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아무튼, 보드게임> 같은 책은 누가 읽는 걸까? 보드게임과 책 양쪽에 긍정적인 감정을 품은 사람이지 않을까(제발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7쪽)
작가님 저 여기 있습니다! 라고 외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정말이지 나 또한 보드게임과 챡 양쪽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고,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모른 척할 수 없는 책 <아무튼, 보드게임>을 읽었다.
나는 확실히 비디오 게임보다는 보드게임이 잘 맞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들은 주로 물리적인 순발력을 요하지 않는 게임들, 예를 들면 스트리트파이터 류의 액션 게임이나 1945 같은 슈팅 게임, 위닝 일레븐 같은 스포츠 게임을 나는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덕분에 오락실 게임에 재미를 들리지 못했다. 반면 삼국지 시리즈나 심시티 시리즈, 혹은 프린세스 메이커나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은 즐겨했다. 몸이 빨리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까. 반대로 머리 쓰는 게임을 좋아했다. 장기, 오목, 체스 같은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두었고 보드게임 카페가 처음 유행했던 20여 년 전에는 보드카페 가면 묵직한 게임들을 하고 싶어 했다. 몸보다는 머리를 쓰거나 혹은 입을 터는 게임이 나에겐 잘 맞았는데 아무래도 이런 속성은 비디오 게임보다는 보드게임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나는 게임 자체보다는 그것을 친구들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스타크래프트가 국민게임이던 시절, 물론 나는 배틀넷에서 승과 패가 모두 1000번을 넘도록 모르는 이들과도 많은 게임을 했지만 그보다는 학교 앞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플레이한 게임이 훨씬 많았다. 혼자서 게임을 할 때는 친구들과 플레이를 위한 연습 정도의 느낌으로 게임을 했고, 언제나 본 게임은 친구들과 했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방금 전 게임에 대한 수다를 떨면서 누군가의 실수를 골려먹기도 하고, 누군가의 기가 막힌 전술과 컨트롤을 칭찬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마주 보고, 사람들과 수다 떨면서 하는 게임으로서는 확실히 비디오게임보다는 보드게임이다.
그런데 내가 보드게임에 매력을 느끼는 딱 그 지점이 보드게임을 자주 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비디오게임과는 다르게 보드게임은 함께 플레이할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게임보다 사람이 훨씬 귀하다. 게임은 여기저기서 팔지만 친구는 어디서도 팔지 않는다(54쪽)"는 심완선 작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다양한 테마, 다양한 장르의 보드게임이 있지만 보드게임을 관통하는 특징은 바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얼굴 마주하고 플레이한다는 것이니까. 아, 보드게임에 또 한 가지 제약이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제약일 텐데, 세이브 한 뒤 다음에 이어서 할 수 있는 비디오게임과는 다르게 대개의 보드게임은 앉은자리에서 끝을 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한국과 같은 노동시간최장 국가에서는 당최 보드게임을 즐길 시간적인 여유가 사람들에게 없다. 이것이 사람 모으기 더 힘들게 만드는 지극히 한국적인 제약이다.
장기와 오목, 고스톱, 부루마불을 거쳐 본격적으로 보드게임을 접했던 건 20여 년 전 대학시절. 한국에서 막 보드게임 카페가 붐이 일었을 때다. 보난자, 시타델, 할리갈리, 카탄, 달무티, 카르카손 같은 게임을 하면서 보드게임 카페에서 몇 날 밤을 새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면서도 사무실에 보드게임을 마련해 두고 간간히 했다. 그 시절 우리는 과거의 사회운동 습성과 단절하고 싶은 욕구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미나 즐기는 일에 관심을 두려고 노력했고 그중 하나가 보드게임이었다. 단체 사무실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우리는 전형적인 운동권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렇지만 모두가 보드게임을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같이 게임하자고 말하는 나와, 어물쩍 머뭇 거리며 게임을 회피하는 동료들이 몇 번 반복되면서, 그리고 단체의 일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보드게임은 자연스럽게 사무실 구석에서 먼지를 쌓아가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 즈음에 정말로 보드게임에 환장한(?) 사람이 전쟁없는세상에 오게 되는데, 지금은 사무국으로 같이 활동하는 여지우다. 번데기를 몰라보고 주름잡던 나는 보드게임마스터를 몰라보고 덤벼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우리가(사실은 내가) Chat 쥬PT라고 부르는 여지우는 사회운동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캐릭터인데, 무엇보다도 보드게임할 때 진심이다. 다른 이야기를 나눌 때는 조용하게 주로 이야기를 듣고 묻는 말에만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보드게임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고 엄청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 여지우가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네거나 무언가를 제안했다면 그것은 열이 면 열 보드게임에 관련된 이야기다. 직접 만든 게임들도 훌륭한데 사회운동 캠페인인 테마인 세상을 바꾸다:광장에서 국회까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 점령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운동을 다룬 인티파다, 정신 건강 테마의 내 머릿속 무지개 같은 게임들은 정식 발매 되어도 충분한 퀄리티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여지우였기에 전략 게임 좋아한다면서 고작 카탄과 시타델을 이야기하던 나에게 세계를 열어줬다. 전염병에 맞서 세계를 구하는 게임인 팬데믹, 흑사병이 휩쓸고 간 직후 노동력이 부족한 유럽 농촌을 배경으로 농사짓는 게임인 아그리콜라,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 극에 달했던 냉전시기를 다룬 황혼의 투쟁, 컴퓨터 게임 문명의 보드게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쓰루 디 에이지스, 투기자본이 되어 초강대국들 정부를 움직여 전쟁을 일으키고 돈을 버는 임페리얼 2030 같은 게임을 접하면서 보드게임의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여러 게임들을 하다 보니 내 보드게임 취향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역시나 나는 전략 게임이 좋았다. 앞서 이야기한 아그리콜라, 쓰루 디 에이지스를 비롯해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 철도를 놓고 물자를 운송하는 브라스, "언젠가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기겠지"라는 박스 문구가 인상적인 테라포밍마스 같은 게임은 수십 번 해도 질리지 않는다.
요즘 나는 주로 두 군데에서 보드게임을 한다. 첫 번째로 엄마집. 엄마집에 가면 조카들이 보드게임은 잔뜩 가지고 온다. 그중에는 내가 사준 것들도 있다. 카탄 같은 경우는 나도 이미 수십 번 플레이한 것을 조카를 줬는데 조카는 조카대로 카드가 마르고 닳도록 플레이를 했다. 내가 산 물건 중에 가장 알차게 본전을 뽑은 물건이다. 그 외에도 유럽 도시 사이에 철도와 기차 노선을 놓는 티켓 투 라이드, 다채로운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딕싯, 왜 제목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재밌는 카드게임 러브레터, 전통의 루미큐브를 많이 한다. SET 같은 단순한 퍼즐게임은 첫째 조카를 이미 이길 수 없고, 한두 해 뒤면 둘째 조카도 나를 쉽게 앞지르겠지.
두 번째는 우리가 하우스라고 부르는 열쭝네 집. 여기서는 주로 전쟁없는세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한다. 보드게임을 100여 개 가지고 있고 직접 만든 보드게임만도 여러 개인 여지우의 게임 대부분이 열쭝 하우스에 있다. 주말마다 보드게임판이 벌어지는데, 모든 존재가 환영받는 곳이다. 모여서 게임도 하고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하우스장인 열쭝은 와서 게임을 안 하는 건 뭐라고 안 하지만 밥을 안 먹고 가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로 그저 게임이 하고 싶은 건데 열쭝하우스에 가면 게임 이외의 환대와 관계 맺음이 부담스러워 안 간 적도 있다. 아무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파티게임부터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전략게임까지 다양한 게임이 비치되어 있고, 어떤 존재도 환대받는 곳이라는 점이 열쭝 하우스가 가진 특별한 점이다.
리뷰를 쓴다고 하면서 구구절절 나의 보드게임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그러나 어쩌랴 보드게임이 그만큼 재밌으니, 심완선 작가님도 내 마음을 공감할 것이다. 그래도 리뷰라고 쓰는 글이니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 책을 몇 달만 전에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책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으니 몇 달 전에 읽을 수는 없었지만. 조만간 내가 쓴 중학생 독자 대상 책이 나오는데, 그 책의 챕터 중 하나가 전쟁게임을 하면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보드게임은 그렇게까지 폭력적인 이미지를 접하기는 어렵고, 비디오 게임은 내가 잘하지를 않으니 이 챕터를 써 내려가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때 이 책 <아무튼, 보드게임>이 있었다면 큰 도움을 받았을 거 같다. 심완선 작가 또한 비슷한 고민에 대해 책에 담았다. 어쩌면 진지한 게이머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할지도 모른다.
플레이어가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설계된 수많은 비디오게임의 위험성은 단순히 폭력을 간접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지 않다. 특정 대상에 폭력을 행사하면 보상이 나온다는 사실을 계산하게 만드는 점이 위험하다. 세상을 게임으로 치환할수록 우리는 명료함의 환상에 빠진다. 끝내 명료해지지 않는 중요한 요소를 삶에서 밀어내게 된다. (124쪽)
폭력의 보상이라는 지점이, 그 보상을 계산하게 만든다는 관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나 또한 사회(특히 기성세대)가 게임을 대할 때의 태도, 폭력과 인간에 대한 얄팍한 인식이 불만이었는데 이렇게 접근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회와 같은 방식으로 게임이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글을 쓰는데 애를 먹었는데, 이 관점을 접하고 난 뒤에 글을 썼다면 훨씬 잘쓸 수 있을 것만 같다.
좋은 독서는 이어지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에서 읽은 책이었지만 <아무튼, 보드게임>은 게임이라는 매체와 폭력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열어줬다. 이 책에 자주 언급되는 <게임 : 행위성의 예술>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한 김보영 작가의 단편 <저예산 프로젝트>도 재밌어 보이니 바로 사야지(새로 살 생각 말고 사놓고 아직 안 읽은 김보영 작가의 <종의 기원담>부터 먼저 읽어라 이 화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