 그때부터 교육을 해야겠다 생각하셨더라고요. 두 분 다 과거에 상상한 것을 현재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영철은 안 대단해요?  

 

저요? 저도 물론 대단하죠. 저는 활동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그리 오래 되진 않았어요. 학부 때 미디어를 전공했는데 미디어에서 소수자나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그게 어떤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관심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어렴풋이 ‘영화를 만들든, 광고를 만들든, 글을 쓰든, 그러한 폭력을 줄여나가는 데 기여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활동가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공부를 하다보니 특히 영화나 광고 쪽은 재능의 영역이더라고요. 하하하. 언론이나 미디어 영역에서도 제가 잘 하는 게 분명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내 분야를 찾지 못했던 거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방향성은 크게는 달라지지 않을 거 같은데, 미디어를 업으로 삼기에는 제 능력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무엇을 하면 이런 가치가 세상에 구현되는 데 내가 기여할 수 있을까, 요목조목 알아보았는데 그때 알게 된 것이 활동가로서의 삶이었어요. 한 25살쯤이었어요.

 

그때 생각했던 ‘활동가’는 어떤 활동가였나요?


어렴풋이 교육활동가였던 거 같아요. 차별을 재생산해내는 기제가 미디어와 교육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서 ‘교육을 통해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교육 엔지오라고 하면 대부분 저소득층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교육을 상상하기 마련이고, 되게 드문드문 인권교육, 성평등 교육이 조금조금 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건 교육인데,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것밖에 상상이 안 되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되게 막연했던 거 같아요.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통일교육을 하는 곳이었어요. 그때 당시 저는 분단체제가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나 혹은 지켜려면 강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분단을 줄여가기 위한, 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가지 폭력을 줄여가기 위한 교육으로서 통일 교육을 생각했고, 그래서 통일교육으로 시작하게 된 거 같아요.  통일운동 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의아했어요.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영철은 분단과 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교육을 택했고 교육을 통해 평화를 만났다고 한다.


통일교육 하는 곳에서 활동하다가 피스모모로 이직을 한 건가요?

 

그런셈이죠. 지금 돌아보면 당시 통일 교육을 했지만, 저 스스로는 통일을 지향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지금 모모에서 이야기하는 탈분단, 어떤 단일한 결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분단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폭력을 줄여나가는 교육을, 통일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그런 인식론의 전환으로서 탈분단 교육을 했던 거 같아요. 그땐 제 안에 그 언어가 없었어요. 언어가 없다보니까 어렴풋이 분단이 인권침해를 야기하고 있는 거 같은데 ‘어떻게 인권침해가 되지?’ 라는 연결고리도 더 섬세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런 상태에서 모모를 알게 되면서 내가 인지하고 있는 분단의 문제를, 그리고 통일교육을 어떤 언어로 어떤 시각에서 해석해야 하는지 조금 더 채워갔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게 통일운동이나 통일교육이 아니구나, 그런 확신이 들어서 그만뒀어요.


그러고 나서 평화교육을 좀더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때는 이직을 한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모모로 인해서 새로운 눈이 트이게 되었고 그것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던 거 같아요. 평화교육 관련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모모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어요. 너무나 감사헤게도.   

 

모모의 제안에 대해서 튕겼어요? 한 번에 오케이 했어요?


저는 한 번에 오케이 했어요.(하하) 참 멋있는 곳이잖아요. 미카가 알기에는 일본에는 평화운동과 교육운동을 연결하는 팀이 없다고 그랬는데, 한국도 그렇잖아요. 평화단체들이 물론 일련의 사업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교육을 좀 더 주로 하고 있는 곳에서 평화와 관련된 이슈를 배움의 영역으로 들여온다든지, 현장과 꾸준히 연대를 한다든지 하는 곳은 없잖아요. 너무나 멋있고 대단한 곳인데 거기서 나에게 제안해주셔서 튕길 수 없었어요.

 


분단 해체와 퀴어 이슈를 연결하고 싶은 사람


모모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기대했던 건 뭐예요?

 

가장 처음에는 교육 진행자로서 성장이 가장 큰 욕구였어요.  제가 에너지를 얻고 ‘이 활동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구나’ 확신을 얻게 되는 순간들이 교육 현장인 거 같거든요. 그런 현장에서의 더 많은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진행자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조금 달라진 거 같아요. 제 안에 교육 진행자로서의 욕구가 가장 클 때는 제 자신을 교육활동가로 정체화했어요. 그러다보니 제 깊이가 깊지 않은 채로 평화 이슈에 대한 교육을 하게 되었는데, 하면 할수록 너무 부족한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이 교육운동이 아니라 평화운동이라는 게 점점점점 확실해지는 거 같아서… 제가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평화운동으로서의 교육이지만, ‘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평화활동가로서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알고 싶은 욕구가 지금은 더 큰 거 같아요.  

 

지금은 모모에서 교육연수팀에 있고 그러다보니 어떤 교육 현장이 있고, 어떤 참가자들이 있고, 어떤 맥락들이 있고, 각각의 현장에서는 어떤 평화 이슈가 있고 발견될 수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을 가장 많이 하게 되고, 물론 재미있어요. 그런데 가끔은… 하늬가 모모에서 군축 관련된 것을 맡아왔고, 그런 캠페인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역할을 많이 있었는데, 그런 역할을 내가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을 거 같고, 하기 위해서 어떤 역량을 쌓아야 할까, 이런 고민이 있는 거 같아요.

 

왜 지금은 못할 거 같아요?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요, 아직 제가 언어가 부족한 거 같아요.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요. 전쟁없는세상의 비폭력 트레이닝. 그것도 일종의 교육이지만 활동가들이 어떻게 캠페인일 잘 준비하고,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지 함께 연습하고 배워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저는 이따금 제가 온실 속 화초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교육에서 계속 현장과 연결되려고 하고 저 자신도 현장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어쨌든 내가 활동하는 주된 공간은 너무 안온한 공간, 이미 다 완성된 공간 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현장에서의 치열함을 담지 못하는 거 같아서, 그것만으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는 제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비슷한 감정을 갖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강정에 못 가면 미안해지는 거죠. 근데 저는 꼭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는 현장만 현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떤 면에서는 그런 현장이 더 쉬운 면도 있어요. 전선이 명확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직설적이잖아요. 하지만 교육 현장은 물리적 폭력으로부터는 안전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운 곳일 수도 있잖아요. 집회 때 우리를 막아서는 경찰한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주 복잡하지 않지만 교육 현장에 참여하는 다양한 분들과 이야기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으니까요. 이게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말씀해주신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좀 다른 측면도 있는 거 같아요. 결국에는 우리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거잖아요. 착한 언어, 따뜻한 언어, 좀 더 제너럴 한 언어로 소통하게 되는 때들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더 깊은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끝날 때의 아쉬움이 큰 거 같아요. 그게 안온하다고 느껴지는 이유 같아요. 안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덜 가치있다는 건 아녜요.어떤 면에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계속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죠.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거고, 그래서 더 현안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언어에 대해서도 더 공부하고 그러는 거 같아요.  


아덱스 저항행동 퍼블릭데이 캠페인 사진. 군축 관련 캠페인도 기획해보고 싶다는 영철.


 

더 담아내고 싶고, 더 노력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 캠페인 기획까지 해보고 싶은 특별한 주제가 있나요?

 

관심 있는 것은 분단 해체와 퀴어 이슈예요.  

 

두 가지를 따로 관심 갖는 거예요? 아니면 그 두 가지를 연결하는데 관심이 있는 거예요?

 

지금은 각각 따로 있는데, 연결해봐야겠죠. 페미니즘과 평화운동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런 논의가 막 진전된 상태는 아니잖아요. 제가 퀴어와 평화운동으로… (수줍은 웃음)

 

좀 더 끈끈하게 연결해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근데, 어떤 분단의 해체와 다르게 퀴어는 좀 더 일상적이고 사적 영역인 거 같고 아직은 제가 그것을 사회적 정치적 영역으로 발화하고 싶지 않은 거 같아요. 소소한 욕구거든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소소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잘 살고 싶어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요인에 대해서는 같이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야겠지만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은 욕구도 있어요. 되게 역설적이지만.  

 


잘 쉬고, 잘 활동하고 싶은 사람

 

활동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죠? 더 많이 알고, 더 잘하게 되고 싶은 욕구가 많은 거 같아요.

 

욕심만 많아요. 게을러서 노력은 안 하고. 하하하. 하고 싶은 거 열개면 그 중에서 한 두개는 하니까. 우선순위 미뤄진 건 앞으로 또 오겠죠. 근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영철이 만들어온 경로가 그런 거 같아요. 미디어에 관심을 가졌다가, 사회변화를 위해서 미디어가 아니라 교육운동에 관심을 갖고, 그러면서 부족한 것을 느끼고 평화활동가로 정체화해 가면서 직접행동이나 캠페인 기획 같은 것들을 하고 싶어 하고… 변화, 성장에 대한 욕구가 큰 거 같아 보였어요. 욕심이 많다는 건 칭찬이에요^^ 저도 그러고 싶거든요. 저도 욕심은 많은데 노력은 잘 안 하는 편이라서요.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해야하는 사람이라서요.  

 

활동가를 직업으로 고려한다면 잘 싸우고 성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잘 쉬고 노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충분한 이야기가 모아져야 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평화운동 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되게 편하게 생각하잖아요 좋은 일 착한일한다고. 사실 우리도 ‘회사 생활 전쟁 같이 한다’는 표현처럼 평화 단체들도 그 표현처럼 치열하게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쉼이나 관계맺음에 대해서는, 쉼을 주장하면 그게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모모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모모는 굉장히 쉼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근데 또 활동가로서 잘 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생각해봐야 하는 거 같아요.  

 

쉴 때, 놀 때 주로 뭐해요? 뭐 하고 놀아요?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옷을 사러 가거나, 클럽에 가요. 근데 그런 쉼의 방식이, 어쨌든 옷을 사거나 클럽에 가는 건 운동과는 다르게 제가 무언가를 했을 때, 소비함으로써, 술을 마심으로써, 춤을 춤으로써, 당장의 즉각적인 쾌락이 확인이 되고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쉼이잖아요. 그런 요소 때문에 쉼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도 활동가로서의 쉼은 어쨌든 그 쉼의 순간이 뭐랄까 선순환의 고리로서 쉼이 되어야 할 거 같거든요.


그런 거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요?

 

부담감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는 거 같아요. 즉각적인 쉼의 방식이, 저한테는 잘 맞고 좋아하지만 그게 선순환의 쉼인가, 확신은 안 드는 거 같아요.  

 

그 쉼이 활동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잖아요. 활동가들이 쉴때 약간 강박처럼 활동과 관련된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일상의 어떤 부분은 활동과 상관없는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부러 활동과 물리적 심리적 공간적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모든 쉼이 다 선순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마에게>만 보는 게 아니라 <어변져스>나 <킬빌>도 보는 거죠.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자극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가 거대 자본의 상품이지만 그 안에서 전복적인 요소를 찾아내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게 재밌어요. 영화든 책이든 마찬가지죠. 좋은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좋은 독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좋은 쉼, 나쁜 쉼이 있는 게 아니라 선순환의 고리를 좀 더 잘 찾아내봐야겠네요.  


모모 사무국에서 활동한 지 이제 1년이 넘었는데,  활동가로 사는 건 어떤 거 같아요?

 

꽤 만족스러워요. 첫번째로 계속 새로운 자극을 마주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 자극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미처 알지 못했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기도 하고. 만남에서 느껴지는 저 자신의  부족함이기도 하고.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자극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또 어떤 측면에서 만족하냐면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경계가 흐물흐물해지는 거 같아서 좋아요. 이 인터뷰 꼭지의 제목인 ‘직업으로서의 활동가’라는 게 리터럴한 의미는 이해가 가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삶으로서의 활동가'라는 게 저한테는 더 적합한 표현인 거 같아요.  



'모모' 같은 사람

 

모모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일은 어떤 거예요? 혹은 가장 기억하고 싶은 건 뭐예요?

 

갑자기 떠오른 것은 그런 거예요. 제가 맨 처음에 모모에 들어오게 되면서 주원이 퇴사를 했고, 곧 이어 하늬도 몸 상태 때문에 휴직 상태고, 지영도 휴직했다가 다시 연구원으로 오셨고, 정철, 가지, 미카, 펭펭이 오셨고, 작년 한해가 모모의 구성원 변동이 진짜 많았는데, 이 시기에 그 사람들을 어떻게 보내주는가, 어떻게 환영하는가,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또 어떻게 다시 연결되는가를 살펴보는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결국에는 활동이라는 게 내 옆에 있는 동료들과 같이 하는 거잖아요. 동료들의 개인적 욕구를 잘 챙기면서도 어떻게 연결되어서 운동을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환영의 방식, 그리고 헤어짐의 방식, 잠시 거리두기의 방식인 거 같아서. 그런 것들이 참 괜찮았던 거 같아요.   

 

‘관계 맺기’라고 키워드를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요?

 

네, 왜 그러냐면은, 제 성격이 되게 거시적으로 일반론적으로 바라보고 말하려는 편이에요.고치고 싶은 습관이예요. 그러다보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잘 챙기는 모모의 방식이 더 다가왔던 거 같아요.  

 

저는 영철도 되게 사람 잘 챙기고 관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거예요.  


5년 뒤의 영철은 어떤 모습일 거 같아요?

 

우선 지금도 사실 다 말하고 다니지만, 커밍아웃 게이, 오픈리 게이일 거 같은데, 그렇게 했을 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여전히 욕심 있는 연구자이자 활동가이고 싶어요. 근데 저는 연구자로서 욕심이 있는데, 실천하지 않고 있어요. 하하하.

 

저는 어떤 사람이고 싶냐면, 이따금 뜸이 저한테 영철이 참 ‘모모’ 같다고 이야기를 하곤 하거든요. 그냥 미하엘  엔데의 소설『모모』의 주인공 '모모'처럼 이야기 하다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답이 나온다고 할 때가 있어요. 어쨌든 저는 지금보다는 영향력이 있어지겠지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테고, 활동가로서도 연구자로서도 발전할테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도 모모 같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청와대 앞에서 열린 호르무즈 파병반대 기자회견에 참여한 영철




 

미카가 다음 인터뷰이로 영철을 지목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저 또한 영철의 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올 초, 호르무즈 파병 반대 기자회견을 청와대 앞에서 마치고 함께 불광까지 오면서 짧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다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철은 인터뷰 내내 사려깊고 신중하게 말을 골라가며 했습니다. 저의 주장이 들어간 질문들에 대해서는 자신 만의 속도로 질문에 공감하면서도 생각이 다른 점은 명확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상대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평화활동가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가려는 영철의 모습과 고민들이 저는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인터뷰 중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저로서는 최고의 칭찬이었습니다. 영철의 이야기는 제게 많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나름 평화운동을 오래 해왔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지만 어떤 종류의 책임감을 늘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영철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 또한 평화활동가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덧글: 제목에 쓰인 사진은 뮤지컬 연습을 하는 모습입니다. ‘어커먼비트라는 지구시민뮤지컬 공연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인터뷰  깜박하고 묻질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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