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가오슝에서 마지막날 아침 식사
갑자기 어떤 잔상, 어떤 기억,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지금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떠오른 장면은, 작년 10월 대만 자전거 여행의 한 장면이다. 김포공항에서 가오슝으로 간 나와 나동은 대만에 익숙해질 겸, 비행기의 여독도 풀 겸 가오슝에서 2박을 했다.
그러고 신혜가 극찬한 타이난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자전거로 50km니 천천히 가도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긴 했지만 해외여행은 또 예상치 못한 변수를 늘 만나기 마련이니 서둘러서 나쁠 건 없다. 게다가 대만의 10월은 한국으로 치면 그냥 여름 날씨. 한낮에 자전거를 타기 너무 힘든 데다가 중간에 쉴만한 넓은 실내 카페도 찾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어서 가능한 한 빨리 출발하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근처에서 딴삥을 먹었다. 대만 사람들이 아침식사로 많이 먹는 음식인데, 계란 지단 사이에 햄이나 참치, 야채 등 다양한 속을 넣고 접어서 소스를 발라 먹는 음식이다. 대만 여행 내내 아침밥 안 먹는 나동은 숙소에 버려둔 채 혼자 나와서 딴삥과 밀크티를 먹곤 했다. 그날도 간단하게 딴삥을 먹고 8시쯤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가오슝은 대만 제2의 도시,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도로에 차가 빡빡했다. 그나마 이륜차 도로가 차도와 완전히 구분되어 있긴 했지만 자전거 전용 차선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차와 섞여야 했고 이륜차 도로는 오토바이 천국이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어지간해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위협운전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속도가 무섭고 그들이 뿜어내는 매연도 무척 힘들었다.
가오슝 시내를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서 페달을 밟아댔다. 그런데 9시가 딱 지나는 순간 그 많던 차들이 거짓말처럼 도로에서 사라졌다. 어떤 마법사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말이다. 출근시간이 지나서일까. 널따란 도로에는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과 나와 나동의 자전 거뿐이었다. 차들 때문에 긴장했다가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나는 허기를 느꼈다. 가오슝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가기 직전, 스타벅스를 오른쪽에 끼고 우회전을 해서 자전글 달리는데 사거리에 다다르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샌드위치, 토스트, 햄버거, 딴삥 등을 파는 조그마한 패스트푸드점이다. 아, 나는 못 참고 무너졌다. 이걸 먹어야겠다. 아침으로 딴삥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원래 자전거 타면 금방 배고파지는 게 당연하고, 도시 외곽으로 벗어나면 밥 먹고 싶어도 식당이 없어서 못 먹는 경우도 있으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합리화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자전거 자물쇠도 채우지 않고 메뉴 주문을 한 뒤 조그만 의자에 앉았다. 헬멧을 벗고 선글라스를 안경으로 바꿔 쓰고 음식을 기다렸다. 나는 토스트 세트 메뉴를 시켰고, 나동은 뭘 시켰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장면이, 사각형 모양의 작은 테이블과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먹는 나와 나동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로. 2024년 활동보고서 원고를 쓰는 도중에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났을까? 타이난 핑둥 해변에서 본 푸르다 붉은 노을도 아니고, 땀 뻘뻘 흘리며 간 어롼비 등대도 아니고, 타이동 해변 도로에서 마주한 끝없는 태평양의 풍경도 아니고 왜 그날의 두 번째 아침식사가 떠올랐을까. 헤이즐럿 커피처럼, 델리슈처럼 냄새로 손님을 유혹하는 그런 식당이었는지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녀서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은 그 식당이 말이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이 장면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 있는 것만 같아서 이렇게 기록해 두자.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