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의 사과문을 보면서 든 생각
SNS든 블로그든, 혹은 어디에 기고하는 글이든 나 혼자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사람을 나도 덩달아 욕하지 말자. 설령 정말로 나쁜 놈이라고 하더라도 넘치는 욕에 내가 조금 더 얹는다고 해결될 것이 있나 싶은 생각이다. 그리고 욕하는 것 그렇지만 애초에 욕이 넘치는 사건은 관련 기사를 일부러 피하는 편이다. 물론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묻히면 안 되지만,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면 내가 초반에 관심 갖지 않더라도 성실하고 끈질긴 저널리스트들 덕분에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모이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시점이 당겨지겠지만, 그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조금 늦게 드러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낫다. 고 이선균 배우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부작용, 과도한 관심과 방구석 여포들의 왜곡된 정의로움이 사실은 거대한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과도한 관심을 부추기는 기사도 전혀 보지 않고, 인터넷 커뮤니티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내가 들어가는 유일한 인터넷 커뮤니티는 엠팍, 거기서도 불펜에는 들어가지 않고 한국 야구타운에 올라온 스탯 관련 글만 읽는다)
요 며칠 SNS에 손흥민과 이강인 이야기가 많다. 손흥민은 이강인 멱살을 잡았고, 이강인을 손흥민을 때렸다나? 내가 아는 것은 딱 이 수준, 이게 확실한지도 모른다. 아시안컵이 끝나고 난 뒤 이강인 선수에 대한 과한 질타의 여론이 뜨겁다는 것만 안다. 왜 이강인이 욕먹는지, 정말로 욕먹을 짓이었는지 등등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정말로 이강인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축구대표팀 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대표팀 내에서 이강인이 절대자라거나 무소불위의 권력자라면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될 테니 사회의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또 관심을 끄고 있었다. 합리적인 사람들이 이선균 배우 떠나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강인한테 또 저러냐고 진저리 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런데 오늘 이강인이 쓴 사과문이 SNS에 도는 것을 봤다. 아마 자신의 SNS에 올린 것인가 보다. 원 사건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나는 사과문의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잘못에 비해 큰 비난을 받았는지 아닌지 등등은 아직도 모르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이강인이 공개적으로 사과문 혹은 반성문이라는 것을 발표한 행위를 보면서 감정에 큰 동요가 일었다. 사실상 한국사회가 그 공개 사과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나는 난데없이 병역거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재판장에서나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늘 자신의 양심을 탈탈 털어 꺼내 보일 것을 요구받는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데, 보통의 형사사건은 검사가 피의자의 혐의가 범죄라는 것을 입증한다. 즉 피의재가 법을 어긴 것을 입증하는 책임이 검사한테 있는데, 병역거부자의 경우 내가 병역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입증책임이 피의자에게 있는 것이다. 물론 양심이라는 것이 내면의 소리인 만큼 검사가 그것을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내면의 소리를 스스로 드러내 증명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게 아니니 패스(나 자신도 병역거부자고, 20여 년째 병역거부 운동을 해오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양심을 증명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들에게 가혹하리만치, 혹은 사실상 불가능한 증명을 요구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예전에는 우리 사회의 신뢰도가 낮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일전에 박권일 선생님이 칼럼에선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카페에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자리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오곤 하는 게 신뢰도가 높은 사회여서가 아니라 곳곳에 CCTV가 있는 사회여서라고. 그렇다면 카페 내 CCTV는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선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인 셈이다. 만약 한국 사회가 '양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서로의 양심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회였다면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이나 심사 또한 굉장히 단순해졌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 대체복무 기간을 군복무의 2배로 설정해 놓고도 소위 병역 '기피자'들이 군대를 기피할 마음으로 이를 신청하지는 않는지 노심초사 바라보니까 재판에서도 심사가 빡빡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다"는 선언은 앞으로 나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으로 살아가겠다는 미래 지향적인 선언인데, "네가 과연 병역거부자의 양심으로 살았는지를 증명해 봐"라고 과거를 탈탈 터는 방식으로 심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게 아닌가. 아니, 지들이 탈탈 터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털어오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양심에 대한 이해와 신뢰도가 낮은 사회라는 점에 더해 나는 이강인의 사과문을 보면서, 그리고 기어코 그 사과문이라는 것을 공개하게 만드는 사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떠오른다. 우리는 왜 이토록 타인의 양심의 소리를 기어이 밖으로 끄집어내야만 만족하는 걸까?
사실 공개적인 사과야 말로 양심의 소리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공개적으로 쓰는 사과문은 정치적인 퍼포먼스고, 여기에는 진실된 내면의 소리를 담는 것보다는 퍼포먼스의 효과를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강인의 사과문이 진실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찌 판단하나) 병역거부자들의 병역거부 소견서 또한 거짓을 쓴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내면의 진솔한 소리더라도, 정치적 언어로 다시 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한 개인에게 강요하는 공개 사과문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한 내면의 소리라는 것을 공개적인 형태로 말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왜 다들 병역거부자들의 재판관, 심사위원이 된 것 마냥 이강인이, 손흥민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일까? 병역거부자들의 심사와 재판에서 자신의 내면의 소리의 진실됨을 스스로에게 입증하도록 한 것도 잘못인데, 하물며 사인끼리의 일에 다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나서서 판관 노릇을 하려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