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 이 글은 '행복한 아침독서'에서 발행하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에 실린 서평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까? 혹은 중요한 등장인물만 수십 명인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질문들은 복잡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 대한 질문도 그렇다. 전쟁이 일어난 원인과 전쟁의 양상, 전쟁을 중단시킬 방법, 전쟁이 끝난 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다시 세울지, 어느 것 하나 단순한 문제가 없다. 나는 전쟁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모든 말을 믿지 않는다.
단순함의 폭력은 기실 군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군사주의는 철저하게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눈다. 아군과 적군, 승리와 패배. 아군의 승리는 정의이고 적군의 승리는 불의다. 전쟁을 일으킨 모든 정치인과 군인들의 말은 쉽고 명확하고 명쾌하다. 적이 누구인지,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무엇이 정의인지 그들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아리아인의 승리를 위해(히틀러), 대량살상무기를 감춘 독재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조지 부시), 우크라이나의 신나치 세력을 없애기 위해(푸틴) 그들은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은 지도 위의 국경선이 나뉘듯 그렇게 단순하고 정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모순적인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또한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사람들도,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도 복잡하고 다양하기는 마찬가지다. 양국 모두에 신나치 세력이 있고, 전쟁을 바라는 사람과 전쟁에 저항하는 사람이 공존해 있다.
평화는 정의가 승리하고 불의가 패배하는 일이 아니라, 정의와 불의 혹은 승리와 패배로 나뉜 이분법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전쟁은 하나의 서사만을 인정한다. 불의한 세력을 무찌르고 정의가 승리하는 이야기. 하지만 하나의 전쟁에서 당연하게도 여러 서사가 존재한다. 키이우에 사는 사람과 크림반도에 사는 사람, 모스크바에 사는 사람에게 전쟁은 각기 다른 모습일 것이다. 사는 곳에 더해 그가 러시아인인지 우크라이나인인지에 따라서도, 혹은 그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성소수자인지에 따라 전쟁에 대한 서사는 몇 겹으로 늘어날 수 있다. 전쟁이 강요하는 한 가지의 시선, 한 가지의 서사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겹의 서사가 필요하다.
전쟁에 대한 책은, 다시 말해 평화를 이야기하는 책은 독자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는 게 아니라 복잡한 질문을 남겨야 한다. 『전쟁이 나고 말았다』는 전쟁과 군사주의가 만든 이분법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책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기자 K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예술가 D의 일상을 일주일씩 대비해서 보여준다. 둘의 생각과 입장, 태도와 행동은 복잡하고 미묘하게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의 생각 또한 K와 D의 생각과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K와 D 사이, 그들과 저자 사이, 그리고 독자인 나 사이에 생긴 균열에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채워진다. 우리가 전쟁에 맞서는 일은 바로 이러한 균열과 틈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전쟁이 나고 말았다』를 읽고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면, 감정이 더 모호해졌다면, 우리는 전쟁에 맞설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