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주한미군 문제는 한국의 평화활동가나 사회운동가들에게는 익숙한 주제다. 나는 지금 '주한미군' 바로 뒤에 '문제'를 붙여 썼는데, 이렇게 '주한미군 문제'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연령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마다 미군과 얽힌 한국사회의 굵직한 이슈를 직간접적으로 들어봤거나 관련된 사회운동에 참여해 본 경험이 많다. 그런데 실제로는 나는 평택미군기지 주변 혹은 용산에 있던 미군기지 주변을 제외하곤 주한미군을 마주친 적도 거의 없다. 평택이나 용산에서도 집회나 시위 현장 혹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으로 그와 나 사이에 대화가 오가거나 어떤 형태의 관계가 가시적으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주한미군과 범죄를 붙여서 쓰는데 스스럼이 없다. 이 스스럼없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적어도 <동맹의 풍경>을 읽기 전까지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점이 많은 책이었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쇼버는 현재는 오슬로대학교 사회인류학과 교슈이며, 2007년부터 약 2년간 서울에 체류하고 그 이후에도 한국을 오가며 주한미군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혹은 내 동료 평화활동가들)와는 다른 위치에서 다른 눈으로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와 민족주의를 바라본다. 이렇게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사회에 대한 연구는 새로울 건 없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쇼버의 시선이 좀 더 독특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아무래도 그가 만나고 인터뷰한 대상들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물론 이 책에는 쇼버가 만난 다양한 직업, 계급의 한국시민들이 등장하지만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홍대 앞 아나키스트 성향의 펑크밴드 뮤지션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홍대라는 공간을 둘러싼 (미군과 한국 남성의) 남성성의 긴장 관계를 다루다 보니 당연한 측면도 있겠지만, 아나키스트 펑크 뮤지션 그룹의 계급적 문화적 위치가 한국사회 내부의 타자인 것도 쇼버의 시선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이것이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 박노자의 시선과는 다른 결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책이 주한미군에 대한 '인류학 보고서'라는 점도 중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은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다.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인식과, 미국의 이익에만 복무할 뿐이고 환경오염과 시민 대상 범죄를 저지르는 악한 집단이라는 인식. 이 책은 그러한 주한미군에 대한 양극단의 정치적 판단보다는 주한미군과 한국사회에 어떤 측면에서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이 포함된 시리즈 '메두사의 시선'의 엮은이기도 한 정희진은 해제에서 이 책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조선과 미국 병사들 간의 치열했던 백병전의 시대를 지나 첨단 기술전 시대인 당대의 한국 사회와 주한미군의 동학을 추적한 역작이다. 개인의 일상이 왜 국제적인 이슈인지, 국제정치와 로컬의 일상이 어떻게 조우하는지, 미국을 대타자(The Other)로 삼아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 한국의 남성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한국 사회의 극도로 불균등한 지역 격차와 남성의 성 문화는 어떤 관계인지, 기지촌이 성애화된 민족주의의 공간에서 어떻게 글로벌 성산업 시장의 메카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13쪽)
선과 악, 평면적인 판단이 아니라 입체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미군 병사들 개개인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나는 한 번도 미군을 개인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한미군의 범죄에서도,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에서도, 혹은 미국의 군사 전략 재편이라는 점에서도 주한미군은 그냥 주한미군이었다. 그 안에 개별적인 사람의 얼굴을 한 번도 상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내게는 충격이었는데, 병역거부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양심이기 때문이다. 조직이나 집단의 결정이 아니라, 조직이나 집단의 결정을 거부하는 개개인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 병역거부운동이고 그렇기 때문에 병역거부운동에서는 '개인'이라는 감각이 무척 중요한데 20년을 병역거부운동을 했다면서 주한미군을 바라볼 때 그 안에 다양한 양심을 가진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게, 내 인식의 한계를 들킨 것만 같았다.
'개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주한미군과 기지촌 여성의 관계 또한 제국의 군대와 착취당하고 피해당하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여성으로만 납작하게 분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개별적인 존재로서 미군 병사들에 주목했기 때문에 기지촌에서 일어나는 주한미군 병사와 기지촌 여성 사이에 상호적인 행위로써 협상과 갈등을 두루 다룬다. 주한미군도, 기지촌 여성들도 자국에서 모두 가난한 계층이기 때문에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군사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폭력을 탈정치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기지촌 여성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묘사하는 위험을 피하면서 군가주의를 다시금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적용"(156쪽)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주한미군 병사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이 책은 자연스럽게 주한미군이 한국사회와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미군부대와 기지촌, 혹은 (미군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부대 주변을 넘어서 홍대와 이태원까지 시야를 확장할 수 있다. 미군이 한국사회와 맺는 관계는 물론 군사화된 집단이니 지극히 군사화되어 있지만, 실은 그보다 더 복합적이다. 시대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미군 병사들이 만나는 한국 시민이 누구냐에 따라서-젠더, 계급, 직업, 정치적 자원의 유무에 따라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홍대와 이태원은 미군이 군사적 행위자로서만이 아니라 시민적, 문화적, 소비적 행위자로서 한국사회와 만나는 방식을, 서로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파악하기 가장 적합한 장소로 채택되었다. 각각의 공간이 한국사회 안에서 형성되어 온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 어떻게 주한미군이 개입하거나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흥미진진하다.
한편 여기서 홍대와 이태원은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인 동시에 한국사회가 주한미군과 조우하는 장소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처럼도 느껴진다. 각각의 지역과 장소가 가진 고유한 역사와 맥락성을 전제한다면 이 책과 비슷한 방식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인류학 보고서의 챕터를 채워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해제 말미에 정희진 선생님이 "이 책의 공간 개념이 '이태원과 홍대를 넘어' 확대 해석되기를 희망한다."(20쪽)고 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원서가 2016년에 나왔고 지금은 2023년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 담긴 주요한 연구는 2016년보다 앞선 시기에 이루어졌으니 지금과는 10년을 전후한 세월의 갭이 있다. 너무 빠르게 모든 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1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동네인 홍대와 이태원은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동네의 위상, 부동산의 가격, 분위기와 하위문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문화연구자는 아니니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내가 체감상 느끼는 것은 특히 홍대의 경우는 2010년대 초반까지의 분위기와 지금의 분위기는 심하게 다르다. 만약 나의 체감이 틀린 게 아니라면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어떤 지점들-홍대와 이태원에 대한 묘사는 지금과 사뭇 다르고, 그 공간을 매개로 살펴본 주한미군에 대한 분석들도 조금씩은 현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 1970년대 초반이었다면 주한미군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했을 것이다. 가왕 조용필이 미군부대 돌며 공연하는 것으로 음악생활을 시작했단 것만 보더라도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물론 그런 막대한 영향까지는 행사하지 못했을 것이고, 2020년대에 들어서는 더 이상 한국의 대중문화 시장이 주한미군으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기보다는 어떤 측면들에선 주한미군이 한국 대중문화산업이 전파되는 경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아쉬움들은 책의 결함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조금씩 달라진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아쉬움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저자가 주로 연구를 수행한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과, 혹은 책의 원서가 출간된 2016년과 비교하여 2023년 달라진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주한미군이라는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마주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