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중에라도 떳떳하고 싶다"

'양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by 이용석 Mar 18. 2025

나는 양심 수집가다. 뭐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양심을 모아서 내가 가지려는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없고, 복잡하고도 난해한 양심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례를 보면 그걸 수집한다는 이야기다. 병역거부 운동을 하면서, "그러면 군대 가는 나는 양심 없는 거냐?"라고 따져 묻는 사람들에게 "양심을 헌법재판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서는 인격의 존재가치가 무너져버리는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설명해봤자 도돌이표였다. 사전적인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양심의 떨림을 포착한 순간을 이야기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양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들을 수집했던 것이다. 


오늘 곽종근 전 사령관을 육사동기 출신 배 모 변호사가 민주당한테 협박당했다고 하라면서 회유하려 했다는 기사를 보는데, 곽 전 사령관 아내가 배 모 변호사의 회유에 흔들리지 않고 대답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나중에라도 떳떳하고 싶다." "죽어서라도 거짓말 안 하고 올바르게 했다는 거 그대로 갈 것이다."이 말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곽종근 전 사령관과 그의 부인의 양심의 목소리, 진지하고 강력한 마음의 소리이기 때문이겠지. 어느 쪽 진영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들어가자면 정치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하지 않고 떳떳하고 싶다, 떳떳해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를 곽 전 사령관과 그의 아내는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심은 이처럼 아름답고 울림이 크지만, 실은 그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당사자에게는 큰 시련과도 같다. 곽 전 사령관은 자신의 양심을 배신하지 않은 대가로 내란죄의 주요행위자로 중형을 받을 테니까.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떳떳했던 사람으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윤석열과 김용현 이하 나부랭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해야 한다. 


곽종근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잊고 지냈던 기억 하나가 또 떠올랐다.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고 싶었던, 그래서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빠이고 싶었던 옛 동료의 이야기다. 


나이 서른에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나는, 가장 먼저 한 일이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든 일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고 회사에 들어간 건 아니고 돈 벌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 수습사원 한 명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당했다. 제왕적인 대표이사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회사였으니, 그의 눈 밖에 난다면 그게 언제라도 내 처지가 될 수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생계 수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이름난 대표이사였지만, 첫 단협부터 난항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 잡아 단협을 파행으로 몰고 갔는데(주급 휴가 개념을 몰랐던 그는 한 달 근로시간이 왜 209시간이냐며 우리에게 역정을 내고는 단협을 파투 냈다.) 결국 우리는 상급노조에 교섭권을 넘겼지만 그래도 해결되지 않아서 마침내 지방노동위원회까지 간 뒤였다. 


갑자기 대표이사는 모든 직원에게 그 회사에서 출간한 책의 목록(당시에는 500종 정도였다는 걸로 기억한다)을 나눠주면서 읽은 책에 체크해서 내라고 했다. 사측은 홍보 전략을 짜기 위해 조사한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우리 책은 책의 힘으로 나가는 거니 영업자들은 시장조사도 할 필요 없다는 게 대표이사의 평소 지론이었으니, 사측의 말을 믿을 정도로 우리가 순진하지 않았다. 다 읽은 책을 체크하라는 무식한 발상은 둘째 치고라도(아니 국어사전이나 도감류는 이걸 읽은 책으로 표시해야 하는지 안 읽은 책으로 표시해야 하는지...)  단협을 거치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아주 날카롭게 날이 서있을 때이기도 했고, 과거에도 비슷한 설문을 해서 부당한 인사의 근거로 삼았던 적이 있었으니 뜬금없고 난데없는 지시의 이면에 어떤 속셈이 있을지 의심하게 되었다. 노동조합에선 대책회의를 했다. 일단 사측의 지시에는 응하지 않고, 노동조합 차원에서 이 업무지시의 필요성을 묻기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결국 각을 세워 싸울 일은 아니라고 판단해 각자 알아서 목록에 체크해서 내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수능 모의고사 찍듯이 아무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체크해서 냈고, 어떤 이들은 나름 성심성의껏 냈다. 


그리고 딱 한 명, 노조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던 동료가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회사는 그에게 독서목록을 작성하지 않은 이유를 써서 인트라넷에 올리라고 했고,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독서목록 작성 지시가 왜 불필요하고 잘못된 지시인지를 써서 인트라넷에 올렸다. 사측은 그 직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사측은 그가 쓴 글의 표현을 트집잡아 대표이사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했다며 해고나 정직 등 중징계를 하려 했지만 노동조합의 반대로 중징계를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치졸하게 그 직원을 괴롭혔다. 대기발령을 내렸고, 자필 반성문 제출을 강요했다. 대기발령자는 회사 비품(컴퓨터)을 쓸 수 없다며 손으로 쓰라고 한 것이다. 개인 노트북을 가져와 쓰려고 하니 회사에선 개인 물품을 쓰면 안 된다고 못 쓰게 했다. 아니 출장 갈 때는 직원들 개인 차로 가면 좋아하면서. 


그때 그 동료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그를 보호할 있었고, 조합원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왕따를 당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놓고 회사가 괴롭히는 것을 멀쩡하게 견딜 있는 노동자가 어디 있겠나. 반복되는 모욕주기에 지칠 법도 데, 그는 힘들어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양심을 굽히지 않았다. 잘못하지 않은 일을 잘못했다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끝끝내 회사가 요구하는 반성을 하지 않았다. 그가 힘들게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혹은 사측과 노측의 갈등이 지속되는 게 불편했는지, 노조 조합원 중 한 명이 그를 찾아가서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 잘못하지 않은 일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곽종근 전 사령관의 아내의 말 "나중에라도 떳떳하고 싶다"를 듣자 불현듯 떠올랐다. 

그 일은 결국 보다 못한 언론노조가 나서서 대법원 판례를 가져와 반성문 강요는 부당노동행위임을 강하게 항의한 뒤에야 끝날 수 있었다. 물론 끝난 건 반성문 강요고 그 뒤로도 한동안 괴롭힘이 계속되었다. 지금이었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 버리면 빼박이었을 텐데.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결정문에서 본디 양심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사회 가치나 규범과 어긋날 때 비로소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으로, 양심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소수자의 권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의 슬픈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양심이 불현듯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결국 당사자는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시밭길을 떳떳하게 걸어가거나, 양심을 외면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사는 일이 어디 원하는 대로 되나.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 동료의 경우를 보더라도, 곽종근 전 사령관의 경우를 보더라도 양심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자기 인생에서는 어떤 것을 희생하거나 커다란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떳떳함, 그거 하나 지키기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 갑자기 떠오른 장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