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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

짧은 리뷰 

by 이용석 Jan 31. 2025

*스포일러 있음


설연휴 동안 중증외상센터를 봤다. 뒤로 갈수록 너무 착해지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를 제외한다면 무척 재밌게 봤다. 환자 구하는 것에 미친 의사들의 의학 드라마를 제대로 본 느낌이랄까. 중간중간 코믹한 연출도 나는 좋았다. 그렇지만 역시나 내 마음속 의학드라마 넘버원은 역시나 주인공은 췌장암(맞나?)으로 죽고 주인공의 친구이자 가장 핵심적인 인물을 연기한 배우도 세상을 떠나서 절대로 시즌2가 나올 수 없는 드라마, '하얀거탑'이다. '하얀거탑'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마지막은 조금 손발 오그라들어 실망스럽고, 어떤 설정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밌는 드라마였다. 장르에 충실한 드라마였는데, 막 엄청 대단한 통찰을 주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할 게 있어서 리뷰로 정리해두려고 한다. 내가 정리하고 싶은 것은 모두 세 가지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달리는 사람


또라이에 제 멋대로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나무랄 데 없는 백강혁(주지훈) 교수. 아마도 이국종 교수가 모델일 그는 한국대병원 중증외상팀을 "셔터 내리"고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는 것. 하지만 아무도 이를 반기지 않는다. 한국대병원에 백강혁을 넣어준 보건복지부 장관(김선영 배우)이야 백강혁의 든든한 백이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정치 9단 정치인, 언제든 불리하면 백강혁이든 중증외상센터들 손절할 인물이다. 한국대병원의 실세인 병원장(김의성 배우)과 기조실장(김원해 배우)은 물론이고, 처세주의자로 시작한 항문외과장 한유림(윤경호 배우) 또한 제멋대로인 성격에다가 예의라고는 쌈 싸 먹은 백강혁과,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적자를 늘려가는 중증외상팀을 못마땅해한다. 


의료도, 특히 수술실이야말로 당연히 팀플레이가 필요한 곳. 중증외상팀은 최강 의사 백강혁과 중증외상팀에서만 5년을 버틴 베테랑 간호사 천장미(하영 배우)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원 내 미운오리새끼인 중증외상팀에는 아무도 오고 싶어 하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 백강혁이 자신의 보조 의사로 점찍은 사람은 병원 내 실력파로 이름이 나 있는, 한유림 과장의 애제자인 양재원(추영우 배우). 우여곡절 끝에 양재원을 중증외상팀에 끌어들이고 난 뒤 양재원은 백강혁에게 왜 자기를 택했는지 묻는다. 백강혁의 대답은 "그냥 잘 달리길래. 내가 볼 때마다 네가 달리고 있었어. 환자 살리겠다고." 뻔하디 뻔한 스토리다. 아직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미흡하지만 마음가짐 하나만은 진퉁인 양재원을, 그가 늘 병원 복도를 다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백강혁은 알아차린 이야기. 


뻔한 이야기는 뻔하기 때문에 뭇사람들의 마음에 호소력을 가진다. 나는 이 달리기 이야기를 '업業'에 대한 이야기로 봤다. 자기 업에 충실한 사람.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깔은 백강혁을 통해 시청자들이 본 것이다. '직職'이 전문적인 기술이나 직책을 수행하는 일이라면 '업'은 그 일의 사회적인 의미와 책임감과 밀접한 이야기다. 어느 직업이든 업業에 대한 자긍심, 책임감이 중요하겠지만 특히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업'에 대한 감각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업'에 자각이 없는 윤석열이 벌인 짓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만 충실한 나머지 정치인이라는 직'업'의 본분을 망각해 버린 권성동 이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보고 있자면 공적인 일을 하는 이들의 '업'에 감각은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어쩌면 우리 시대가, 특히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보고 싶은 일종의 판타지를 백강혁, 양재원, 천장미 등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인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을 살리는 '업' 충실한 의사들을 보면서, 활동가들의 '업'에 대해서 생각했다. 보도자료 잘 쓰고, 캠페인 기깔나게 기획하고 추진하고, 집회 발언이나 토론회 사회를 물 흐르듯 해내는 기술은 아마도 '직'에 해당하는 전문성일 것이라면, 사람들과 세상의 변화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빛나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일을 수행해 가면서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를 도래할 계기를 기다리는 것이 활동가의 '업'에 해당하는 태도가 아닐까. 양재원이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는 것처럼 우리 활동가들도 큰 사건이 터졌을 때는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다가 때로는 차디찬 길바닥에서 겨울밤을 견디느라 등짝에 한기가 서리고, 더러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주제를 파고들어 기록을 쌓아가다가 갑자기 세상이 그 이슈를 주목할 때는 어떻게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해당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머리 싸매고 고민한다. 한국 드라마는 사회 비판적인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활동가를 제대로 다룬 것을 못 봤는데, 만약 어떤 드라마에서 활동가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묘사한다면 어떻게 그려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조직개혁


앞서 말했듯이 중증외상팀은 병원 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이국종 교수를 통해 알려진 중증외상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드라마는 극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중증외상팀 수장인 백강혁 교수는 안으로는 중증환자들의 치료를 하면서도 병원 안팎에서 중증외상의료에 무감각하고 무지한 세상과, 병원과 맞서 싸운다. 드라마는 철저하게 백강혁을 돈만 밝히는 병원의 관료조직을,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의료의 본질에 충실한 곳으로 바꾸려는 개혁가로 묘사한다. 


백강혁의 대의는 숭고해서 누가 토를 달 수 없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적자니 흑자니 자본의 논리를 가져오지 마라는 이야기니까. 병원장과 기조실장을 위시한 병원 조직은 백강혁의 개혁을 억누르는 반개혁 세력이다. 응급상황이 난무하는 가운데 환자들을 신기에 가까운 의술로 치료하는 메디컬 드라마가 이 작품의 한축을 담당하고, 무대포 개혁가가 반개혁 기득권에 맞서 승리하는 서사가 다른 한축을 담당한다. 


다큐가 아닌 드라마니까, 현실의 난맥상들을 어느 정도 추상화하거나 삭제하고 갈등의 핵심축만 남겨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의료 현장의 현실적인 쟁점과 고민을 나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가 이 문제를 잘 다뤘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판타지로 묘사했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이처럼 조직 개혁을 다룬 수작들과 비교하면 많이 아쉽다. 대표적으로는 브래드피트 주연의 영화 '머니볼'이 떠오른다. 


'머니볼'과 '중증외상센터'는 무엇이 다를까? 더 정확히는 빌리 빈(브래드 피트)과 백강혁은 무엇이 다를까? 수술이나 치료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는 백강혁이 펼친 일반적이지 않은 치료법이 현실적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잠도 자지 않고, 개인 생활도 거의 없이, 환자 치료에만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생명을 직접적으로 구하는 일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공적인 일을 하는 활동가들 중에서도 남다른 사명감과 헌신으로 도무지 믿기 힘든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이 많지만, 그런 채로 오래가진 못한다. 활동가도 사람이니까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 하물며 날마다 피를 뒤집어쓰고 극한의 집중력과 체력을 소모하는 응급실 의사가 무슨 수로 몸과 마음의 과로를 견딘단 말인가. 


백강혁 교수와 중증외상팀의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는 좀 더 복잡한 문제로 연결되는데 이 캐릭터들이 이래야 하는 이유는 사명감, 바로 이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머니볼'에서의 개혁은 조직의 효율적인 운영에 대한 개혁일뿐 정의와 부정의의 문제는 아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개혁도 아니고, 야구단의 전략과 방향성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혔는데 어느 한쪽이 공적인 정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중증외상센터'에서 개혁은 정의의 문제다. 의료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의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개혁 세력 중에 누가 정의의 편인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회사로 치면 노측과 사측이라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권력의 격차가 있는 집단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면 정의의 문제는 칼로 두부 자르듯 쉽게 나뉘지 않는다. 개혁하려는 쪽과 개혁에 반대하는 쪽 모두 자신의 명분 속에서 자신이 정의라고 주장하기 일쑤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정의는 부정의와 복잡하게 섞여 있어서 양쪽 모두 정의롭기도 하고 정의롭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고, 집단이 되었을 때는 복잡한 개인들의 총합과는 또 다른 다이내믹이 작동하니까. 만약 현실이라면 병원장과 기조실장이 더 나쁜 사람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더라도 중증외상팀 또한 정의롭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때 개혁의 명분인 정의는 훨씬 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드라마에서 조직개혁 스토리가 설득력 없다고 느끼는 건 드라이하게 조직개혁을 다루지 않고 정의의 문제를 개입한 것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현실 세계의 많은 개혁은 정의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전략의 문제나 효율성의 문제와 연관된 개혁조차도, 대개의 경우 기득권 권력은 부패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개혁은 결국 정의의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 개혁 이야기에서 정의를 빼면 다른 측면에서 빈고리가 생기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딴 이야긴데, 개혁을 다루는 이야기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과 동시에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갖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공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정의의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해서가 아니라 개혁이라는 아주 지난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난관이 '정의'라는 전가의 보도로 뚝딱 해결되기 때문이다. 혁명은 경험한 적 없으니 말할 것도 없고, 시스템을 고치는 개혁조차도 무척이나 난망하고, 시스템은 건들지도 않은 채 어떤 한 사안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것조차도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렵다. 모두가 알지 않나. 학교에서, 회사에서, 군대에서, 병원에서, 국회에서, 관공서에서, 세상의 그 많은 불합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런데 정의라는 대의명분 하나만 갖고 밀어붙이는 개혁이 성공을 거둘 리가. 그 안에서 무수한 협상과 좌절과 백래시가 증발해 버린 채 정의라는 두 글자만으로 이룩한 개혁 스토리는 나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물론 제한된  분량 안에서 개혁 과정을 제대로 그리자면 의학드라마라는 또 다른 축이 흔들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이런 류의 개혁 스토리에 나는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의학드라마로서는 무척 재밌었지만 개혁에 대한 이야기로서는 나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거 같다. 



민간군사기업 PMC


평화학 연구자 정주진 선생님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미 이 지점을 비판했는데 백강혁의 전직장인 블랙윙스-PMC라 불리는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에 대한 묘사는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블랙윙스는 이름도 그렇고 하는 일도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를 떠올리게 한다. 작중 백강혁은 국경없는의사회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 국제평화의사 소속 의사였다가 한국대병원으로 오기 전 블랙윙즈라는 세계최대 민간군사기업에서 메딕으로 일했다. PMC인 만큼 의료도 했지만 전투도 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라기도 했다는 이야기. 국제평화의사회와 민간군사기업이라는 아득한 간극에 대해 양재원이 묻자 백강혁은 "페이"때문이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아덴만 여망 작전과 석해균 선장이 떠오르는 에피소드에서 백강혁과 중증외상팀은 남수단에서 총상을 입은 이현종 대위를 치료하러 남수단으로 향한다. 거듭된 내전과, 테러 집단의 병원 공격으로 제대로 된 의료시설도, 혈액팩도 없는 상황. 목숨이 촌각에 달린 이현종 대위를 살리고자 백강혁은 자신이 몸담았던 블랙윙스를 찾아가서 거기서 이현종의 수술을 마치고, 과거 백강혁에게 신세를 진 블랙윙즈가 제공한 에어 앰뷸런스를 타고 한국으로 귀환한다. 한국 정부는 비용상의 이유로 에어 앰뷸런스 제공에 난색을 표했고, 백강혁이 직접 나서 블랙윙스로부터 에어 앰뷸런스 지원을 이끌어낸다.


드라마는 민간군사기업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백강혁의 전 직장이자 현시점에서 정부보다 더 밀착된 조력자처럼 블랙윙스를 묘사한다. 나는 이 묘사가 무척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 민간군사기업이 실제로 하는 일의 윤리성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다 여기고, 전 국민(실제로는 특정 연령대의 비장애인 남성) 대상 징병제를 실시하며 이 신화를 유지해 가지만 실제로는 전쟁산업은 신성하지도 않고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간다. 특히 이라크 전쟁 이후 심화되었는데, 국가의 역할을 민영화하여 민간군사기업이 전쟁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피터 W. 싱어가 쓴 책 <전쟁 대행 주식회사>에서 이 민간군사기업에 대해 잘 정리해 놨으니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찾아보기를 추천한다.(그런데 품절인 책이라서 구하기가 어렵다.)


<전쟁 대행 주식회사> 표지<전쟁 대행 주식회사> 표지


아무튼 짧게만 설명하자면 현대의 전쟁에서 민간군사기업은 정규군, 혹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전투 대행과 군 기지 보안과 경비 같은 군사행동을 하는 민간 경비 업체들, 현지 군 병력 훈련과 국방정책 자문 혹은 전투 자문을 해주는 군사 자문 업체들, 심리전과 선정 선동 혹은 첩보활동을 비롯해 군용 물자 조달 등 부대 주둔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수 지원 업체들까지 전쟁과 관련해서 안 하는 일이 없다. 


전쟁으로 즉 살인으로 돈을 버는 '전쟁수혜자 warprofiteer'라는 근원적인 비판은 차치하자. PMC는 구성에서부터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대개는 영국이나 미국의 퇴역군인들이 이런 민간군사기업, 특히 전투를 수행하는 기업에 취직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갈 곳을 잃은 남아공의 정보기관 요원들이나 구소련의 비밀경찰들도 PMC를 다음 직장으로 선택했다. 인권침해나 고문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하게 하던 일을 계속했다. 자신의 의뢰인의 요청을 수행하기 위해 민간인이고 적군이고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든지, 포로에게 가혹행위를 한다든지 같은 국제법상 금지된 행위를 서슴지 않고 해 왔다. 


문제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 아래 작전을 수행하는 정규군에 달리 용병이나 다를 바 없는 민간군사기업의 불법행위나 군사행동에 대해 적절한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제도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각국 정부는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이 점을 오히려 활용했다.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만한 작전에 이들 PMC를 내세운다든지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면 꼬리 자르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정규군의 경우 전후 참전군인에 대한 대우 문제를 비롯해서 국가책임에 대한 막대한 금전적 사회적 재원이 필요한데 PMC는 그런 면에서도 자유롭다. 


글이 길어졌는데, PMC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것만으로도 책이 한 권 분량일 테고 제대로 쓰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드라마 리뷰에서는 깊게 다루긴 어렵다는 이야기. 민간군사기업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전쟁 대행 주식회사>와 켄 실버스타인이 쓰고 정인환 기자가 번역한 <전쟁을 팝니다>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민간군사기업을 포함한 전쟁수혜기업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이 블로그의 예전 글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를 살펴보거나 이 글이 실린 책 <평화는 처음이라>를 살펴봐도 된다.


모처럼 볼만한 의학드라마였는데, 리뷰를 쓰다 보니 안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은 거 같네. 그렇지만 문제는 문제. 윤리적인 문제, 국제법적인 문제가 있는 민간군사기업이라는 소재를 다룰 때는 좀 더 민감하고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드라마였고 누가 나에게 볼만하냐고 물어보면 보라고 추천하겠지만, 드라마 다 보고 난 뒤에 민간군사기업에 대해서는 찾아보고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꼭 거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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