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구글 맵을 보면 내가 다녔던 방학동의 유치원이 아직 남아있다. 방학초등학교 근처인데, 우리 집은 유치원에서 몇 건물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리 집에서 유치원을 지나면 놀이터가 나왔는지, 놀이터를 지나면 유치원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 앞에는 문방구가 있었고, 문방구 앞에는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동전을 넣고 하는 오락기가 있었다. 등교시간이면 초등학생들이 그 문방구 앞 오락기에서 옹기종기 모여 오락을 하고 가곤 했다. 아직 미취학 어린이였던 나는 초등학생 누나 형들이 게임을 할 때 뒤에서 구경하다가, 자기 몸집 만한 가방이 등짝에서 허우적 대며 헐레벌떡 뛰어가는 지각생 한두 명의 숨찬 소리를 들으며 문방구 앞 오락기에 앉았다. 여러 대의 오락기 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건 '꼬마자동차 붕붕'이었다. 슈퍼마리오 같은 게임이었는데, 정말이지 만화영화처럼 붕붕이 꽃 아이템을 먹으면 힘이 세져서 적들을 쉽게 물리쳤다. 동전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고, 나는 오락기에 앉아서 그냥 하는 척을 했다. 데모 화면의 붕붕이 오른쪽으로 가면 조이스틱을 오른쪽으로 기울였고, 붕붕이 점프를 하면 점프 버튼을 누르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게임을 해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집에서였다. 그 집은 내게 신세계였는데, 양념치킨을 나는 그 집에서 처음 먹어봤다! 그때가 1988년이었으니 가정용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이다. 내 친구 집에 컴퓨터가 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우리는 그 컴퓨터로 아주 단순한 게임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페르시아의 왕자 같은 류의 게임이었는데, 물론 페르시아의 왕자가 승천한 용이라면 그 게임은 지렁이 정도였달까. 하지만 그 게임을 했을 때 충격은 페르시아의 왕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어렸을 때 착한 어린이였던 나는 정말 바보처럼 어른들이 오락실을 가지마라고 해서 오락실도 안 갔는데, 4학년 때 아빠가 가정용 게임기를 사줬다. 당시 닌텐도사에서 만든 패미콤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였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부모님도 게임기나 개임팩을 어디에서 사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디서 파는지 모를 때는 역시 백화점이다. 우리는 광주에서 가장 큰 화니백화점에 가서 슈퍼콤을 사왔다. 슈퍼콤은 해태전자에서 만든 패미콤의 짝퉁이었는데 아마도 광주에서만 팔렸을지도 모르겠다. 야구, 로드파이터, 핀볼, 그리고 이름을 까먹었는데 에스키모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게임까지 4가지 게임이 든 게임팩도 같이 샀다.
그런데 나도 친구들처럼 닌자거북이 게임을 하고 싶었다. 한 번은 아빠가 일본으로 출장을 갔는데, 잘은 모르지만 당시 일본이 한국보다 게임 산업이 훨씬 발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빠는 무슨 선물 받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닌자거북이2 게임팩을 말했다. 그런데 출장에서 돌아온 아빠가 사 온 것은 닌자거북이가 아니라 슈퍼마리오3였다. 아빠가 찾아갔던 매장에 닌자거북이가 없었고, 매장 직원이 슈퍼마리오가 닌자거북이보다 재밌다고 추천해서 그걸 사 온 거였다. 친구들한테 "이제 나도 닌자거북이 할 수 있다"고 자랑해 놓은 터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슈퍼마리오3도 무척 재밌게 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리오가 닌자거북이보다 훨씬 좋은 게임이고, 무엇보다 마리오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타이틀이고 조카들도 좋아하는 게임이니 당시 아빠의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다음 해인가, 엄마가 생일이었나 어린이날이었나,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어서 나는 이번에는 드래곤볼Z2 게임팩을 갖고 싶다고 했다. 유명 만화 드래곤볼 이야기 중에서 프리더와 싸우는 내용을 다룬 게임으로 역시나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 게임이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충장로에 나갔다. 화니백화점이었는지 가든백화점이었는지 아무튼 백화점에서 게임팩을 사서 나오는 내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고 엄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당시 드래곤볼Z2 게임팩이 4만 원인가 5만 원인가 했다. 1990년대 초반이었으니, 엄청나게 비싼 거였다. 넉넉하지 않은 우리 집 형편으로는 심한 과소비였을 것이다. 아무튼 게임팩을 사서 나오는데 거리에 매캐한 냄새가 났다. 옆 블록에서 대학생들이 데모를 했고, 경찰이 최루탄을 쏜 탓이었다. 나와 엄마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뛰었는데 그러다가 게임팩을 떨어뜨렸고 플라스틱으로 된 게임팩의 접합부가 벌어져버렸다. 다행히 집에 와서 본드로 붙여서 하니 게임은 잘 되었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집회를 마주한 날이었고, 최루탄 냄새를 맡은 날이었다. 각색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엄마한테 대학생들이 왜 데모를 하냐고 물었고 엄마는 대통령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학생들이 나서서 국민들을 위해 데모하는 거라고도 했다. 당시 전라도에서는 반정부 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을 대체로 지지하고 옹호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아빠 회사에 가보면 담벼락에 "독재자 물태우는 물러나가"는 구호가 쓰여있었다.
중학생 때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를 한 기억도, 대학생 때 스타크래프트를 한 기억도 아니고, 어린이 시절 게임과 연관된 기억이 떠오른 건 닌텐도 다이어리 때문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도 무척 재밌고 매력적이지만 역시나 인간이 만든 다른 모든 문화상품과 마찬가지로 언제 누구와 어떻게 했는지도 중요하다. 저자는 딸과 닌텐도 게임을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어른들이 아이들이 게임하는 거 싫어하지 않나? 유튜브와 모바일 게임의 유해하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피해 도망간 곳이 닌텐도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긴 조카들이 닌텐도 게임하는 것을 보면 유튜브 시청보다는 그 편이 더 나아 보인다. 어렸을 때 나도 그렇게나 슈퍼마리오3를 좋아하고 엄청 많이 했고, 내 생각에는 꽤나 잘했는데 조카들과 해보니 너무 어렵다. 그리고 허구한 날 "삼촌 닌텐도 하자"를 입에 달고 다니는 아이들이라 조금은 귀찮기도 했는데, 닌텐도 다이어리를 읽고 나니 조카들과 닌텐도 게임이 하고 싶어 진다. 어려운 형편에도 어린 내게 게임팩을 사줬을 엄마 아빠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릴 때 내 감정의 온도가 무척 따뜻하다는 걸 느끼면서, 삼촌과 함께 플레이한 게임 경험이 조카들에게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