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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pr 21. 2020

새로운 시도, 걱정 끝에 즐거움이 오기를

2020년 병역거부자의 날 캠페인 


2020년 병역거부자의 날 캠페인을 기획하다


5월 15일. 스승의 날. 그리고 아는 사람만 아는 병역거부자의 날. 평화활동가라면 대부분 알고, 인권활동가들도 얼추 아는 날이지만, 평화활동가 인권활동가가 한국 사회에 워낙 드문 존재들이라 아마도 5월 15일 병역거부자의 날을 아는 사람은 한국 사람 중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03년부터 병역거부자의 날 캠페인을 해왔다. 2018년까지는 주로 자전거를 타면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외쳤다. 올해 캠페인은 자전거도 안 타고 대체복무 도입도 외치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었다. 2019년 말 대체복무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뭐 우리가 보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어쨌든 대체복무제는 이미 도입되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 모여서 하는 행사가 불가능해졌다. 이래저래 올해에는 전혀 새로운 캠페인을 해야 한다. 메시지도 새롭고, 방식도 새로운 캠페인. 


대체복무제 도입 다음 스텝으로 병역거부자 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우리가 보기에 병역거부 심사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난민 심사, 트랜스 젠더 성별 정정 심사를 함께 이야기하기로 했다. 해당 이슈로 활동하는 단체들에 연락을 돌렸고, 그래서 난민인권센터, 희망을만드는법,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와 함께 2020년 병역거부자의 날 캠페인을 하게 되었다.(최근 몇 년 동안 함께 했던 참여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피스모모, KAC에 커다란 감사를...) 


각각의 심사에서 작동하는 군사주의라든가, 정상성을 강요하는 국가의 태도, 혹은 정체성을 심사한다면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인권 침해를 서슴지 않는 심사 과정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어떤 형식이 좋을지 고민하면서 재밌는 토크쇼를 하고, 꽁트도 곁들이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빌릴 텐데, 코로나 때문에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온라인 방송을 하기로 했다. 대신 꽁트와 토크쇼를 사전 제작해서 자막까지 넣어서 행사 당일에는 영상을 틀면서 라이브로 토크를 더하기로 했다.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티저 포스터


처음 시도해보는 형식과 주제, 걱정돼 죽겠네


행사를 기획하고, 행사에 필요한 분들을 섭외하고, 홍보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것은 늘 해오던 일이다. 오늘은 꽁트와 토크쇼에 출연할 사람들 섭외를 마무리했고, 촬영 날짜까지 잡았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꽁트 대본을 쓰고 있다. 섭외를 나눠 맡고, 토크쇼 기획은 다른 활동가들이 맡아서 내가 해야 할 일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 단체가 제안한 일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끊임없이 신경 쓰고 체크해야 한다. 이것도 해마다 하던 일이니, 그리고 우리 단체는 행사를 아주 큰 규모로 하는 것은 아니니 어렵진 않다. 하지만 올해 처음 해보는 새로운 주제, 새로운 방식은 나를 무척 긴장하게 만든다.


이번 주제는 우리 모두 처음으로 다루는 주제다 보니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된다. 병역거부 심사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전쟁없는세상 내부에서는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이걸 난민 심사와 트랜스 젠더 성별 정정 심사와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도 처음이고 다른 그룹도 처음이다.  


'과연 행사에 담아내고자 하는 우리의 생각이 충분히 담길 수 있을까?'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밌게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조차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처음 이런 주제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나 스스로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기획이 그렇듯이 사회운동 캠페인 기획 또한 아이디어는 그냥 아이디어일 뿐, 실제로 기획해보면 머릿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굴려본 아이디어가 사실은 맹탕이거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금처럼 처음 다루는 주제라면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워낙에 낙천적인 성격이고,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는 거 잘 알지만 그래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형식 또한 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형식이다. 사전 녹화 및 편집을 하고 그걸 행사 당일날 온라인으로 방송하는 건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음 시도하지 않았을 형식이다. 나는 영상 쪽으로는 문외한이며, 전쟁없는세상의 훌륭한 활동가들도 영상은 다들 잘 모른다. 영상을 활용한 캠페인 경험도 별로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잇몸이 없으면 어쨌든 삼키고 보자는 심정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주변에 그래도 영상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때로는 아예 일을 도와달라고 한다. 병역거부자 출신 영화감독이 촬영을 맡아주기로 했고, 영상 편집은 어찌어찌 사람을 구했다. 예산이 넉넉하면 사실 사람 구하기도 어렵지 않겠지만, 뭐 돈 여유 있게 캠페인 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어디 있겠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은 진행이 될 텐데, 그래도 걱정인 것은 영상 촬영, 편집, 송출의 과정을 내가 하나도 모르니 이게 진행이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전체적인 파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일의 과정을 내가 컨트롤하거나 직접 해야 성이 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히려 나는 최대한 일 안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걸 선호하는 편이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면 늘 불안해한다. 그러니 이런 새로운 형식 앞에서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늘 새로운 도전에 부딪히는 활동가의 일


너무 빠른 기술의 진보 앞에서 어느 직업인이 안 힘들겠나.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기껏 카드뉴스 만드는 방법을 어렵게 익혔는데 이제는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왔다. 하아.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물론 우리가 돈이 많다면 영상 제작, 편집을, 아니 아예 홍보까지 외주 업체에 맡기면 된다. 하지만 짧은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이 우리 단체 활동가들의 월급보다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주변에 영상을 만드는 능력자들이 있더라도 쉽사리 부탁도 못한다. 그이들도 그게 밥벌이인데, 우리 꺼 해주면 그만큼 돈을 못 벌 테니까. 


기술만 빠르게 변하는 게 아니다. 사회 이슈도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특히 한국은 자고 일어나면 커다란 이슈들이 빵빵 터지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사회과학 담론도 세상이 빨리 변하니 함께 빠르게 변한다. 활동가라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당연히 공부해야 하지만, 공부해서 이해하는 것보다 때로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더 빠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어렵기 그지없네. 그래도 괜찮다.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활동가는 원래 변화에 익숙한, 혹은 익숙해야 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활동가라는 직업에 만족하는 까닭은 바로 사회'변화'를 기획하고 느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변화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이끌어내고, 그 변화를 실감하는 경험이 온몸의 감각을 짜릿하게 자극한다. 게다가 이 일의 좋은 결과는 나의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 의미까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리고 이런 새로운 시도, 새로운 도전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부디 이번에도 그러하기를. 병역거부자의 날 캠페인을 무사히 끝마치고, 고생한 만큼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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