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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취향

by 이용석

비 오는 날 내 플레이리스트는 늘 '여우야'로 시작한다. 특히나 퇴근길이라면 더더욱. 자유로 빗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여우야를 듣는데 갑자기 임재성 변호사가 새로운 연재 꼭지 명을 "임재성의 마법의 성"으로 정했다고 쓴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법의 성. 더클래식 데뷔곡이자 1집 타이틀곡. '여우야'는 '마법의 성'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더클래식의 정규 2집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그리고 더클래식 1집은 내가 처음 산 앨범이었다.


더클래식 1집 테이프를 사진 찍고 싶었는데, 잃어버렸는지 찾을 수 없어서 2집 테이프를 찍었다. 대중적인 인기는 1집이 더 많았지만 사실 난 2집을 더 좋아한다.


형이나 누나가 없는 나는 또래보다 늘 유행에 뒤처졌다. 어렸을 적 이사를 자주 다닌 탓에 동네에 아는 형, 누나도 없었다. 친구들이 누나나 형을 통해 이승철, 박남정, 변진섭을 들을 때 나는 이상한 바다 나디아의 주제곡처럼 만화영화 주제곡을 흥얼거렸으니. 넉넉하지 못한 용돈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음반가게에서 음반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를 전혀 몰랐다는 것. 당시 친구들은 대부분 서태지를 좋아했고, 서태지 좋아하는 애들을 유행에 휩쓸리는 팬들로 취급하며 자신은 좀 더 딥하게 음악을 듣는다고 자부하던 애들은 듀스를 좋아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댄스곡들이 싫지는 않지만 내 취향이 아니란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 딱히 취향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었다.


취향이란 것이 많이 경험해 봐야 생기는 것, 음악에서는 많이 들어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내가 내 취향을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모를 때는 남들이 다들 좋아하는 걸 고르는 게 그나마 실패할 확률을 떨어뜨리는 법. 나는 그 당시 가요톱텐 1위를 하고 있던 '마법의 성'이 수록된 더클래식 1집을 샀다. 어린아이가 부른 마지막 트랙의 '마법의 성'도 좋았지만 김광진이 부른 '마법의 성'이 더 좋았다. 매끄럽게 멜로디를 타고 넘는 보컬이 아니라 불안하게 떨리는 음정으로 부르는 것이 어쩐지 노래 못하는 내가 부르는 것만 같았고(김광진님께는 죄송한 말씀이다. 아무렴 가순데 나처럼 못하진 않지), 그게 노래 못하는 게 아니라 숨길 수 없는 진심의 떨림처럼 느껴졌다.


당시 나는 무지해도 너무 무지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름의 규칙을 발견한 셈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듀엣의 구성에 어떤 규칙 같은 것을 발견했다. 내가 발견한 규칙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남성 듀엣이 구성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규칙은 보컬과 보컬로 구성된 듀엣 그룹의 경우 키가 크고 미성인 보컬과 키가 작고 허스키한 보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랑을 할 거야'를 부른 녹색지대, 그리고 '하얀 겨울'을 부른 미스터투가 있다. (클론은 둘 다 노래를 했지만 보컬리스트로 볼 수 없으니 예외다) 더클래식도 해당이 되는 두 번째 규칙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멤버와 편곡을 하고 악기 세션을 하는 멤버로 구성된 듀엣들이다. 전람회도 여기에 해당한다. 김동률과 김광진은 노래를 작곡하고 메인보컬로 노래를 부르고, 서동욱과 박용준은 세션을 담당하거나 편곡을 하고 앨범에서 한두 곡 정도 노래를 부른다. 이게 일반적인 규칙인지, 아니면 견문이 좁은 나의 소견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더클래식 1집을 시작으로 테이프를 사모으기 시작했고 밤에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음악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내 취향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이었다. 왜냐면 대중매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음악이란 굉장히 제한적이고,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으니 더더욱 내가 새로운 음악을 만나 볼 기회도 없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나오지 않는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이상은, 정태춘, 김광석의 노래를 즐겨 듣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주로 인기가요에 나오는 가수들, 그중에서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을 좋아했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많이 듣기 시작한 건 대학 졸업 이후였다. 당시 활발했던 홍대 앞 인디씬은 나에겐 새로운 음악의 보물창고 같았다. 장기하, 시와, 루시드폴, 브로콜리너마저로 시작해 오소영, 윤영배로 이어졌고 그렇게 듣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지만 내 취향을 이때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리고 취향을 알아차리기엔 음악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그냥 좋다, 싫다, 그저 그렇다 딱 이런 수준의 평가를 내리는 이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겠지. 감옥에 수감 됐을 때 대중음악사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으면서 그래도 음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을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재즈는 술값 엄청 비싼 바에서나 듣는 생음악이고 그래서 부르주아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재즈가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알게 된 이후 재즈를 새롭게 듣고 좋아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는 내 취향을 말할 수 있다. 포크를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고, 그리고 재즈 중에서도 보사노바를 좋아한다. 막 대단히 히트 친 노래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했던 한국 대중가요들을 보면 확실히 일정한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루시드폴 노래 중에 인기 있는 곡은 아니지만 내가 계속 흥얼거리는 '그대는 나즈막히' 같은 노래들은 대체로 보사노바풍이다. (아닌가? 아님 말고 ㅎㅎ) 둥두둥 두두둥둥, 하는 보사노바 특유의 리듬감이 잘 살아있는 노래들. 혹은 포크 계열 노래들이다. 통기타의 선율에 실린 섬세하고 세심한 감정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된 노래들. 시와의 '길상사에서'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그렇다고 선율이나 멜로디만이 내 취향의 전부는 아니다. 보컬이 있는 경우 음색이 무척 중요한데, 여기에 대해서는 뭐라 정리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분명 내가 표현하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경향성이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그걸 표현하기 어렵다. 확실한 건 나는 가창력보다는 음색이 중요하다는 점. 그래서 김범수, 김연우보다 루시드폴이 더 좋다. 김사월, 산울림, 이소라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가사도 무척 중요하다. 사랑 노래도 좋고 이별 노래도 좋지만, 나는 윤영배의 '선언'이나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처럼 아름다운 노랫말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가사를 좋아한다. 도무지 안 어울리는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하는 것 같아서 좋다. 아, 물론 잘 만들어야지 너무 날이 선 언어들이라면 노래가 아니라 구호처럼 느껴져서 싫다. 결국 비판을 하더라도 노랫말의 문학성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한 편으로는 삶의 구체성을 담은 노랫말을 좋아한다. 물론 구체성을 담은 가사라고 다 좋지는 않고, 그 구체성이 내 삶의 구체성과 만나는 노랫말을 좋아한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이 영역에서 나에게는 독보적이다. 또래로서 겪은 비슷한 경험들, 생애주기에 따른 비슷한 고민들이 묻어 있는 가사를 들으면 너무나 내 이야기 같고, 아니면 친구들이나 내 동생 이야기 같아서.


몇 장의 음반을 들었을까. 꽤 긴 세월 동안 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내 취향을 조금씩 알아왔다. 그런데 문득 내가 처음 산 앨범이, 내 취향 하나도 모르고 그냥 유명하고 인기 있어서 산 그 앨범이 더클래식 1집이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무턱대고 산 첫 앨범이 음악적으로도 매우 훌륭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에 이름을 크게 남길 뮤지션의 앨범이라는 점에서 왠지 그냥 내가 안목이 있는 사람 같아 보여서 좋다. 더클래식이 활동 중단한 이후에 발표한 김광진의 솔로 앨범도 정규앨범은 다 샀다. 이때는 나도 좀 더 용돈을 받았는지 다 CD로 샀다. 음악적으로는 김광진의 솔로 앨범이 완성도 측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거 같던데, 그리고 김광진 솔로 앨범도 좋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더클래식 앨범들이 더 좋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어서 내가 산 테이프를 그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더 불안정하고, 더 풋풋하고, 덜 세련되었던 더클래식 시절의 노래들, 비 오는 여름밤에 듣기 좋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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