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자유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주 깊게 잠이 들었다. 건조한 히터도 서늘한 에어컨도 틀지 않을 정도의 날씨, 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은 잠이 들면 깨기 어려운 조건이다. 버스가 멈추고, 깊은 잠에서 간신히 눈을 뜬 나는 비몽사몽 한 채로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다. 눈은 뜨고 있지만 정신도 몸도 아직 좀처럼 잠이 깨질 않았다. 사무실까지 걸어왔지만 몽롱함이 여전해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첫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짜르르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진다. 이제야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커피를 언제부터 마셨는지를 떠올려봤다. 대학시절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자판기 커피는 맛은 있었지만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는 일이 많았다. 커피숍 가는 것도 싫어했다. 커피숍은 주로 세미나를 하러 가거나, 회의를 하러 가는 장소였다.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니 커피숍을 좋아했을 거 같은데, 친구들과 수다 떨러 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당시 IMF 직후라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1500원짜리 생맥주 500cc보다 4500원짜리 파르페(그때는 아메리카노는 커피숍에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들은 주로 라떼를 마셨는데 나는 라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파르페 같은 걸 시켰다)가 훨씬 비싸게 느껴졌다. 안주값은 계산도 안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한 시간에 6000원이었던 노래방에 비해서 카페는 비쌌다. 카페에 자주 다녔더라면 커피를 좀 더 일찍 먹기 시작했을지도.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다. 내 기억으로는 2005년 경, 전쟁없는세상이 평화인권연대, 피자매연대와 함께 서대문 사무실을 쓸 때였다. 그때 신혜가 베트남에 다녀오면서 베트남 커피를 사다 줬는데 나는 커피를 먹지 않으니 그냥 고이 보관만 하고 있었다.
한편 당시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 역사 전시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여호와의증인이 보관하고 있는 옛 자료를 보러 안성에 있는 베델이라고 부르는 여호와의증인 본부(?)에 갈 일이 있었다. 베델에는 200여 명의 여호와의증인이 거주한다고 했는데 증인들에게는 베델에 들어가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과거 여호와의증인 병역거부 수감자들의 자필 수감기록이며, 그분들의 증언을 듣고 그린 삽화 그림들 같은 것들을 보고 난 뒤 어느 노부부의 방에 초대를 받았다. 군더더기 없는 그 방에서 노부부는 우리에게 커피를 대접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선한 얼굴로 권하는 커피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농활 가서도 농민들이 주는 커피는 다 마시지 않았던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마신 커피는 의외로 괜찮았다. 아메리카노는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달달한 맛이 강했으니 바닐라라떼 혹은 카라멜마끼아또였을지도.
그 뒤로도 신혜가 사다준 베트남 커피를 마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 번의 좋은 경험이 습관을 바꾸지는 못하는 거니까. 습관을 바꾸게 된 계기는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였다. 전도연, 황정민이 나오는 순정멜로드라마다. 황정민이 전도연을 사모하는 굉장히 순박한 농촌 청년으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 속에서 황정민은 정성을 가득 담아 소젖에서 직접 짠 우유를 전도연한테 선물하고 전도연은 처음에는 그걸 마시지 못하지만 황정민의 정성을 생각하며 억지로 마시다가 나중에는 맛있게 먹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이신혜가 베트남에서 선물로 사다준 정성을 생각하면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때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렇다고 커피를 아주 막 즐긴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감옥에 갔을 때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마 카누 봉지 커피처럼 아메리카노를 대체할 커피를 감옥에서 사서 마실 수 있을 텐데, 내가 감옥에 있을 때는 믹스커피밖에 없었다. 수감자들은 시간은 많고 할 일이 없으니 특이한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믹스커피를 가지고 설탕과 프림이 없는 카누 같은 커피를 만들어 먹는 거였다. 손이 서툰 이들은 그냥 봉지 커피에서 커피와 설탕 프림이 있다고 추정되는 지점을 손가락으로 꼭 잡고 커피만 추출했는데 당연하게도 아무리 잘하더라도 설탕과 프림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손재주가 있는 이들은 교도소에서 지급한 수건을 반으로 자른 뒤 실을 가로축 세로축에서 한 올씩 건너뛰어 뽑으면서 입자가 고운 프림과 설탕만 걸러낼 수 있는 체를 만들었고, 그 체로 가루 커피만 추출해서 아메리카노는 만들어 먹었다. 나는 그런 섬세한 손재주도 없고 끈질긴 노동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만약 내가 지금처럼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었다면 감옥에서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출소하고 나서부터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부쩍 늘었다. 특히 보리출판사에 들어가고 나서 커피가 늘었다. 스트레스를 커피와 함께 먹는 달달한 디저트로 해소하는 습관 때문이다. 덕분에 보리출판사에 다니는 3년 동안 몸무게는 10킬로그램 넘게 불었지만 그래도 커피와 함께 먹는 달달한 디저트의 맛을 알게 되었으니. 인생의 즐거움이 어디 공짜가 있겠는가.
책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는 글을 쓸 때 커피를 마신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작가는 글 쓰기 전에 루틴처럼 커피를 준비한다고 한다. 직업 작가인 그의 노동은 글쓰기인데, 글이 잘 안 써지는 날도 자리에 앉아서 글을 써야만 한다. 모든 직업인들이 그렇듯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슬럼프 일 때는 루틴이 중요하다. 평소의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커피를 마시는 걸로 글쓰기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 인터뷰를 본 뒤 나도 커피 마시기를 글쓰기의 루틴으로 만들기로 했다. 적절한 자극을 반복적으로 주다 보면 그 행동을 했을 때 내 몸이 바로 내 마음을 알아차릴 테니까. 게다가 커피는 뇌의 각성작용까지 가져오니 글쓰기를 위한 루틴으로 안성맞춤이 아니겠나.
커피의 각성효과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밤에 잠을 안 자는 게 더 힘든 사람이라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커피를 많이 마신 날은 수면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아무튼 잠드는 것에 아무 문제는 없다. 목이 약한 나는 한 여름에도 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추운 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그 온기 덕에 오히려 졸음이 오기도 할 정도다.
비몽사몽 한 채로 커피와 함께 시작한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커피 덕에 정신 차리고 일을 할 수 있었고, 점심 먹고 난 뒤에는 맛있는 스콘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동료들과 수다를 떨었다. 커피 덕에 알차게 또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